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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철의 떡갈나무 혁명②]
생태주의는 자연주의가 아니다!
자연주의와 제도주의를 포괄하는 생태주의로
신승철 작가

[환경일보] 한때 자연주의가 생태주의라고 착각되었던 시점이 있었다. ‘스스로 자(自), 그러할 연(然)’이라는 자연의 의미대로 몸에 털이 자라듯이 자연을 그대로 두면 저절로 치유되고 잘 자랄 것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자연에 대한 신비와 영성적인 힘에 대한 생각, 자연치유력과 자가면연력 등에 대한 신념, 자생성에 대한 신화 등으로 발현되었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생명 위기 시대가 도래 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이러한 시점에서 자연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그것은 결국 파멸과 멸종으로 향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자연과 생명의 거대함과 위대함 앞에서 왜소하고 취약한 인간으로서 대면했던 시점은 지나갔다. 오히려 자연이 더 취약하며 연약하다는 점이 대기층, 생물권, 미생물, 동식물군락, 해양생태계 등의 영역에서 드러나고 있는 시점이다. 이제 자연은 인간의 보호와 보존의 구체적인 행동에 따라 지속가능성이 약속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낭만과 향수, 정감을 불러일으키던 자연주의는 더 이상 생태주의가 아니다.

막대한 기후변화 시대에 생태주의가 갖고 있는 과제는 자연주의와는 달리, 인간의 개입으로서의 거대계획, 거대프로그램, 제도 생산 등을 통한 자연에 대한 보호와 보존의 구체적인 실천과 노력이 요구된다. 이는 자연 그대로가 아닌 인위적인 인간의 개입에 따라 자연을 보존하려 한다는 점에서, 보는 이에 따라 자연의 본연의 모습과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산업사회의 전개과정에서 벌어진 자연의 파괴와 생명의 멸종 등과 관련해서는 인류가 만들어낸 구체적인 제도, 시스템, 프로그램의 개입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를 테면 야생동물을 자연 그대로 두면 야생성에 따라 잘 지낼 것이라는 자연주의의 구도로부터 벗어나, 야생동물보호구역이라는 제도를 필요로 한다.

자연을 경관이나 풍광으로 감상하면서 그대로 두면 숲은 울창해지고 갯벌과 습지가 잘 보호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연보호구역이나 습지보존구역 등의 제도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제도주의의 맥락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바로 환경위기를 일으킨 주범인데, 자연에 대해 인간이 다시 개입한다고 크게 변하는 게 있겠냐는 반응이 그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파괴한 것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인간이 나서서 복원하고 보호하려는 노력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현시점에서 제도를 만능열쇠로 보는 것도 문제가 있겠지만, 제도를 도외시하는 것도 문제가 될 것이다.

자연과 생명은 인류문명의 외부라고 간주되어 왔다. 이러한 외부성은 자율성과 야생성의 원천이며, 문명의 밖에 있는 것으로 사고되었다. 그러나 자연과 생명은 문명의 ‘내부의 외부’로서의 이미 인류문명 안에 들어와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현 시점에서 자연과 생명을 외부라고 바라보는 태도는 겉으로는 자연친화적인 모습인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사실상 자연과 생명을 보존하고 보호하려는 노력으로부터 면죄부를 받는 꼴이 된다.

성장주의 시대에는 자연과 생명은 무한하고 광활해서 이를 도구적으로 이용하고 약탈하여도 자연치유력과 자연복원력에 따라 되살아나고 재생될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들은 제3세계에 공장을 이전하고 이곳에 폐기물과 쓰레기를 버리면서 그 현지의 자연과 생명에게 자신의 책임을 떠넘기기도 했다. 자연과 생명에게 개발의 대가를 떠넘기면서 이윤을 남기는 것을 외부효과(external effect)라고 부른다. 외부효과는 그 당사자가 아닌 제3, 제4의 것에 영향을 주고 떠넘김으로써 이득을 취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제는 외부효과의 소멸 즉 외부의 소멸의 국면에 직면해 있다. 바로 개발로 얻은 이득이 생태복원비용보다 낮은 상황이 온 것이다. 자연과 생명이라는 외부에 책임을 떠넘김으로써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이에 따라 자연과 생명을 문명의 내부의 외부로 어떻게 보존하고 보호할 것인가의 여부가 매우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다.

외부의 소멸은 결국 성장의 동력이 뚝 떨어지는 상황을 의미한다.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1972)라는 보고서는 지구의 한계, 자연의 한계, 생명의 한계를 명확히 했다. 그 보고서의 파문은 무한성장과 무한진보를 약속하는 성장주의 시대에 자원-부-에너지로 간주되어 왔던 생명과 자연의 한계를 분명히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현재와 같이 기후변화 상황이 문명의 전환을 시급히 촉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성장주의 시대로 돌아간다는 것은 인류에게는 파멸적인 결론밖에 기다리고 있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인류는 자연과 생명을 더 이상 그대로 두면 잘 자랄 것이라고 보고 성장을 가능케 하는 자원으로 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존하고 보호하면서 함께 공생할 길을 찾아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외부의 소멸로 인해 인류문명의 양상은 급격히 변하고 있는 중이다. 갑자기 자본은 외부로 향할 수 없게 되자, 내부로 눈을 돌려 공동체와 집단지성, 골목상권, 오픈소스 등을 먹잇감으로 여기는 질적 착취의 단계로 이행했다. 또 갑자기 화성을 개척한다는 등의 허황된 계획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구는 인류의 집이자 고향이다. 이곳을 떠날 수 없으며, 자연과 생명과 더불어 문제의 해결방안을 찾아나가는 구체적인 실천방안과 프로그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기후변화 상황에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전환사회로의 이행에서 생태주의가 해야 할 몫이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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