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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 들려주는 노래 3]
마음속 별천지 부암동을 찾아서

[환경일보] 수도권에 살면서 머리는 식히고 싶은데 시간도 충분치 않고 먼 곳은 부담이 될 때가 있다. 이럴 때 생각나는 곳, 바로 부암동이다.

부암동은 수려한 자연뿐 아니라 주변에 역사 현장이나 미술관이 있어 머리 아픈 일상에서 벗어나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기에 제격이다.

전철을 타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버스를 타고 상명대 입구에서 내린다. 이제 산책을 시작한다.

석파랑 ‘추사 김정희와의 인연, 그림 속의 집’

석파랑

버스에서 내리자 맞은편에 있는 집으로 이끌리듯 눈이 갔다. 돌로 쌓은 석벽 위에 자리한 그 집은 다른 건물들보다 높은 곳에 있는 데다 한옥에 반달 모양 창문이 있어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집이 바로 석파랑이다. 내친김에 그 자리에 서서 사진도 한 장 찍었다. 가로등과 가로수에 좀 가려지지만 건물 안에 들어가서 찍을 때보다도 정면 샷이 훨씬 더 자연스럽게 나왔다. 소전이 기거했던 곳은 지금 한정식집으로 운영되고 있다.

석파랑은 본래 자하문 터널 북쪽 입구에 있던 석파정의 별당이다. 소전 손재형이 이곳에 집을 지으면서 1958년 옮겨왔다. 그는 일본으로 유출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어렵게 한국에 되찾아 온 일화로 잘 알려져 있다. 대한의 서예가로 유명한 소전 손재형과 조선 시대 추사체로 이름을 날린 김정희. 둘은 모두 청나라 스승에게 배운 경험이 있다. 그가 직접 추사의 그림을 되찾아온 것이나 세한도에 그려진 석파랑을 사서 자신의 집에 옮겨온 것은 어쩌면 다른 시간 속에 살았지만, 마음만은 추사와 함께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백석동천 ‘북악산의 무릉도원’

백석동천

이번엔 숲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 본다. 백석동천을 찾아 백사실계곡으로 방향을 잡았다. 홍제천을 끼고 걷다가 백사실계곡 이정표가 보이면 꺾어 들어간다. 자하슈퍼를 지나 일붕선원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선다. 조선 중기 문신인 백사 이항복이 이곳에 별장을 지었다하여 이름 붙여진 백사실계곡. 지금은 그 물이 거의 마른 상태지만 예전에는 이곳에서 북악산의 풍경을 즐겼으며, 개구리·맹꽁이·도롱뇽이 서식할 만큼 깨끗한 곳이었다고 한다. 이제는 그 모습을 상상으로나마 그려본다.

주변에는 추사 김정희의 아버지 유당 김노경의 별서(별장) 터를 지나 거기서 100m 정도 더 올라가면 白石洞天(백석동천)이라 새겨진 바위를 볼 수 있다. 지금은 백사나 유당의 별장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그들에게 선택받은 땅에 발을 디뎌보는 것에서 의미를 찾아본다. 유당의 별서는 사랑채와 안채 등 두 채의 집터와 연못 두 개, 정자 등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 고요한 산속에 지금도 뚜렷이 남아 있는 그 자리를 보니 다시금 건물을 세운다면 어떨까 싶은 개인적인 욕심이 생겼다.

라카페갤러리 ‘과거를 팔아 미래를 사지 않겠다’

라카페갤러리

백석동천 바위를 지나 계속 길을 오르면 언덕 맨 위에 다다르고 북악산 성곽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림 같은 배경을 옆에 끼고 걷다 보면 기분도 하늘 가까이 날아오른다.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산모퉁이 카페를 지나 5분여 걷다 보면 ‘라 카페 갤러리’다.

