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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 들려주는 노래 4]
지붕 없는 박물관

[환경일보] ‘성북동’하면 북악스카이웨이라든지 경사진 길이 연관 검색어처럼 떠올랐다. 역시나 다른 어느 동네를 걸을 때보다 숨이 찼다. 다만 산 아랫동네라 그런지 경치가 좋았다. 또 시인 조지훈, 만해 한용운, 법정 스님, 상허 이태준 등 이름만 들으면 알 법한 인물들이 수두룩한 동네였다. 수많은 인물이 살던 동네는 어떤 매력을 지녔는지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 방우산장 - 시인의 방 조형물

방우산장 조형물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렸다. 5번 출구로 나와 길을 따라 쭉 가면 신한은행이 보이는데, 그 맞은편 버스정류장에 ‘방우산장-시인의 방’이라는 조형물이 있다. 청록파 대표 시인 조지훈 시인을 기리기 위한 공간이다. 그는 혜화 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 문과에 입학하면서 성북동과 인연을 맺었다. 그 후로 30년 동안 성북동에 살면서 창작활동을 해나간다. 그가 살던 집은 헐리고 지금은 다세대 주택이 들어서 있었다.

조형물은 굳건한 돌 안에 바람도 햇빛도 통과시킬 수 있는 목재 빗살문이 있어 운치가 있다. 계단을 밟고 올라서면 노란 짚 카펫 위에 나무 의자들이 둥글게 마주 하고 있다. 조형물이 있는 곳은 버스정류장 바로 옆, 굳이 불러 모으지 않아도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니 오가는 사람 누구나 자기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열린 공간이었다.

조지훈 시인은 생전에 살았던 모든 집에 ‘방우산장’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마음속에 소를 한 마리 키우면 직접 소를 키우지 않아도 소를 키우는 것과 다름없다는 ‘방우이목우(放牛而牧牛)’의 사상이 그 내용이다.

◇ 선잠 박물관 - 누에치기를 알려준 서릉을 위하여

선잠 박물관

방우산장 조형물이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성북 초등학교 방면으로 5분 정도 걸으면 선잠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지난해 4월에 개관됐다. 상설전은 2층까지고, 특별전이 있을 땐 3층도 사용된다.

성북동에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 선잠단 터가 자리를 지켜왔다. 선잠단은 조선시대 나라에서 누에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던 제단(祭壇)이다. 이곳에서 진행된 선잠제는 왕실 의례 중 하나로 음악과 노래, 무용이 어우러진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1908년 일본에 의해 중단되기도 했지만, 1993년 주민들이 재현하면서 되살아났다.

해마다 뽕잎이 나기 시작하는 음력 3월에 선잠단에서 제사를 지냈기에, 음력 3월을 잠월(蠶月)이라고도 했다고 한다. 규모는 아담하지만 의미 있는 박물관과 더불어 선잠단이 다시금 살아나 성북동의 정체성이 되살아나기를 바란다.

◇ 한양 성곽길 - 경계를 넘어

한양 성곽길

북정마을로 가려고 도로를 따라 걷던 중 하늘 가까운 곳에 한양 성곽길이 보였다. 조용히 걸을 겸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선잠 박물관 맞은편 삼거리에 작은 공원이 있다. 그 공원 뒤에 ‘말바위 안내소 가는 길’이라는 표지가 보이면 성곽길 시작이다.

길은 사람들이 걷기 좋게 정비돼 있을 뿐 아니라 성곽 너머보이는 성북동을 바라보며 운치 있는 시간도 보내기에 최적이었다. 한양도성은 과거 성안과 밖 주민의 신분을 구분 짓는 엄격한 경계였다. 지금은 성곽이 해체되고 분리와 경계의 의미가 아닌 경관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산책하는 가족들이 눈에 띄었다. 동네 꼬마들이 노는 놀이터를 지나 팔각정을 마주치면 북정마을로 빠지는 문이 나온다.

◇ 북정마을 - 달라지는 달동네

북정마을

성곽길에서 빠져나오니 꼬불꼬불한 골목길이다. 좁은 골목에서 더 들어가니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인다. 마을버스 정류장 앞에는 동네 터줏대감 같은 슈퍼마켓이 있다. 그 옆 낡은 서점에는 세월이 배어나고 있었다.

