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직원의 실적 위해 치료비 걱정하는 피해자 압박수단으로 악용

[충남=환경일보] 박상현 기자 = 교통사고로 인한 심신의 고통보다 더 심각한 고통이 있다. 바로 분쟁으로 인한 고통이다. 교통사고 발생 시 과실비율을 놓고 소송이 벌어지면 일단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려는 분쟁이 시작된다.

이로 인해 병원비와 생활비 부족으로 고통 받고, 노동의 상실로 이미 백수가 된 상태에서 변호사를 선임해 보험사와 싸우며, 소송을 치르고 권리를 찾기까지는 너무나도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같은 피해자들의 엄청난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생명줄 같은 제도가 있다. 일단 청구하게 되면 손해액의 50%를 보험사가 무조건 지급해야 하는 가지급금제도(‘가불금’, ‘가지급금’)이다.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이 가지급금(假支給金)을 청구하면 열흘 내로 보험사는 반드시 책임보험이 보장하는 치료비의 100%와 후유장해비 등 손해액 50%를 반드시 지급하도록 법에 명시돼 있다. 

또한 법적으로 보험사는 가지급금 청구 방법을 반드시 고객에게 알릴 의무가 있음을 의무조항으로 명시하고 있다.

보험사는 100% 면책(해당보험사 가입자 잘못이 전혀 없을 때) 사유를 제외하고는 무조건 지급해야 한다. 

손해액의 절반을 일단 지급하고 추후 과실여부가 명확해지면 초과 지급된 금액은 보험사가 돌려받을 수 있다. 만약 돌려받지 못하면 정부가 대신 변제한다. 보험사가 지급을 꺼릴 경우를 대비해 정부가 전액 보증하는 제도다.

그러나 2003년부터 시행돼 15년이 다 됐는데도 아직도 이 제도를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고, 보험사는 이 점을 악용하고 있다.

▲ 사진은 특정기사와 관련없음

보험사가 임의로 50% 초과지급 결정

2012년 5월 박모씨(남 33세)는 충남 아산시 장존동 자동차전용도로를 운행하던 중 만취한 운전자가 몰던 차량이 역주행하면서, 마주오던 피해차량과 정면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가해차량은 화재로 완전 전소, 피해차량은 10m 아래 낭떠러지로 굴러 전복, 좌측 대퇴부 골절로 중상을 입고 약 6년 동안 수십회의 수술에도 회복 기미가 없이 골수염 증세로 악화돼 결국 절단장애까지 감수해야 했다.

피해자는 그간 운영하던 사업장을 처분해야 했고, 실업자가 된 상태에서 생활비마저 충당할 수 없는 처지가 된 현재 가지급금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생활비로 5000만원을 지급받아 수차례 수술에서 보험적용이 안 되는 무통(無痛) 주사 비용 등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보험사 측에서 기준 손해액이 초과됐다는 명분으로 기지급금 지급을 중단하고 계속되는 치료 중에도 보험사 측의 합의 종용을 받았다.

박씨는 병상과 통원을 계속하며 6년 가까이 수술을 반복하고 있으나 그나마 끊긴 가지급금 때문에 중환자 처지에 끼니를 걱정하며 치료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상태로 보아 향후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전체치료비의 50%를 초과했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전체 치료비조차 계산이 안 되는 상황에서 50%를 임의로 정하는 것은 억지스러운 주장이다.

이렇듯 피해자의 향후 장애1등급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보험사 측은 가지급금 지급을 중단하는 관행이 피해자를 이중으로 힘들게 하고 있다.

벼랑 끝에 내몰린 교통사고 피해자

분쟁이 6년 가까이 계속되는 동안 박씨와 그의 가족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3개월 단위로 재수술을 해야 하는 피해자 박씨는 "입원 중일 때가 오히려 행복하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삼시세끼 밥은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퇴원한 박씨는 재수술을 위해 입원하기 전까지는 하루 한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 실정이며 월세마저 밀려 주인의 퇴거명령까지 받은 상태다. 그는 "당장 합의해서 합의금을 받아 다 소진되면 생을 포기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이런 힘든 상황에서 사고 후 2년이 지나 가지급금을 요청하니 보험사 직원은 "원래 안 주는 건데 특별히 생각해서 주는 것"이라고 생색을 내며 2000만원을 더 지급했다. 

박씨는 당시 보험사직원의 태도가 마치 대단한 선심을 쓰는 듯했으며 생활고에 찌든 자신을 경멸하는 느낌마저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가지급금은 보험사 마음대로 액수를 정하는 것이 아니다. 향후 절단장애가 예상되는 박씨는 후유장애 1등급이 명백하고, 법에 따라 책임보험에서 정한 손해액 3억원(추정액)의 50%인 1억5000만원을 더 받을 수 있다. 

이미 지급된 7000만원 중 8000만원을 추가 지급받을 수 있다는 계산임에도 50% 초과 지급이란 모호한 잣대로 피해자를 울리고 있는 것이다.

이후 박씨는 변호사의 자문을 받아 가지급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고 지자체에 신고했고 지자체는 수사기관에 고발해 법적으로 대응해 다행히 모두 받아냈다.

보험사 고지 의무 위반 

게다가 피해자에게 가지급금에 대해 반드시 알려야 하는 의무가 보험사에 있는데 이 법을 명백히 위반했다.

이에 대해 H보험사 측은 “고객이 가지급금을 요청하면 그때 청구에 필요한 사항은 안내해야 한다는 뜻이지 보험사가 먼저 알려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잘못이 없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 시행령은 보험사가 먼저 가지급금에 대해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고 정의했다. 보험사가 또 거짓말을 한 것이다.

결국 추가 취재를 바탕으로 다시 해명을 요구하자 보험사 측은 그제서야 의무불이행을 인정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가지급금은 설혹 과다하게 지급했다 하더라도 나중에 과실비율이 드러나면 보험사가 되돌려 받을 수 있다. 

또한 혹시라도 피해자가 너무 가난해 과다하게 받은 가지급금을 보험사에 되돌려주지 못할 경우에는 정부가 그 돈을 대납해 준다. 결국 보험사 입장에서는 손해 볼 일이 없는 가지급금을 왜 안 주려는 것일까?

이는 보험사 직원들의 업무평가 방식 때문이다. 보상직원들은 하루라도 더 빨리 최대한 적은 금액으로 피해자와 합의할수록 높은 평가를 받는다. 

전직 보험사 직원은 "가지급금을 안 주면 피해자는 생활고에 빠지는 등 돈이 급해지고 그러면 합의하기가 훨씬 좋은 조건이 되다 보니 안 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직 보험사 직원은 "보험금을 안 주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어도 한 푼도 손해 볼 일이 없는 가지급금을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안 주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으며 엄연히 위법행위"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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