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위로 물러난 고위공무원 위해 현직 이사장 경질
경질할 땐 언제고 국정감사 증인 ‘욕받이’ 내세워

[환경일보] 환경부가 비위로 물러난 고위공무원의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산하기관장을 억지로 쫓아낸 정황이 포착됐다. 특히 누명까지 씌워 쫓아낸 산하기관장을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불러내 ‘욕받이’로 만들어 모욕을 주면서 안팎으로 욕을 먹고 있다.

문제의 시작은 지난 3월 폐비닐 대란 사태 중 휴가지에서 골프를 친 지방청장이 물러나면서 촉발됐다.

당시 지방청장은 제주도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었는데, 업무 때문에 제주도를 방문한 부하직원과 업무시간에 골프를 즐긴 사실이 적발됐다.

이로 인해 지휘감독의 책임을 물어 지방청장이 사표를 내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과정에서 별다른 처벌이나 징계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까지라면 처벌 없이 서둘러 사직서를 접수한 것에 대해 ‘제 식구 감싸기’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사직을 권고했던 고위간부가 지방청장을 위해 환경부 산하 협회에 자리를 마련해주려 압력을 행사하면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다.

25일 열린 환경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이 가운데는 낙동강을 오염시킨 기업 대표도 있고, 4대강 사업을 이용해 영달을 꾀한 학자도 있다. 그리고 폐비닐 수거 대란으로 인한 질타를 환경부 대신 받기 위해 나온 전직 이사장도 있다. <사진=김경태 기자>

누명 씌워 쫓아내는 뻔뻔함

하루아침에 자리를 빼앗기게 생긴 협회 간부는 당연히 반발했고, 환경부는 협회 간부를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이하 공제조합) 이사장에 앉혀주겠다며 달랬다. 협회 간부 역시 환경부 출신으로 또 다른 ‘환피아’이기 때문이다.

협회 간부는 이를 받아들였고, 이를 주변에 떠벌리고 다니면서 공제조합에도 이 사실이 알려졌다.

이에 공제조합 직원들은 “환피아 인사를 즉각 철회하라”며 반발했다. 이사장의 임기는 내년까지 남은 상태였고, 별다른 잘못도 없었다. 게다가 이사장은 내외적으로 인망이 두터운 인사였다.

이런 상황에서 좋지 않은 추문으로 환경부에서 물러난 인사를, 그것도 낙하산으로 보낸다는 소식에 공제조합의 반발이 갈수록 커졌다.

중부일반노동조합 명의로 성명서까지 발표하며 공론화시키려 했지만 환경부는 포기하지 않았다. 문제의 시발점인 지방청장을 단념시키는 것이 아니라 현직 공제조합 이사장을 물러나게 한 것이다.

환경부 담당자의 답변은 ‘이사회에서 스스로 사임을 표했다’라는 것이다. 스스로 물러났기 때문에 환경부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며 발뺌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공제조합을 비롯한 환경부 내외부에서는 ‘환경부 담당 과장의 전화 한통으로 잘랐다’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환경부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는 “환경부가 이사장을 상대로 ‘자기 자리를 지키려 조합원을 선동했다’는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씌워 경질했다”고 밝혔다. 노동조합 관계자는 “환피아를 앉히려 쓰리쿠션으로 압력을 행사했다”며 맹비난했다.

전 이사장을 아는 이들은 “평소 그의 인망을 생각한다면 노조를 동원해 자리를 지키려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며 “환경부가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씌운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결국 공제조합 이사장은 자리에서 물러났고 현재 출근조차 하지 않는다. 물론 급여도 지급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공제조합 이사장 자리는 잃었지만 정관에 따라 이사 자리는 유지하고 있다. 정관을 고쳐야 하지만 공제조합 이사회의 동의가 필요한 사항이고, 이사장 자리는 공석으로 남아 있다.

책임질 사람은 따로 있다

그런데 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사퇴’가 됐던, ‘경질’이 됐던 이미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사람을 이번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부른 것이다.

이번 국정감사는 올해 초 발생한 폐비닐 대란으로 인해 질타가 집중될 것으로 예견된 상태였다. 이미 해임돼 아무런 권한도 없는 전 이사장은 국회의원들의 질타에 죄송하다며 거듭 사과를 해야 했다.

공제조합과 노조는 물론 환경부 내부에서도 “아무 잘못도 없는 이사장을 경질할 때는 언제고,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불러 욕받이로 삼았다”는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앞뒤 사정을 아는 한 관계자는 “이미 경질당한 이사장이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국회의원들에게 질타를 당하고 ‘모르겠습니다’라며 고개를 숙이는 상황에 가슴이 답답했다”라고 말했다.

현재 공석인 공제조합 이사장 자리를 놓고 소문이 분분하다. 골프 문제로 퇴직한 지방청장이 내정됐다는 소문부터, 처음 환경부 의도에 따라 산하 협회 간부가 올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환경부가 자기 식구를 챙기기 위해 멀쩡한 현직 이사장을 누명을 씌워 몰아내고, 그것도 모자라 국정감사 방패막이로 내세웠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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