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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 들려주는 노래 1‘우물 속 나, 우물 밖의 그’ 윤동주 문학관

[환경일보]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서쪽 사이 청운 효자동과 사직동 일대 서촌은 좁은 골목길에 보이는 한옥과 오래된 가게들이 어우러진 오래된 풍경이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그래서일까? 이곳에 머물다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더욱더 서촌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서촌에서 만난 사람들

그를 만나고 싶다면, 경복궁 3번 출구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자하문 고개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에 내리면 된다. 문학관 안에 들어서자 쌀쌀한 날씨에도 그를 찾는 손님들로 실내는 북적였다. 이제 막 사춘기를 지난 학생부터 나이 지긋한 어른들까지 세대는 달라도 그를 향한 애정 어린 눈빛은 다르지 않다. 이것이 죽는 날까지 조국과 민족을 사랑했던 그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까?

윤동주 문학관 제1전시실에서 시기별로 나열된 사진과 친필 원고를 보다가 “영상 보실 분들은 입장해 주세요”라는 안내 멘트에 따라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영상이 돌아가는 제3전시실과 제1전시실 사이를 이어주는 제2전시실은 야외였다. 바깥의 차가운 공기에 정신이 퍼뜩 들어 고개를 드니 새파란 하늘에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저 연결 통로로 무심코 지나쳐 버릴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니 1전시실 가운데 윤동주의 고향에서 가져온 우물이 전시돼 있었다. 야외통로 또한 그의 작품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을 표현한 것이다.

시와 삶으로 시대적 횡포에 당당하게 살아낸 그와 관객이 우물을 사이에 둔 만남이 이뤄지는 중이다. 이 공간을 걸으며 독자는 시 안으로 걸어 들어가게 된다.

윤동주 문학관

정선의 눈으로 바라보다 ‘수성동 계곡’

윤동주 문학관에서 나와 수성동 계곡을 가기 위해 시인의 언덕을 지난다. 산책하듯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탁 트인 시야에 숨 한번 고르기 좋은 곳 하나가 나오는데 바로 서울 전망대다.

탁 트인 시야가 마음까지 열어준다. 가까이 청와대부터 멀리는 남산타워까지 이곳에 서서 바라보면 온 서울 시내가 내 품 안으로 들어온다.

산책길을 걸은 지 좀 된 거 같은데 수성동 계곡 이정표가 금방 나오지 않았다. 마침 반대쪽에서 걸어오는 주민 아주머니들께 길을 물어 확인을 받으니 비로소 마음이 안심이 된다.

수성동 계곡

과거에는 계곡물의 맑은 소리가 진동해 수성동 계곡이라 불렸다지만, 지금은 이름만 남아있다. 그럼에도 이곳을 찾은 이유는 정선의 진경산수화 모델을 실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선은 조선 후기 우리나라 명승지를 두루 답사 다니며 우리 자연과 풍속에 맞춘 새로운 화법을 개척한 화가로 유명하다.

물길을 따라 내려오니 경치 좋은 곳 어디에나 있는 정자가 하나 보이고 마침내 그림 속에 돌다리 기린교를 발견했다. 정선도 바로 여기에서 서서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았을까?

물소리가 없어 고요하고 한적하지만 정선이 모델을 삼아 그렸듯 그보다 앞서 세종의 셋째아들 안평대군의 별장 비해당이 거기 있었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능했던 그가 택한 곳이기도 하니 그 경치와 전망을 짐작할 수 있다.

짧지만 강렬한 시간 ‘윤동주 하숙집’

수성동 계곡에서 서촌 골목길로 내려가다 보면 대문 옆에 태극기가 있는 집이 하나 보였다. 윤동주의 하숙집이었다.

그는 작가 김송의 집에서 후배 정병욱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조금 전 문학관에서 만나서일까, 아는 사람을 다시 만난 듯 반가웠다.

이곳에 그가 머문 기간은 3개월이지만 ‘그때 자화상’, ‘별 헤는 밤’, ‘또 다른 고향’과 같은 그의 대표작들이 탄생한 것을 보면 서촌에 머문 동안 시적 영감이 풍부하게 떠오른 모양이다.

