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상 변호사 “지역 공동체 노력으로 형성된 경관에 대한 법적 권리 인정돼야”

환경일보와 법무법인(유) 지평 그리고 (사)두루는 기후변화 대응, 지속가능발전, 자원순환 등 환경 분야 제반 이슈에 관한 법‧정책적 대응과 환경 목표 구현을 위해 ‘지평‧두루의 환경이야기’ 연재를 시작한다. 변호사로 구성된 필진은 환경에 관한 법률을 좀 더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분쟁사례, 판례, 법·정책 등 다양한 이슈를 이야기 형식으로 구성해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편집자 주>

한재상 변호사 jshan@jipyong.com
한재상 변호사 jshan@jipyong.com

[환경일보]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중하류층이 생활하는 도심 인근 낙후 지역에 상류층의 주거 지역이나 고급 상업가가 새롭게 형성되는 현상’을 뜻하는데,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외부인이 유입되면서 본래 거주하던 원주민이 쫓겨나는 결과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낙후 지역이 정비된 주거 지역 등으로 변하는 것 자체는 바람직하므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현상이 반드시 부정적이라고만은 볼 수 없을 듯합니다. 그렇다면 낙후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서로 협력해 이 지역을 보다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이 지역이 나은 곳으로 변화했다면 어떨까요. 위 주민에게 이 지역을 변화된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법적인 권리, 보다 구체적으로 변화된 경관을 해하는 행위를 금지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할 수 있을까요?

일본의 경우 이 같은 상황이 실제로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JR 중앙선 국립역 남쪽에 ‘대학로’라고 불리는 구간이 있는데, 이 구간에는 차도·자전거도로·녹지·보도가 차례로 배치돼 있고, 녹지에는 벚나무와 은행나무가 식재되어 있어 가로수 길을 형성하고 있으며, 특히 건축물 높이가 10m로 제한돼 가로수와 저층 주택이 조화로운 경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결과 위 ‘대학로’는 동경도나 유명 신문사에 의해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거리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 부동산 개발 회사가 위 ‘대학로’ 부근의 토지를 매수해 지상 18층, 높이 55m 규모의 주택을 건축하려 했습니다. 이에 인근 주민과 이해관계자는 부동산 개발 회사·건설사 등을 상대로 위 주택 중 높이 20m를 초과하는 부분의 철거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동경지방재판소는 인근 주민들 등의 청구를 받아들여 위 주택 중 높이 20m를 초과하는 부분의 철거를 명하는 판결을 선고했습니다[동경지방재판소 2002. 12. 18. 선고 2001년 (ワ) 제6273호 판결(이른바 ‘국립맨션 사건’), 다만 동경고등재판소와 최고재판소는 인근 주민들 등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동경지방재판소가 위와 같은 판결을 선고한 이유는 ▷일정한 경우 토지소유권을 근거로 해 경관의 이익이 생기고 ▷이웃 토지소유자의 건축행위 등으로 인하여 경관의 이익에 대한 제한이 수인한도를 초과할 경우 민법상 불법행위를 구성하며 ▷침해의 계속성이 인정되고 금전배상만으로는 충분한 구제가 되지 못하면 불법행위의 효과로서 금지청구권이 인정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동경지방재판소는 ‘특정 지역 내의 토지소유자들이 그 지역 내에 건축하는 건축물의 높이·색·디자인 등에 관해 일정한 기준을 정하고 서로 그 기준을 준수한 결과, 그 지역에 독특한 도시경관이 형성되고, 그 특정한 도시경관이 그 지역 내에 거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일반사회에서도 양호한 경관으로 인식됨에 따라, 위 토지소유자들 소유의 토지에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토지소유자들은 토지소유권으로부터 파생된 것으로서 이미 형성된 양호한 경관을 스스로 유지하는 의무를 부담함과 함께 그 유지를 서로에 대해 구할 이익, 즉 경관의 이익을 가지게 되고, 이 경관의 이익은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으며, 이를 침해하는 행위는 일정한 경우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라고 판시했습니다.

요컨대 동경지방재판소는 어떤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서로 협력해 공동의 노력과 희생으로 그 지역의 경관을 보다 낫게 변화시켰다면, 일정한 요건을 갖췄을 경우 지역 공동체의 노력으로 형성된 그 지역의 경관을 해치는 행위를 금지할 수 있는 법적인 권리를 가질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경관법이 2007. 5. 17. 제정돼 시행되고 있지만(경관법은 ‘경관’을 ‘자연, 인공요소 및 주민의 생활상 등으로 이루어진 일단의 지역 환경적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아직 위와 같은 유형의 분쟁이 발생해 법원에서 다퉈진 적은 없는 것으로 보이고, 대법원도 경관권을 조망권과 구분하지 않고 이와 같거나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대법원 2007. 6. 28. 선고 2004다54282 판결(이른바 ‘한강조망이익침해 사건’)].

그러나 사회가 발전할수록 개인의 권리는 확대되고 세분되며, 기존에는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권리가 생기기도 하고, 종전에는 반사적 이익에 불과하다고 여겨지던 것이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법률상 이익으로 재평가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조만간 우리나라에서도 위와 같은 유형의 분쟁이 발생해 경관권의 개념·요건·효과 등이 더욱 구체적으로 정립되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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