50주년 맞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성종상 원장 인터뷰

[환경일보] 서효림 기자 = 결별점(decoupling point)은 일정한 개인소득 1만 달러에서 1만5000달러를 기준으로, 그보다 낮은 수준에서는 소득과 행복지수가 비례관계에 있지만 그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지수가 별로 증가하지 않게 되는 기준치를 말한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성종상 원장은 이미 결별점을 넘은 우리나라는 ‘어정쩡한 상태’라고 말하며 공원·녹지에서 주는 만족감이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68년 행정대학원에 설치돼 있던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 정원 80여명을 흡수·합병하고 새로 조경학과를 신설해 시작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은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하늘의 뜻을 알 수 있는 지천명(知天命)의 시기를 맞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의 지난 역사와 인간이 행복한 삶을 위한 환경의 역할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 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성종상 원장

융복합의 역사 가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은 1973년 1월 25일 대통령령 제6476호, 서울대학교 설치령 제5조의 개정으로 창설됐다. 그 당시 1968년부터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 설치돼 있던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 정원 80여명을 흡수·합병하고, 새로 정원 40명의 조경학과를 신설해 학생정원 120명의 전문대학원으로서 발을 뗐다.

1975년 3월 서울대학교 설치령 개정으로 대학원의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는 환경계획학과로, 조경학과는 환경조경학과로 학과명칭이 변경됐다. 1981년 11월에 환경계획학과에 박사과정을 설치했고, 1990학년도 1학기부터는 박사과정으로서 농생대 조경학과와 공동으로 운영하는 협동과정 조경학을 설치했다.

부설기관으로 서울대학교 규정 제524호에 의거, 1980년 4월 환경연구소를 설치했고, 1995년 8월 서울대학교 공개강좌규정에 의거 도시·환경미래전략과정을 개설했다. 현재 교직원은 교수 25명, 조교 4명, 직원이 13명이다.

학부 전공 천차만별, 자유로운 연구 가능

성종상 원장은 “환경을 공부하고 싶어 대학원에 오는 학생들의 전공이 천차만별”이라고 말하며 경직되지 않은 창의성 있는 인재들의 공간이 된 대학원을 자랑했다. 그는 “학생들의 전공이 다르 듯 교수들 역시 백그라운드가 다 다르다”고 말하며 이것이 자유로운 연구를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 작고한 고 노융희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환경대학원 초대원장을 추억했다. 고 노융희 교수는 지방자치학회 초대회장을 지내며 지방자치학과 국토 및 지역계획학, 도시환경학의 기초를 닦은 인물이다. 그의 노력은 연구실에 머물지 않고, 학계와 행정 현장을 오가며 대한민국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외부인으로서는 현장의 문제를 풀 수 없다

성 원장은 환경대학원은 특히 현장에서의 배움이 강조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환경이라는 독특한 조건은 각자의 입장과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와 융합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성종상 원장은 “환경대학원은 5개의 교과과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1학년 공통과목을 듣는 신입생을 팀으로 만들고 지역별로 시공무원들과 협의해 주민들과의 접촉을 통한 과제를 내주곤 한다고 했다. 학생들은 주민들과의 소통에서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현장의 문제를 외부인의 시선으로는 풀 수 없다.

서울대학교 옥상정원, 공동의 정원은 새로운 휴식의 공간이 된다.

인간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조경

그는 조경전문가로서 도시·교통·도시설계에서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할 일이 참 많다고 말했다. 성 원장은 환경과 건강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면서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환경의 중요성, 그중에서도 정신의 건강과 사회적 교류를 통한 건강을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의 평균 행복지수가 74점으로 OECD 국가 중 최하위이다.

성종상 원장은 행복과 환경을 연관 지으며 이렇게 설명했다.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어린이 행복지수 결과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본 생활조건 중에 아이들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된 1, 2위 항목은 정기적인 취미생활, 스포츠, 동아리 활동 등과 자전거 등 야외활동 장비 보유로 나타났다. 또 다른 흥미로운 자료는 위에 인용한 2014년 한국방정환재단과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조사결과에서 동아리활동을 하는 한국 청소년들의 행복지수는 107점으로 당당 5위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87.9%가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것으로 응답하는 등 전반적으로 삶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보였다.

더욱 열악한 청소년의 삶, 맘껏 즐길 공간 필요

성 원장은 열악하지만 생활환경에서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공간은 ‘맘껏 즐길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이라고 말했다. 예전 우리네 삶에서 그것이 뒷동산이나 앞 시냇가, 빈 들판, 동네 공터 등이었다면, 오늘날 그것은 운동장이나 스포츠센터, 캠프장 등이라 할 수가 있다.