요즘은 북정마을을 찾으면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다. 해가 지면 보이는 달동네 풍경만이 아닌 예술가들의 거리 때문이다. 도시 재생사업을 통해 젊은 예술가들이 참여해 환경을 바꿔나가고 있다. 화장실이라든지 낡은 회색 벽들이 깔끔하게 다듬어지는 것이다. 겨울에서 봄이 되듯 북정마을도 무채색에서 색깔을 갈아입나 보다.

◇ 심우장 - 집이 곧 그 사람

심우장

‘심우장 가는 길’ 표지판을 따라 걷는 것이 숨이 찰 때쯤 심우장에 도착했다. 이곳은 문인이자 승려였으며 독립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 선생의 집이다. 선생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항거해 옥고를 치른 뒤 1933년부터 입적할 때까지 11년을 심우장에 머물렀다. 그리고 총독부와 마주 보고 싶지 않아 집은 북향으로 짓고 독립을 하기 전까진 조선 땅 전체가 감옥이라며 불도 때지 않았다. 심우장은 그 자체가 선생의 꼿꼿한 기상이고 타협할 줄 모르는 의지였다.

심우장 위에 태극기는 마치 집을 보호하듯 감싸고 있었다. 생전에는 조국의 보호 아래 살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의 집에 태극기가 커다란 훈장처럼 자리하고 있다. 방안에는 선생의 자화상과 손수 쓴 글씨나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기사, 책들이 전시돼 있었다. 벽에 걸린 일대기를 읽다보니 그의 인생 목적이 오롯이 떠오른다.

심우장은 저 아래 시가지와는 조금 떨어져 있는 대신 북악산의 맑은 공기는 마음껏 들이마실 수 있는 곳이다. 깨끗한 자연이 홀로 숱한 역경을 이겨낼 때마다 힘을 보태준 덕일까.

◇ 비둘기공원 - 성북동 비둘기가 사는 곳

심우장을 나와 다시 북정마을 표지판을 따라 올라갔다. 발아래에는 고급 주택가가 펼쳐졌다. 멀리는 블록처럼 각이 잘 잡힌 아파트 단지들이 빽빽하다. 이 가운데 알록달록 비둘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새들은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를 테마로 한 공원에 살고 있다.

공원 벽에 시가 쓰여 있어 이곳을 찾은 사람이면 누구나 시를 읽을 수 있다. 예전에는 공장들의 연기에 성북동이 옛 모습을 잃어갔다면 요즘은 미세먼지로 성북동 뿐만 아니라 서울 곳곳의 공기가 모조리 탁해졌다.

◇ 길상사

길상사를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북정마을 종점에서 마을버스로 이동하는 것과 성북동 저택들을 구경하며 골목길을 오르는 것이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경사진 성북동 골목을 오르면 마을버스가 반가워 보일 수도 있다.

길상사는 고급 요정의 주인이었던 김영한이 법정 스님에게 시주한 곳이다. 김영한은 백석 시인의 연인이었다. 두 사람은 집안의 반대로 사랑을 이룰 수 없자 만주로 떠나 함께 할 결심을 한다. 하지만 그의 앞길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 김영한은 거절했고 백석만 홀로 만주로 떠났다.

그 사이 한국 전쟁으로 생긴 휴전선은 둘 사이를 진정 가로막아 버렸다. 후에 사업이 성공해 재산을 많이 모았던 김영한은 “그까짓 1000억의 돈, 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고 말했다. 또 매년 백석의 생일이 되면 종일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백석과의 인연은 그렇게 그녀 인생 전체에 스며들었나보다.

김영한은 그 후에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감화돼 한때 요정이었던 대원각을 시주했고, 사찰은 그의 법명이 길상화인 것에서 길상사라 이름 지어졌다. 서울에 자리한 덕분에 근교에 사는 마음이 지친 사람들은 멀리까지 가지 않고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길상사를 찾은 시간은 오후 4시쯤이었다. 한가로울 줄 알았던 경내가 생각보다 사람도 많고 분주한 모습이었다. 마침 이날이 법정스님 9주기였다. 스님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그토록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사람들은 그날 하루일지언정 법정 스님을 떠올리며 내달리는 삶의 고삐에 힘을 좀 푼다.

성북동은 오늘 찾은 곳들뿐이 아니라 여러 코스를 계획할 수 있을 만큼 다채로운 곳이었다. 간송 미술관과 수연 산방, 최순우 옛 집, 옛돌 박물관 등 취향에 맞게 그리고 때에 맞게 방문하면 그때마다 다른 매력을 선사할 것이다.

<글·사진=박정은 자유기고가>

이채빈 기자  green900@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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