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9월 16일 육로를 통해 고성항에 발을 내디뎠다.
숙소까지 주위를 둘러보며 구보를 하는 동안 도로를 따라 길게 쳐져 있는 녹색 철조망 건너편으로 보이는 마을과 간간히 보이는 주민들을 보며 북측 땅을 밟았음을 실감했다.
페인트로 칠해져 있는 똑같은 모습의 집들, 군데군데 보초를 서고 있는 군인들, 차는 좀처럼 볼 수 없고 간간이 보이는 자전거 타는 한가로운 모습을 가슴에 담으며 온정각에 도착했다.

그곳은 뜻밖에도 또 다른 우리 남측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쓰이는 화폐단위가 달러였을 뿐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식료품들이 즐비했고, 심지어는 TV에서도 한국방송을 볼 수 있었다. 이번 기회에 북측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으리라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하루이틀 지나면서 숙소 주변을 오가며 기자는 이 곳이 현대 아산측이 임대한 북측땅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주민과는 철저히 단절되고 통제되고 있었던 것이다.
남과 북은 너무나 오랜시간동안 단절돼 있었기에 앞으로 터놓고 지내기까지는 더욱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리운 우리 금강산'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금강산 구룡폭포 코스의 정상에서 구룡폭포의 시작점에 위치한 상팔담을 볼 수 있었다. 힘차게 쏟아져 내리는 구룡폭포도 장관이었지만, 폭포가 쏟아져 내려 이루는 소는 그 깊이만 해도 14m에 이른다고 한다.
이와함께 누군가 빚어놓은 듯한 갖가지 모양의 바위와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이뤄진 만물상 코스도 더없이 아름다웠다.

금강산은 바위 곳곳에 새겨진 선전문구 외에는 북측의 철저한 관리로 나름대로 잘 보존돼 있었다.
그러나, 암벽과 암벽 사이를 이어놓은 철계단은 여기저기 부식돼 바람에도 흔들려 보기에도 불안해 보였다. 또, 만물상 코스의 등산 초입까지 이어지는 27고개로 이뤄진 도로는 급경사에도 불구하고 어떤 안전장치도 돼 있지 않아 이 곳 금강산도 안전불감증의 문제가 심각함을 알 수 있었다.

기자는 18일 만물상 등반을 마지막으로 아쉬운 발길을 돌려 고성항으로 향했다. 철조망 건너편 마을에서 어린 학생들과 주민들이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하나다' 언젠가부터 우리의 귀에 낯설지 않게 들리는 문구다.
하나가 되기위한 길은 멀고도 험하다. 혹자들은 말한다. 통일로 인해 또 다른 많은 어려움이 발생할 것이고, 손해 또한 막심할 것이라고.

그러나, 통일은 먼 훗날 우리 아이들에게 분단으로 인한 불안감과 불이익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눈앞에 보이는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우리가 반드시 이뤄야 할 과제다.
또한, 과제는 감정에 호소하기 보다는 냉철한 판단과 멀리 내다보는 해안을 가지고 수행돼야 할 것이다.

다음에 찾아갈 땐 통일된 북녘땅을 밟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이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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