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곡물자급률 24% 수준···식량안보법 제정 시급
2050년 세계인구 97억명, 지금보다 식량 1.7배 필요

기후위기시대 식량안보법 제정 방안 모색 토론회 <사진=이채빈 기자>

[국회의원회관=환경일보] 이채빈 기자 = 기후변화가 식량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에 따라 독자적인 식량안보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최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와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기후위기시대 식량안보법 제정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이같이 주장했다.

곽상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사진=이채빈 기자>

이날 발제자로 나선 곽상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기후변화 위기는 식량위기”라며 “에너지와 환경, 식량은 하나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요 곡물수출국의 기상이변이 전 세계 식량수급에 끼치는 영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며 “식량 수요 증가와 바이오 연료 수요 증가, 기후변화 등 미래 곡물 수급이 매우 불투명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오는 2050년 세계 인구는 약 97억명이 되면서 지금보다 1.7배의 식량이 더 필요할 전망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2017년 기준 2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최하위인 32위다. 

곽 연구원은 1960년대 90%였던 자급률이 24%로 떨어진 이유로 ▷육류소비 증가 ▷농경지 감소 ▷식량에 대한 문제 인식 부족을 꼽았다. 또 FAO의 자료를 인용하며 “우리나라의 농지는 해마다 서울시 면적의 3분의 1가량인 2만ha씩 사라지고 있다”며 “1970년대 농지면적은 약 230만ha였으나 산업단지와 택지, 도로 등 개발로 30%가 훼손된 상태”라고 말했다.

반면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당시 우리보다 식량자급률이 낮았던 일본은 해외 곡물유통망을 소유하고 해외 농장을 경영해 곡물자주율 100%를 넘어섰다. 곽 연구원은 “일본이 곡물자주율 100%를 넘긴 것은 정부와 민간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일본의 식량자급률은 2020년 50%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식량안보 차원에서 정부 정책의 한계도 언급됐다. 2007년 개정된 ‘농업농촌식품산업기본법’에 따르면 정부는 유지해야 할 적정수준의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설정해야 한다. 그러나 자급률 수립대상과 범위가 명확하지 않으며, 목표치 달성에 대한 법적 구속력이 없다. 곽 연구원은 “관련 규정은 있으나 법적인 구속력이 없으면 있으나 마나 한 법”이라며 “지켜지지 않는 법은 법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수립한 2018~2022년 농업·농촌·식품발전 5개년 계획에 따르면 식량자급률 목표치는 60%에서 55.4%, 곡물자급률 목표치는 32%에서 27.3%, 주식자급률 목표치는 72%에서 63.3%로 줄었다. 곽 연구원은 이 계획에 대해 “자급률 목표치가 떨어져 오히려 식량안보 정책에 역행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목표치 달성을 위한 세부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고, 식량안보 부분을 분리해 별도의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식량안보를 외면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곽 연구원은 “1991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농지 100%로 시작한 새만금 간척지는 2007년 농지 70%로 줄었고, 2008년 30%로 줄더니 급기야 지난해 원전 4기 규모의 태양광과 풍력발전 단지 조성을 발표했다”며 “이러한 결정은 식량안보 개념을 원천적으로 배제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곽 연구원은 ‘국가 식량안보 구축을 위한 농업혁신정책 제안’으로 ▷법적 효력이 있는 국가농업 중장기 연구개발(R&D) 로드맵 구축 ▷농업혁신기술 개발 및 활용 ▷해외농업 전략 수립 ▷곡물비축시스템 구축을 촉구했다.

임정빈 서울대학교 교수 <사진=이채빈 기자>

이어진 토론에서 임정빈 서울대학교 교수는 “작물별로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미국·브라질 등 소수 국가가 식량을 수출하고, 나머지 200여개 국가는 식량을 수입하고 있다”며 “최근 아르헨티나에서 가뭄이 발생하면서 국제 콩 가격이 급등했던 사례에 비춰보면 기후변화로 인해 식량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굉장히 높다”고 진단했다.

이어 “식량안보법이 필요한 것에는 동의하나, 식량안보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먼저 형성돼야 법을 제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싸게 사서 먹으면 된다는 인식을 바꾸고, 식량안보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홍성진 농촌진흥청 연구정책국장 <사진=이채빈 기자>

홍성진 농촌진흥청 연구정책국장은 식량안보를 위협하는 요소로 ▷기후변화 ▷에너지 위기 ▷고령화 ▷물 부족을 꼽았다. 그는 “기후변화 프로그램에 따르면 2040년 쌀 생산량은 20%가량 감소한다”며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려면 과학기술에 기대할 수밖에 없지만, 농업 분야 R&D는 연구부터 실용화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인중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관 <사진=이채빈 기자>

김인중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관은 “곡물자급률이 무척 낮은 수준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법 제정에 대해서는 조심스럽다”고 견해를 밝혔다. 

그는 “곡물자급률이 24%로 떨어진 주된 이유는 사료용 수입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며 “구매력까지 포함한 영국 이코노미스트 지표인 식량안보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07개국 중 24위로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식량자급률은 비용의 문제다. 국민들이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못 느끼는 이유는 나라의 경제력과 구매력이 향상됐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수입 밀은 300원이지만 국산 밀은 1000원이다. 이 가격 차이를 누가 부담할 것인가가 식량안보 문제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4차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발전에는 상당한 시간과 공을 들이면서 정작 중요한 먹거리 문제는 등한시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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