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박물관, 10월14일까지 ‘88 올림픽과 서울’ 특별전 개최

[환경일보] 서울역사박물관(관장 송인호)은 88 서울올림픽대회 개최 30주년을 맞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변화되는 서울의 반세기 역사를 회고하는 ‘88 올림픽과 서울’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88 올림픽 당시 의전용으로 실제 사용된 일명 ‘사마란치 콤비버스’와 김용래 전 서울시장, 이동 전 서울시립대학교 총장 등 올림픽 관계자들이 박물관에 기증한 다수의 올림픽 관련 자료 등 유물 300여 점, 영상, 그래픽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현장감, 시대감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1988년 9월1일에 열린 88 서울올림픽 개막식 <사진제공=서울시>

1981년 9월30일, 제24회 올림픽 개최도시로 서울이 선정된 것은 서울 도시발전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사건이었다.

뿐만 아니라 80년대에는 86 서울아시아경기대회와 88 서울장애자올림픽대회까지 대규모 국제대회가 연이어 개최됐다.

이 대회들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서울도시계획은 ‘올림픽 대비’라는 특수한 목표를 설정하고 대규모 개발을 통한 체육시설과 도시기반시설 우선 확충 및 시민의 생활문화를 개선하는데 총력을 다했다.

프로야구 원년구단 가운데 하나인 MBC 청룡 어린이 야구단 창단식(1982년). <사진제공=서울시>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라는 88 서울올림픽의 표어처럼 이는 서울이 마주한 시대적 도전이었다.

‘88 올림픽과 서울’ 특별전은 올림픽 도전의 첫 발을 내디딘 1979년 10월의 ‘제24회 올림픽 유치 계획’ 공식 발표로부터 1988년 서울올림픽과 서울장애자올림픽의 성공적인 마무리까지 10년의 기간을 통해, 이 기간 동안 서울의 도시공간과 도시민들의 생활상 변화가 서로 유기적으로 상호 작용하며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전시의 구성은 ‘1부. 1988, 올림픽과 서울’, ‘2부. 88 올림픽과 서울의 공간 변화’ ‘3부. 올림픽과 80년대 서울 문화’ 등 크게 3개의 주제로 나뉜다.

브리사 자동차(1970~80년대) <사진제공=서울시>

국제사회 도약의 계기

올림픽 유치는 우리나라가 국제사회로 도약하기 위한 시대적 도전이었다. 유치 과정에서 국내의 불안한 상황과 개최도시 서울시의 재정 문제 등으로 수차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올림픽 불가론’이 우세한 가운데 전두환 대통령의 올림픽 유치 최종 결정으로, 경쟁도시 나고야와의 사활을 건 외교 전쟁 끝에 결국 올림픽 개최국이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스포츠 역사가 아닌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써 서울올림픽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고자 했다.

한국은 이미 1966년 `70 아시안게임 서울 유치로 국제사회에 첫 도전을 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한반도의 불안한 상황과 기반 시설·재정 부족의 이유로 1968년 대회 개최권을 반납하게 된다. 이 불명예스러운 경험은 국제대회를 치를 수 있는 기반 시설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1979년 10월8일 정상천 서울시장의 올림픽 유치 공식발표 후 뒤이어 10.26 사태와 12.12 사태가 연이어 일어나면서 유치 계획은 소강상태에 빠진다.

한강 개발 전 생활상 1960년대 한영수 사진 <사진제공=서울시>

전두환 대통령의 올림픽 유치 재추진 지시에 서울시는 재정적인 문제로 ‘개최 능력 없음’을 통보하지만, 올림픽 유치는 강행됐다.

1980년대는 86 아시아경기대회, 88 서울올림픽대회, 88 서울장애자올림픽대회 등 대규모의 국제 대회들이 연이어 개최됐고, 5공화국의 스포츠 육성 정책과 맞물려 스포츠 전성기를 맞이했다.

`86 제10회 서울아시아경기대회(1986. 9.20 ~ 10.5)는 27개국 4839명의 선수가 참가했고, 한국은 종합 2위의 성적을 얻었다. 86 아시안게임의 대회 운영 기술과 경험은 88 서울 올림픽의 성공에 확신을 주었으며, 국제대회의 시험무대로써의 역할을 다했다.

`88 제24회 서울하계올림픽대회(1988. 9.17 ~ 10.2)는 16년 만에 동서 양 진영이 대부분 참가한 160개국 1만3304명 참여로, 올림픽 역사상 최다 국가가 함께한 화합의 행사가 됐다. 한국은 종합 4위의 성적을 얻으며, 분단과 전쟁의 폐허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국제적 도시로서 도약했다.

`88 서울장애인올림픽대회(1988. 10.15 ~ 10.24)는 앞선 서울올림픽의 운영시스템, 물자, 시설, 인력 등을 대부분 지원받아 패럴림픽 사상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

올림픽 개최지에서 올림픽 시설을 활용하기 시작한 첫 번째 패럴림픽이자 성화 봉송을 최초로 시작한 대회였다. 한국은 종합 7위의 성적을 거뒀다.

1988년 장애인올림픽 개막식 <사진제공=서울시>

주요 유물은 올림픽 유치 및 개최를 주도했던 정부와 서울시의 공식·비공식 문서, 1981년 독일(서독) 바덴바덴 IOC총회 현장에서 재무 담당을 맡았던 전 서울시립대학교 이동(李棟) 총장의 기증자료, 1988년 서울시장과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던 김용래 전 서울시장의 기증자료가 전시되며, 올림픽 유치 확정 후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Juan Antonio Samaranch) IOC위원장 내한 당시 공식 의전 차량인 콤비버스가 야외에 전시된다.

2018년에 신규 수증된 이동 전 서울시립대학교 총장 기증 자료(이창 기증) 중 올림픽 관련 자료로 정상천 서울시장의 ‘올림픽 유치 계획 기자회견 발표문’, IOC총회 영문 연설문, 박영수 시장의 귀국 기자회견 시 발표한 육필원고 소감문 등이 전시된다.

올림픽 공식 발표 이후 올림픽 준비에 힘쓴 서울시장은 모두 5명이다. 그중 김용래 전 서울시장은 올림픽을 치르던 1988년 1년 동안 서울시장과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내며 서울올림픽과 서울장애자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2016년 서울역사박물관에 2000여점 기증된 자료(김환석 기증) 중 올림픽 관련 자료만 엄선해 약 50여점 정도가 전시된다.

콤비버스는 1987년 ㈜아시아자동차에서 제작된 올림픽 의전용 차량이다. 사마란치 IOC위원장, 대회조직위원장, 각 국제 경기연맹 회장 등 국내외의 많은 귀빈들이 서울과 지방의 각 경기장 및 행사장을 직접 순회하면서 대회 준비부터 종료 시까지 탑승했던 차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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