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CMIT·MIT와 폐손상, 직접적 상관관계 증명 안 돼”
환경부 용역결과 ‘폐섬유화 등 인체에 치명적 영향’ 대조

가습기메이트를 유통한 애경과 SK케마칼이 12일 열린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진=김봉운 기자
가습기메이트를 유통한 애경과 SK케마칼이 12일 열린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진=김봉운 기자

[환경일보] 김봉운 기자 = 정부의 독극물 관리 실패와 가해 기업의 불법행위로 인한 결과로 발생한 생명과 신체상의 피해로 삶을 빼앗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최소한의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양질의 치료를 통해 빠른 회복을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법적용이 시급한 시기이다.

하지만 12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유영근)는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 13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다’는 식의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을 내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과거 정부와 기업이 공식적으로 사과(2017년 8월8일 문재인 대통령 사과, 2019년 8월27일 최창원 SK 대표 사과, 2019년 8월27일 채동석 애경 대표 사과)하면서 집중됐던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큰 혼란이 예상된다.

옥시는 유죄, SK케미칼·애경은 무죄

SK케미칼은 ‘가습기살균제’라는 명칭을 최초로 사용한 업체이다. 1994년 유공이었을 당시 세계 최초의 가습기살균제 ‘가습기메이트’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광고했다.

특히, SK케미칼은 1994년 CMIT/MIT물질을 이용해 개발‧제조한 가습기메이트가 ‘인체에 무해’하다고 광고했다. ㈜애경산업 또한 SK케미칼에 원료를 납품받아 시중에 유통하면서 이와 같은 광고를 진행했다.

당시 SK케미칼은 “살균제 원액을 0.5%로 희석해 가습기물에 있는 콜레라·포도상구균 등 수인성 질병균에 대해 시험해 본 결과 24시간이 지나면 100%의 살균효과를 보이고 있다”며 “인체에는 전혀 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에서 사용하는 제품명에는 ‘살균제’라는 명칭이 없기 때문에 이 단어를 제품명에 명기해서는 안됐다.

피해자들은 애경사옥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환경일보DB
피해자들은 애경사옥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환경일보DB

아울러 애경산업은 회사 홈페이지에 ‘가습기메이트에 피톤치드 성분의 효과 안내 시 유해균에 대해 살균력을 지니며 사람이 흡입하면 스트레스 해소와 심리적 안정, 진정효과 등의 아로마테라피 기능이 있습니다’라며 오히려 사람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는 것으로 허위 광고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의 골자는 성분에 있다. 가습기 살균제는 크게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나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성분이 들어간 가습기 살균제와 CMIT·MIT가 들어간 살균제로 나뉜다.

PHMG·PGH 성분 가습기 살균제는 폐질환과의 인과관계가 인정돼 이를 제조·판매한 옥시·롯데마트·홈플러스 등 제조사 관계자들이 2018년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서 CMIT·MIT 성분은 가습기살균제와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고 판결했다. 반면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1991년 산업용 살충제로 등록하고 2등급 흡입독성물질로 지정해 사용에 제한을 두고 있다.

또, 환경부의 판단도 이번 재판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지난 2019년 환경산업기술원이 진행한 연구용역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에 사용된 CMIT·MIT 성분 역시 인체에 영향을 준다고 판단했다.

‘폐’에만 집중된 인과관계

현재 가습기살균제 피해인정 판정 기준의 문제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질병을 일부에만 국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습기살균제 독성물질은 전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인정질환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012년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동물실험에서 가습기살균제가 초미세먼지처럼 쪼개져 폐뿐 아니라 간, 콩팥, 비장 같은 장기에 침투해 독성을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습기살균제 판매 중단 이후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폐렴과 간질성 폐렴, 기관지확장증뿐 아니라 독성 간염, 비염, 아토피 피부염 등도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2018년 국립환경과학원의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 규명을 위한 독성시험’ 결과에만 주목했다.

동물실험 결과 권장사용량의 833배로 설정해 4주간 하루 20시간, 주 7회 빈도로 CMIT‧MIT 성분 노출실험에서 실험쥐의 ‘폐섬유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피해의 인과관계를 찾기 어렵다고 봤다.

그러나 가습기살균제 안의 독성물질은 인체 어느 곳에나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흡입한 독성물질이 폐에까지 전달되는데 여러 신체기관을 거치는 동물실험 과정에 비춰보면 폐에만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게다가 가습기살균제 독성물질로 얻은 직접적인 질병 외에도 그 질병으로 인한 2차 질환의 발생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보호가 규정돼야 한다.

이는 폐질환 및 천식 등에만 국한해 피해 인정을 할 것이 아니라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독성물질이 인체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피해기준을 설정해야 한다.

피해 입증이 피해자 책임인가

재판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와 관련해 SK케미칼과 애경에 무죄를 선고하면서 피해자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검찰은 항소 의지를 강하게 비추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가장 큰 특징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뚜렷하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피해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재판부는 인과관계를 일부 동물실험 결과에만 근거를 두고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환경성 질환으로 확장된 개념에서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 우선 제품 판매를 허가한 정부의 역할과 책임이 명확하지 않았다. 이는 관리감독의 주체가 드러나지 않는 결과로 이어져 정책실패로 나타났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해가 지날수록 커지는 가운데 정책 실패를 인지하면서 정치적 대립이나 행정부 간 대립 갈등해결이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피해자들의 피해구제를 단지 법리적으로 판단해 갈등의 골이 계속 깊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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