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기반 사회적 책임’ ESG 평가프레임 선구자
“오너의 철학이 좌우, 국민연금부터 모범 돼야”

류영재 대표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서스틴베스트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진=최용구 기자
류영재 대표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서스틴베스트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진=최용구 기자

[환경일보] 최용구 기자 = 기업이 재무 성과만으로 평가받던 시대가 바뀌어 가고 있다. 투자자들은 환경까지 생각하는 기업에서 가치를 찾고자 한다. 하지만 기업이 내뿜는 온실가스가 얼만큼의 손실을 유발하는지 재무재표만으론 파악이 힘들다. 투자처의 요구를 만족시켜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애매하기만 하다. 대안은 ESG(Environment·Social·Governance, 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ESG는 투자자들이 만든 평가프레임”이라고 정의한다. ESG 분야 손꼽히는 전문가로 통하는 그는 지난 2006년, 국내 첫 ESG 자문평가사인 서스틴베스트를 설립했다. 환경 기반의 사회적 책임이 익숙치 않던 국내 자본시장에서 선도적 역할을 해 온 셈이다. 15년 전부터 그는 글로벌 기준을 참고해 한국에 맞는 ESG 평가프레임을 찾아왔다.

기업이 친환경제품을 개발하고 환경경영시스템 인증을 받았는지 여부와 공급망관리의 친환경성 등은 ‘E’에서 평가된다. 근로조건과 고용평등, 고객관리, 사회공헌 등은 ‘S’에서 고려된다. 마지막 ‘G’는 회계투명성과 윤리경영 등을 주요 잣대로 삼는다. 서스틴베스트는 이런 식으로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된 900여개 기업을 평가 중이다. 

류 대표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기업의 확대와 환경·사회 영역에서의 공급망 관리 성과 개선을 토대로 ESG 평균점수는 전보다 상승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기업들의 부쩍 늘어난 관심 속에서 무엇보다 우선시 될 것은 최고 경영진의 철학 임을 강조했다. 특히나 ‘환경’이라는 단기간 개선이 힘든 지표가 포함된 만큼, 장기적 시각의 투자 분위기 조성을 위한 국민연금의 주도적 역할을 주문했다. 

ESG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가고 있다. 이미 280여개에 이르는 글로벌 기업들이RE100(필요 전력의 100%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 참여를 선언하고 ESG를 받아들일 준비 중이다. 애플은 신재생에너지로 바꾸지 않은 기업과는 2030년부턴 거래하지 않겠다고도 선언했다. 무역장벽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우리 기업들은 위기이자 기회의 갈림길에 선 것이다. ESG로의 패러다임 변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류 대표를 만나 얘기를 나눠봤다. 인터뷰는 서울시 성동구에 위치한 서스틴베스트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Q. ESG가 왜 주목받고 있나

A. 산업발전의 가속화에만 몰두하던 과거엔 기업이 공짜로 온실가스를 뿜었다. 당시엔 기업의 부가가치 판별 기준은 유형적 자산이었다. 자본을 잘 조달하고 공장기계와 부품 공급이 원활하면 그만이었던 거다. 하지만 사회적 책임이 점차 강조됐다. 또 4차 지식정보화 사회로 변모해가면서 무형적 가치에 대한 관심도가 커졌다. 게다가 기후위기라는 문제에 직면하고 탄소중립이라는 구체적 방향이 제시됐기에 기업의 향후 가치를 평가할 때 환경적 요소를 빼놓을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전통적 재무재표엔 환경으로 인한 손실과 가치가 나타나지 않는다. 투자자들의 입장에선 환경까지 아우른 평가 프레임이 필요한 것이다. ESG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Q.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관점에서 따지면 이전의 CSR도 있었다

A. 그렇다. 하지만 ESG와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은 뿌리는 같지만 결은 다르다. CSR은 기업이 지역사회나 이해관계자를 위해 자선활동을 한다는 성격이 강했다. 반면 ESG는 기업 공시와 세금의 책정 및 투자 방향을 결정하는 등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흐름의 전환이다. 자본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문제라고 보면 된다.   

