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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인프라 변화 없인 그린뉴딜 추진 어려워”
‘기후협상일지’ 펴낸 최재철 기후변화센터 공동대표
이상고온에 산불 늘어···생존 위협하는 ‘기후 재난’
“기후변화 정책, 탄소배출량 낮추는 데 초점 둬야”
최재철 기후변화센터 공동대표(전 기후변화대사)가 39년간 기후변화 환경외교 현장에서 활동한 경험을 비망록 형식으로 담아냈다. <사진=이채빈 기자>

[서울=환경일보] 이채빈 기자 = 기후위기 현상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추운 지역인 시베리아 베르호얀스크의 기온이 최근 40도 가까이 치솟았고, 러시아 극동에서는 산불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크라스노야르스크주의 한 발전소에서 발생한 사상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의 원인도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39년간 기후변화 환경외교 현장에서 활동한 최재철 기후변화센터 공동대표(전 기후변화대사)는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이상 기후 현상을 주목하면서 국가 간 치열한 분쟁을 우려한다. 그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재앙은 일시적 비상사태가 아닌 지속적인 위기”라며 “모든 국가가 우선으로 추진해야 할 일은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후변화가 인간의 활동에서 비롯됐다는 건 잘 알려졌지만,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가는 국제 기후협상에서 골치 아픈 숙제였다. 역사적으로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했던 국가들이 다른 나라들보다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가를 놓고 국가 간 갈등이 첨예했다. 1992년 리우회의를 시작으로 2015년 파리협정 타결까지 모든 국가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로 합의하는 데 무려 2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최재철 대표는 지구 역사상 가장 중요한 2주라고 불리는 Post-2020 신기후체제 출범을 위한 국제협상에 참여했다. 그 기간의 기후변화협상 경험 등을 비망록 형식으로 담아낸 신간 ‘환경외교의 길을 걸었던 외교관의 기후협상일지’(이하 기후협상일지)는 단순한 협상 과정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미래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기후협상일지’를 쓰게 된 계기는.

최재철 전 기후변화대사가 국제 협상 과정을 기록한 수첩 <사진=이채빈 기자>

현재의 위기는 어느 한 국가만의 일이 아니다. 범지구적 협력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2015년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는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을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에게 묻는 파리협약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책에는 당시 기후변화대사로서 정부대표단을 이끌며 치열한 협상 과정과 온실가스 감축목표 수립과정 등 생생한 기후외교 현장을 담아냈다. 신기후체제가 출범하는 총회에 한국 수석대표로 참여하는 것은 외교관으로서 흔치 않은 기회이자 영광이라 나름대로 메모를 많이 했는데, 이를 모았더니 한 권의 책이 되더라. 정부에서 협상 편람을 내기도 하지만, 일반인이 보기엔 다소 형식적이고 딱딱한 면이 있어 이야기 위주로 재미있게 풀어봤다. 기후변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

수록된 내용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꼽자면.

가장 쓰라렸던 기억이 있다. 2015년 2월 제네바에서 열린 신기후체제 협상회의(ADP) 때 일이다. 190여 개국 대표들이 제네바에 모인 가운데 COP21에서 결론이 날 새로운 기후변화협약의 협상 문서를 마련해야 했다. 그런데 우리를 제외한 스위스와 멕시코 등의 자발적국가탄소감축량(INDC) 작성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우리는 국내적으로 INDC 준비 중이었고, 내부적으로 회의를 하는 단계였다. 멕시코의 협상대표는 관계부처 실무차원의 논의가 잘 진행되지 않아 환경부 장·차관이 직접 INDC 작성을 챙기고 있다고 했다. 반면 우리 환경부의 경우 무관심 때문인지 부처의 한계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INDC 작성 일정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청와대 담당 수석에게도 몇 차례 보고했지만, 진전이 없었다. 여전히 환경은 산업과 에너지를 선도해 나갈 수 없다는 현실에 답답했다.

그간 수많은 협상을 이끌어왔다. 나름의 소통 노하우가 있다면.

