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석 자연환경관리기술사회장, 전 지리산국립공원 소장

신용석 자연환경관리기술사회장
신용석 자연환경관리기술사회장

[환경일보] 지난여름 검푸르렀던 숲이 갈색 바다처럼 일렁이는 깊은 가을의 금정산 정상에 오르니 시야가 확 트인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산 시합’이 있다면, 금정산의 첫 번째 경쟁력은 다이내믹한 조망이다. 숲으로 들어서 불과 1시간 남짓 올라 산마루에 서면 사방팔방으로 경관의 전시장이 펼쳐진다. 산에서 내려다보는 부산의 도시풍경은 구불구불한 계곡에 담겨있는 구름 같기도 하고, 작은 섬들 사이에서 찰랑대고 있는 물결 같기도 하다.

산너울 너머 저 멀리 고층빌딩이 우뚝한 해운대와 광안대교의 어울림! 유장하게 흘러온 낙동강의 힘찬 마무리와 푸른 수평선의 어른거림! 뛰어내릴 듯 가까운 양산의 도시풍경과 그 너머 영남알프스로, 낙동정맥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지맥의 아득함! 그런 하늘을 우러르고 세상을 내려다보며 사람들은 원망과 두려움을 떨치고 기개와 포부를 갖춘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다양한 경관을 조망하며 산맛과 감명을 주는 산은 많지 않다.

금정산의 두 번째 경쟁력은 사람의 산이라는 것이다. 금정산의 자연은 엄숙한 원시림도 아니고 헐거운 야산도 아닌, 사람 냄새가 폴폴 나는 사람의 자연이다. 산 아래 마을과 중턱의 절과 암자들, 산 위의 길과 성곽이 공존하는 문화의 산이다. 초보자도 여러 번 온 듯 전문가도 처음 온 듯 아늑함과 정겨움을 함께 느끼는 고향 같은 산이다. 부산과 낙동강의 슬픈 역사와 기쁜 역사가 뒤섞여 산이 도시와 사람들을 꼭 껴안고 있는 듯 도시와 사람들이 산을 단단히 지탱하고 있는 듯 금정산은 사람의 산이다.

금정산의 세 번째 경쟁력은 물이다. 산꼭대기에 ‘빛 나는 우물이 있다’ 해서 이름 지은 금정산(金井山)에는 높은 지대에서부터 축축한 습지와 물웅덩이가 많아 생태계 생명의 원천이 되고 있다. 뜨거워지는 기후변화 시대에 이런 습지는 많은 생물들의 피난처와 오아시스가 될 것이고, 금정산의 자연생태계를 다시 야생적으로 복원시키는 터전이 될 것이다. 산 여기저기에 도로와 마을이 들어서 원형이 훼손된 금정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다면, 첫 번째 할 일은 본래의 물길과 습지를 찾아내 복원하는 일이 될 것이다. 나는 매일 새벽 금정산 아랫자락에 올라 윗산에서 발원한 계곡물로 얼굴을 적신다. 온 몸에 금정산의 정기가 퍼진다.

사람 냄새 나고, 삶의 역사 깃듯 문화의 산 ‘금정산’

수려한 경관, 풍부한 문화자원으로 국립공원 자격 충분
자연과 경제 살리는 ‘국립공원 명품마을’ 조성 효과 뚜렷

“시민들 자연감성 일깨워 녹색도시로 거듭나는 계기 될 것

금정산 곳곳에 설치된 ‘국립공원 지정운동’ 플래카드를 보면서, 우리나라 국립공원에서 33년 일했던 나의 견해를 제시해 본다. 금정산은 수려한 경관과 풍부한 문화자원으로 국립공원이 될 자격이 많지만 규모가 적고 사유지가 많다는 반대 이유도 적지 않다. 규모의 문제는 충분한 생태계 면적을 갖추고 있느냐의 문제인데, 도시화 과정에서 아직 살아남은 자연이 이만큼이나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도시자연의 특성을 살린 공원관리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북한산, 무등산과 같이 도시에서 자연의 희귀성과 높은 이용가치를 들어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사례도 있다.

또한 금정산과 연결된 백양산을 비롯해 주변의 산과 강과 바다와 연결성을 강화하는 생태네트워크를 통해 광역적인 국립공원 지정을 고려할 수도 있다. 도시공원을 중심으로 작은 녹지들을 확장하고 개인정원들을 통합해 도시 전체를 국립공원으로 선포한 ‘런던 국립공원’의 사례도 있다. 도시공원과 정원 위주의 런던보다 산과 강과 바다가 어우러진 부산은 훨씬 ‘국립공원 도시’에 가깝다.

사유지가 많아 토지 소유자들의 반대가 있겠지만, 자연공원법의 규제수준은 현재 금정산에 지정돼 있는 개발제한구역, 상수도보호구역 등의 규제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재정에 의해 사유지가 보호·관리되고, 경제적 가치도 상승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공원당국과 협력해 친환경적 토지 이용을 하면서 자연도 보호하는 ‘공원보호협약제도’를 활용하거나 우리나라에서 마을살리기의 성공모델로 꼽히는 ‘국립공원 명품마을’을 조성한다면 서로 상생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처음에는 토지 소유자들의 반대가 심했으나 마침내 대다수의 주민들이 동의했던 무등산과 태백산의 국립공원 지정, 그리고 수십만 명의 주민들이 동의해 지정된 영국의 사우스다운스국립공원 사례도 있다. 국립공원은 지역주민들에게 자부심을 주고 지역경제에도 기여하는 특급 ‘관광 브랜드’인 것이다. 무등산에도 태백산에도 국가예산이 집중 투입되고 일자리가 늘어나며 탐방객도 증가하는 ‘국립공원 효과’가 있었다.

이제 개발이라는 단어보다 환경이라는 단어에 더 애정을 갖는 시대가 됐다. 내 동네에 공장보다는 공원이 들어서기를 바라는 시대가 된 것이다. 금정산의 국립공원 지정은 시민들의 ‘자연감성’을 일깨워 회색도시 부산이 녹색도시로 거듭나는 계기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바다에 치우친 이미지에 산악을 더해 더욱 경쟁력 있는 관광 브랜드를 구축하게 될 것이다.

기나긴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누구나 주변에 청정한 자연이 더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절감하고 있다. 금정산의 국립공원 지정이 자연도 살리고 경제도 살리면서 코로나를 극복하는 녹색뉴딜의 모범 프로젝트로 국내외에 널리 회자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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