이어 성 원장은 청소년의 사회적인 건강은 더 불안정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정신’이 사라져 버린 지금,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이 미비하고 지향점이 없어진 요즘 세대들은 더 극단으로 치달아 간다면서 좇을 것이 없는 지금의 현실을 말했다. 그는 서울대학교의 경쟁 역시 젊은이들을 건강하게 하지 않을 개연성이 있다고 말하면서 “사회를 지탱할 수 있는 리더로서 학생들이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교육의 방향을 정했다”고 했다. 성종상 원장은 정서적으로 불안한 질풍노도의 청소년은 작은 것도 큰 충격을 받는다면서 확연히 다른 아이들의 문화에 대해 기득권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며 이전에 대한 무조건적인 강요는 옳지 않다고 말했다.

나를 진정 행복하게 하는 것은 ‘가든’

국제적으로 저명한 개미학자 윌슨(Edward O. Wilson)은 바이오필리아(Biophilia)라는 용어를 제시하면서 생물적 존재로서 인간의 DNA에는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 곧 자연 사랑의 정신이 내재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녹색’의 중요성을 같은 병동에 입원한 두 집단의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같은 병동에 입원한 두 집단 중 한 집단은 창 밖으로 회색의 풍경을 보여주고 다른 한 집단에는 녹색의 풍경을 보여줬더니 녹색의 풍경을 보여준 집단의 입원 기간이 짧고, 의사의 처방에 대한 반응이 빨랐다. 독일 저술가 크리스토퍼 코올은 “행복은 살 수는 없지만 찾아볼 수는 있다”며 “나를 진정 행복하게 하는 것은 결혼과 가든”이라 말했다.

대담 중인 성종상 원장(왼쪽)과 본지 김익수 편집대표

심리적인 버팀목 되는 ‘공동 정원'

조경과 숲, 정원의 중요성은 여러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성종상 원장은 ‘앵두나무 처녀’ 노래에 나오는 앵두나무 우물가는 단순히 빨래를 하는 공터가 아니라 동네 아낙들의 네트워킹 장소라고 설명했다. 한 동네 사는 처자들이 모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을 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것은 심리적인 리프레시에 해당하며 이는 조경 공간이 주는 큰 힘이다.

‘앵두나무 우물가’ 같은 곳이 학교에 있게 되면 학생들은 전공이 아닌 또 다른 것으로 소속감을 갖게 된다. 작년 학생들의 ‘텃밭 파티’는 성 원장에게 작은 감동을 줬다. 허브를 키워 수확한 학생들이 이를 활용한 음식을 만들어 나누면서 작은 ‘가족’으로 성장했다.

행복할 시간조차 없는 현대인, 정원으로 가자

격변의 시기를 거쳐 비정상적인 삶을 산 한국인들은 큰 트라우마를 가졌다. 식민지를 거치고 집안의 싸움을 겪으면서 민족에 대한 자조적인 말도 서슴치 않는다. 그는 행복하지 않은 지금의 우리는 행복을 어디서 느껴야 할지 생각할 여유조차 가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손꼽히는 윈스턴 처칠은 대단한 정원 애호가였다. 2차 대전 중에 타고난 글 솜씨와 언변으로 연합국전선을 이끌어내 결국에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그는 “사람이 집을 만들지만, 사람을 만드는 것은 집이다”라고 하면서 집과 정원의 중요성을 갈파했던 인물이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집을 고를 때에 직접 땅을 답사해 관찰한 후 지형과 물이 풍부한지를 확인하곤 했다. 영국의 대표적 역사 정원 중 하나인 블렌하임에서 태어난 그는 생애 동안에 두 개의 정원을 완성해 즐겼다. 노년에 40여 년을 보낸 차트웰(Chartwell)은 자신의 책을 판 돈으로 구입한 땅에 조성한 정원이다. 언덕 위에다 저택과 정형식 정원을 배치하고는 그 아래쪽 계곡부 습지와 작은 연못을 활용해 큰 연못과 수영장을 조성하는 등 지형 조건에 맞추어 정원을 조성했다. 차트웰을 떠나서 보낸 하루는 낭비한 날이라고 할 만큼 그에게 있어서 차트웰은 각별한 곳이었다. 지금도 차트웰에는 그가 즐겨 사용했던 낚시터 의자와 그림 그릴 때 사용하던 이젤과 화구 등이 남아 있다.

새로운 세대의 삶의 여유 위해 앞장설 터

평생 이사를 다녔던 헤세는 가는 집마다 정원을 가꾸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고, 조선 유학의 큰 선생으로 추앙받는 퇴계는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도 매화를 염려했다. 치열하기만 했을 그들의 정치적, 사회적 삶에 있어서 정원은 여백이기도 하고 충전소이기도 했다.

성 원장은 건강한 정원과 오픈된 공간을 즐기면서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을 생각하고 사명감을 가지고 그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앞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을 이끌면서 새로운 세대들이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사회적인 제도 구축에 앞장서고 싶다는 다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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