국제박람회기구(BIE) 업무를 하면서 협상에 대해 가장 많이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2007년 BEI 총회를 앞두고 파리에 방문했는데, 중남미 한 친구가 “한국 사람들은 돌아다니면서 마음을 상하게 하고, 모로코 친구들은 마음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충고에 우리의 협상 전략을 되돌아봤더니 상당히 잘못된 점이 있었다. 우리는 발언문을 읽거나 협상을 진행할 때 간혹 다른 나라와 비교하며 우리의 장점을 부각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한국은 1960년대에는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못 살았지만, 지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며, 주요 신흥경제국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상대편으로선 어떤 기분이 들까. 쉬운 말로 ‘잘난 체 좀 그만하라’라고 할 것이다. 협상할 때는 최소한 상대편의 마음을 다치게 해선 안 된다. 되도록 말을 적게 하더라도 세련되게 의사를 전달할 줄 알아야 한다. 미소로 나타내 보이거나 웃으며 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언어는 ‘스마일’이다.

한국은 ‘기후악당’과 ‘IPCC 의장 보유국’ 등 상반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협상을 어렵게 만들진 않나.

최재철 기후변화센터 공동대표 <사진=이채빈 기자>

국제사회가 한국을 이른바 ‘기후악당’으로 부르기 시작한 건 2016년 무렵이다. 당시 국제 기후변화 연구기관들이 한국을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세계 4대 기후악당으로 지목했다. 한국 정부가 단기적인 이익만 우선시하며 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또 해외 석탄발전 투자 때문이다. 안 그래도 석탄발전 비중이 높은데, 국가 공공기관과 금융기관 등이 석탄발전소 해외건설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선 별로 논쟁을 하고 싶지 않은데, 우리나라가 에너지 분야에서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건 화력발전 밖에 없다. 중국과 프랑스가 해외 태양광과 풍력 시장을 석권하는 사이 한국은 스스로 도태됐다. 애초에 전력거래소를 만들 때 분산형으로 만들면 되는데, 우리나라 같이 전력시장을 독점한 상황에선 주민들이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다. 가장 답답한 부분이다. 전력시장 개편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계속 늘어나 협상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신기후체제가 고용과 신산업 창출에 엄청난 기회라고 말씀하셨다. 그린뉴딜과도 상통하는 듯하다.

신기후체제든 그린뉴딜이든 산업과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성장전략이지, 기후변화 대응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지구온난화와 일자리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2015년 파리협정을 계기로 탄소 가격제를 도입해 배출권거래제가 더욱 활성화되고, 전력시장이 개방돼 이에 따른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이다. 지금쯤이면 전력시장이 민영화돼 개인이 전기를 사고파는 시대가 올 줄 알았지만, 여전히 독점체제다. 신기후체제가 출범했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변화된 건 아무것도 없다. 고작 재생에너지 비중을 조금 늘린 정도다. 그린뉴딜은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 제로를 목표로 한 새로운 성장전략이다. 우선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45% 감축해야 한다. 우리의 문제는 정책을 이행할 기반이 구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위 ‘전력 독점체제’를 유지한 채 어떻게 그린뉴딜을 추진할 수 있겠나. 덴마크는 100% 풍력으로만 전기를 공급하는데, 우리나라는 송전망조차 없다. 결국은 탄소 중립 사회로 전환하려면 커뮤니케이션·에너지·인프라가 변화해야 하는데, 에너지와 인프라에 대한 변화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덴마크대사를 지냈다. 그들에게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가.

덴마크의 특징은 무언가 일을 시작할 때 그 과정의 끝까지 고려해 로드맵을 만든다. 일례로 1970년대 제1·2차 석유 위기를 겪으면서 원자력 발전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했지만, 위험도가 높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을 어디에 둘지를 놓고 10년 이상을 논의했다. 결국 1985년 의회의 표결을 거쳐 원전 도입을 완전히 백지화했다. 덴마크는 또 토론할 땐 치열한 논쟁을 거듭하면서도 1표 차이로 뭔가가 결정되면 모두가 한목소리를 낸다. 결정된 사안에 집중하기로 의견을 모으는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 모두가 본받아야 할 점이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위기는 항상 뉴노멀(새로운 표준)의 문을 연다. 코로나19 이후의 사회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고, 신기후체제 출범을 앞둔 대전환의 기로에 서 있다. 이럴 때일수록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저탄소 경제를 새롭게 구축할 품격 있는 정치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책임감이야말로 뉴노멀 시대 지도자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생각한다.

신간 ‘환경외교의 길을 걸었던 외교관의 기후협상일지’

이채빈 기자  green900@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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