통으로 만나는 작품 ‘박노수 가옥’

수성동 계곡에서 300m쯤 내려오면 박노수 가옥에 도착한다. 1972년 박노수 화백이 구입해 2011년까지 살았던 곳으로 화백이 종로구와 협약을 맺고 집과 작품 1000여 점을 기증해 지금의 종로 구립 박노수 미술관이 탄생했다. 올해 8월까지는 1970년대 작품 중심으로 심영실(心影室)展이 열린다.

신발을 벗고 현관 오른쪽으로 올라서면 응접실이다. 그리고 거실과 안방, 부엌 사이에 난 복도를 따라 1층에서 2층에 올라가면 욕실, 작업실, 다락방이 있다.

그림은 방마다 전시됐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건축가 박길룡이 설계한 집으로, 집안 곳곳에서 마주치는 19세기 반닫이 같은 고가구(古家具)가 함께 있으니 어느 것 하나 작품이 아닌 것이 없었다.

서울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익숙한 분’ 청전 이상범의 집

박노수 화백의 스승 이름 중 낯익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청전 이상범. 1936년 동아일보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삭제해 내보냈을 때 선생은 삽화 담당 미술가였다. 이 사건으로 그는 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고 강제로 언론계에서 쫓겨났다.

청전 이상범 선생의 집은 통인사거리 방향으로 내려가다 골목길에 위치한 누하동에 있다.

골목에는 이웃집이 공사를 하는지 두 명의 인부들이 추운 날씨에도 대문 밖에서 한창 작업 중이었다.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누하동천(樓下洞天) 편액이 보인다. 아담한 마당을 지나 조심스레 미닫이문을 열고는 마루 위로 올라서니 생활공간(청전화옥)은 왼쪽으로, 작업실(청연산방)은 오른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동아일보에서 나온 뒤 선생은 집에서 그림을 그리며 박노수 화백 등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다.

작업실을 보존해 달라는 그의 유언대로 방 안에는 마치 화백이 잠시 자리를 비운 듯 노트와 안경 등이 놓인 책상과 그 앞에 방석이 있었고 작업에 사용된 붓들이 나란히 고리에 걸려 있었다.

살아생전에도 지나가는 이웃과 격 없이 작품을 논하곤 하셨다던 선생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입장료를 받는 매표소나 방마다 지키는 관리자 없이 보고픈 이는 누구나 만날 수 있게 문을 열어둔 채 배려하고 있었다.

창전 이상범의 집

‘말없이 고민할 수 있는 공간’ 이상의 집

서촌 골목에는 한옥과 멋들어진 현대식 가게들이 곳곳에 보인다. 개인 공방, 카페, 갤러리, 베이커리 등등 서촌을 찾아오는 방문자들에게 풍요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러다 그중에 이상의 집을 발견하면 다들 놀라고 만다. 아마도 태극기가 있거나 혹은 옛 가옥을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어서였을 것이다.

비록 기와가 올려 있지만, 기와 아래 새겨진 ‘이상의 집’이라는 글자는 카페 이름처럼 현대적인 디자인이다.

게다가 이 카페는 아니지만 누구나 드나들며 앉아서 쉬었다 갈 수 있고 본인이 원하는 만큼의 기부금을 낸다면 커피도 마실 수 있으니 실상은 카페보다 더 자유로운 공간이다.

이상이 세 살부터 20년간 살았던 집터 중 일부에 그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곳으로 안에는 이상 관련 서적이나 편지글이 있어 누구나 들어와 읽어볼 수 있다.

또 이층으로 올라가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상에 대한 영상이 반복해서 나오는데 캄캄한 층계에 앉아 영상을 보고 있으면 ‘오빠는 풍각쟁이’ 노래가 배경음악을 따라 1930년대 분위기가 흐른다.

서촌 골목길

서촌 골목길을 나오며

이상의 집을 나와 다시 경복궁역을 걷고 있자니 서촌 골목골목 줄이 서 있거나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 보였다.

멋들어진 카페도 아니요, 화려한 식당도 아니었다. 오래된 떡볶이 집이나 반세기 이상을 같은 곳에 있으면서 터줏대감 역할을 하는 서점이었다.

서촌은 그렇게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으면서 글과 그림··· 문화를 창조하는 이에겐 영감을 주고 또 어떤 이에겐 편안함과 익숙함으로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글·사진=박정은 자유기고가>

편집부  press@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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