순수한 열정도 드높은 이상도 시간이 흐르고 시련의 바람을 맞으면 사그라지거나 변질된다. 그런 일이 익숙해져 가기 때문일까. 오히려 묵묵히 변치 않고 걸어가는 사람을 만나면 놀라워 계속 바라보게 된다. 라카페갤러리의 박노해 시인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라카페갤러리는 열정과 이상을 포기하지 않고 사는 사람 박노해 시인이 만든 비영리 단체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걷고 또 걸었더니 차 한 잔하며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반가웠다. 안에 들어가니 정면에는 차 주문을 받는 카운터가 있고, 왼쪽에 카페가, 오른쪽에 갤러리가 있었다. 갤러리에는 시인이 중동, 아프리카, 인도네시아, 티베트, 몽골 등에서 찍은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누구나 한 번 사는 것은 같지만, 걸어가는 길은 제각기 다르다. 관람객들 저마다 어떤 사진 앞에선 멈춰 서기도, 사진을 카메라에 담아가기도 했다. 사진 속 인물들이 말을 걸어오는지, 작품의 깊은 메시지를 읽는 듯 말이다.

현재 라카페갤러리는 이 전시를 마지막으로 경복궁역 근처로 이사했다. 올해 상반기 내 오픈 예정이다.

석파정 ‘다시 찾고 싶은 정원’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석파정 입구를 바로 찾을 수 없어 안내에 물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라고 한다. 건물 3층에 있다고? 희한하다고 생각하며 입구에 들어서자 이럴 수가!

조금 전까지 대로변에 있던 내가 고즈넉한 한옥 정원에 들어와 있었다. 북악산, 인왕산, 북한산이 한꺼번에 보이는 곳. 운치 있는 한옥과 숲 그 사이로 이어지는 오붓한 산책길을 걷노라니 마음에 절로 여유가 찾아온다. 산책 길 한 가운데 정자가 눈길을 끈다. ‘유수성중관풍루’, 흐르는 물소리 속에서 단풍을 바라보는 누각이라는 뜻을 지닌 정자는 지붕에 기와 대신 동판을 얹는 서양식 건축기법으로 지어졌다. 이름처럼 흐르는 물과 함께 감상할 수 없는 건 아쉬웠지만 누각에서 바라보는 절경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곳의 주인이었던 김흥근이 끝까지 팔고 싶지 않았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석파정은 원래 철종 때 영의정까지 지낸 김흥근의 별서였는데 흥선대원군의 소유가 되었다. ‘석파’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호에서 따온 이름이다. 지금처럼 석파정의 아름다움은 변함이 없었던 모양인지 장안에 소문이 자자했다. 흥선대원군이 그 별장을 팔라고 제안했지만, 김흥근이 계속 거절했다. 결국 하루만 빌리기로 하고는 고종을 그곳에 모시고 갔다. 당시에 임금이 머문 곳은 신하의 의리로 사용할 수가 없었으니 김흥근은 그곳에 돌아갈 수 없었다. 이렇게 석파정은 대원군의 소유가 되었다. 이후 운현궁 후손들이 계승해오다 1974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석파 문화원에서 소유·관리하고 있다.

한옥과 숲, 심지어 큰 바위마저도 발걸음 멈추게 하는 곳. 어디나 아름다운 광경이 보인다. 입장권은 7000원이고 주말에는 오후 3시까지 해설사가 있다.

무계정사 ‘잊힌 무릉도원을 찾아서’

무계정사

석파정을 나와 도로를 따라 올라갔다. 무계정사 터를 찾아가기 위해서다. 안평대군이 꿈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 안견의 몽유도원도이고, 꿈에서 본 복숭아나무 꽃동산을 부암동에서 발견했다는 곳이 무계정사다.

지금은 개인 소유지라 그곳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는 없지만 꿈에서 본 곳을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라니 멀리서라도 한번 보고 싶어 들렀다.

부암동은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일상과 조금 떨어진 이상세계, 별천지를 떠올리게 하는 동네였다. 그 옛날 고위 관직의 양반들도 마음을 뺏겼던 곳 아닌가.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만큼 바쁘게 사는 우리도 부암동에서 잠시 마음 뺏겨보는 건 어떨까.

<글·사진=박정은 자유기고가>

이채빈 기자  green900@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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