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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을 희극처럼’ 모순된 삶과 마주하기[서양화가 김중식이 만난 뻔FUN한 예술가 ⑩] 이흥덕 작가
종착역 290.9x218.2cm Oil on canvas 2018 이흥덕

이흥덕 작가는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만화를 통해 그림을 배웠다. 여러 사람의 특징과 주변 사물, 풍경을 간단한 선으로 표현한 것에 흥미를 느껴 거의 매일같이 형상 독서를 했다. 인간이 사는 이야기와 서사, 희로애락을 만화로 접하고 따라 그린 것이 익숙해지면서 그림을 그리게 됐다.

이흥덕의 작품은 세 가지 소재를 살펴봄으로써 더욱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크게 ▷도시에 관한 단상 ▷중산층의 사회심리 ▷에로티시즘 미학을 통해 우리 사회를 진단하고 해부하며 발언하려 한다.

이들 주제는 사실 그의 그림에서 늘 정치적인 의도에 의해 정교하게 설계된다. 다시 말해 작가가 의도한 방향으로 이행되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는 큰 틀 안에서 쉽게 방황하기도 하고, 뒤섞여 스스로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편안하게 이들 주제를 넘나들며 작업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시시각각 변모되는 우리 일상으로부터 소재를 취해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작가소개 중에서>

카페 91x60.6cm Acrylic on canvas 1987 이흥덕

이흥덕 작가는 1980년대 이래 지금까지 줄곧 형상성, 서술적 이야기, 풍자, 블랙 유머 등을 통해 동시대 우리 사회 소시민의 일상과 그 너머에 도사린 폭력과 공포, 불안의식과 심리, 저항 등에 대한 천착을 계속해왔다. 그는 이런 작업의 내용이나 주제와 비례하는 회화적 형식의 변주, 어법, 실험이 돋보이는 작가이기도 하다.

부조리한 현실을 심리적이면서 관찰자적인 시각으로 풀어내고, 폭력의 현재성에 대해 비판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시각과 비판성은 시기별로 약간씩 다른 형식과 정서를 보여준다. 소재나 배경 공간도 마찬가지로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아마도 그가 거주하던 공간, 혹은 자주 다니던 장소가 달라지면서 그림에도 자연스러운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80년대 초중반에는 일반적인 도회지 풍경과 소시민의 불안한 삶이, 8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서는 카페라는 공동공간에서의 소외와 단절이,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지하철과 신도시가 서술의 주 무대가 된다. 이처럼 도회적인 공간에서 사람들의 삶과 작가의 주변적 정서가 심리도상으로 표출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여겨진다.

지하철사람들 727x227cm Oil on canvas 2002 이흥덕

이흥덕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시기별 내용과 형식에 좀 더 집중하길 바란다. 불안이라는 피해의식으로부터 자신을 자각하고, 현실의 다양한 모순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마침내 저항적 정서에 이르는 작업의 궤적이 눈에 띈다. 비판의식을 비롯한 작가의 전반적인 의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조형적 방법은 어떤 식으로 통일되는지 주목하고자 한다.

그의 작품은 세상 속에 있는 숱한 사람과 그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바라보며 다시 세상을 이야기한다. 마치 지구하고도 한국, 그리고 서울의 어느 지붕 밑 식탁 위의 사과와 과도를 보면서 결국은 사과나 칼 세상 모두를 아울러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들의 사소한 일상인 사과나 과도를 보면서 테이블, 방, 집, 동네, 서울, 한국, 지구로 시각을 확대한다는 뜻이다.

저돌적야성의 종말 259x193.9cm Oil on canvas 2006 이흥덕

비극을 희극처럼 아이러니하게 서술하는 이흥덕의 작품은 때로는 은유로, 때로는 상징으로, 때로는 기호를 통해 욕망과 권력(힘)의 수사학을 표현한다. 따라서 사과나 사람을 ‘사과’나 ‘사람’이 아닌 싱싱함이나 부패로, 선과 악으로, 그리고 욕망이나 이성으로 환치시킨다.

성(性)은 이러한 상태, 즉 인간의 육체라는 하드웨어를 섹슈얼하게 드러내면서 육체로부터 확대되는 욕망과 권력에 대한 관념이나 개념을 이야기하는 매개체로 제시된다. 이러한 특징은 성을 통해 우리 사회의 현실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감각적인 조형적 쾌감을 끊임없이 탐닉하는 인간의 양면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욕망은 육체적이고 물리적인 조건을 끊임없이 확대하고 재생산할 수 있는 비판적인 대사다. 아울러 오늘을 사는 인간들을 정확하게 규명할 수 있는 질료가 된다. 성과 욕망은 사회화의 과정에서 쉽게 폭력적인 힘으로 전이되고, 그 힘은 결국 우리들의 일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비이성적인 실체로 형상화된다.

타이거마스크 130x130.3cm Oil on canvas 2012 이흥덕

이채빈 기자  green900@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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