Q. ESG로의 전환이 법적 의무는 아니다. 추진동력을 잃을 수도 있을 텐데

A. ESG는 작은 담론이 아닌 기업 평가를 위해 투자자들이 만든 프레임이다. 구체적으로 측정하고 평가할 기준이 있다는 것이다. ‘저러다 말겠지’란 대응보단 경제활동 주체에게 요구하는 책임이 강화되고 있다고 받아들여야 한다. MZ세대의 왕성한 활동도 주목할 요인이다. 기업의 성과급 문제만 봐도 이들은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책정이 되는지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 공정과 투명성이 더욱 중요시될 거란 의미다. ESG는 이러한 가치와 맞물린다. 

류 대표는 ESG란 공정과 투명성이 더욱 강조될 앞으로의 불가피한 대안임을 강조했다. /사진=최용구 기자
류 대표는 ESG란 공정과 투명성이 더욱 강조될 앞으로의 불가피한 대안임을 강조했다. /사진=최용구 기자

Q. 그렇다면 ESG는 어떻게 실행해야 할까

A. 우선 ESG가 등장하게 된 배경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최고경영진의 명확한 이해가 필수다. ESG는 단기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인 추진 동력을 얻기 위해선 오너의 철학이 가장 중요시된다. 그들이 ‘강건너 불구경’이 아닌 ‘발등의 불’로 받아들여야 중간관리자나 실무자 급으로 내려올수록 일이 수월해진다. ESG를 평가하는 업체들이 결과를 주면, 기업에선 그걸 바탕으로 어떻게 매니지먼트 할지를 결정하고 KPI(핵심성과지표)와도 어떻게 연계할지 고민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Q. 갈피가 안 잡힐 수 있다. 참고할 만한 것이 있나

A. 지속가능에 대한 정보가 있는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 보고서나 SASB(Sustainability Accounting Standard Board)의 회계 기준을 참고하면 분야 별 ESG 평가 요소가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있다. 투자자들이 무엇을 중요시 하는지 파악해 볼 수 있는 기회다. 다음은 이를 자기 기업에 맞게끔 내재화하는 것이다.

Q. 서스틴베스트는 상당수 기업의 ESG를 평가하고 있다. 동향은 어떤가

A. 회사 설립 초기인 15년 전에 비하면 천양지차다. 기업들의 관심 수준은 많이 올라왔다. 상장기업 상위 200개사 정도는 좋은 성적을 보여 앞으로가 기대된다. 이들 기업 내부에선 ESG 정보를 꾸준히 관리 중이다. 그만큼 개선을 위해 신경을 쓰고 있다고 보여진다. 다만 기업 규모에 따른 온도차는 아직 크다. 

Q. 성적이 좋았던 곳을 말해줄 수 있나  

A. 물론 평가결과는 있지만 어떤 기업이 잘했다라고 단정해 말할 순 없다. 이건 마치 ‘어떤 주식을 사면 좋겠냐’는 것과도 다르지 않다. 평가기관 별로 지표가 있고 그 지표에 데이터를 넣어서 평가한다. 따라서 해석이 다를 수 있다. 우리에겐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과거의 분식회계나 갑질 등 기타 리스크로 인해 대중들에겐 신뢰를 얻지 못한 사례도 있을 수 있다. 다만, 부정적 상황이 반복돼 나타난다면 평가에 반영시켜 등급을 보정한다. 

류 대표는 세계 자본 지수를 의미하는 MSCI의 국제적 동향(위)과 ESG를 통한 투자 성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자료(아래)를 통해 자본시장의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자료출처=Deutsche Asset Management and the University of Hamburg investigate
류 대표는 세계 자본 지수를 의미하는 MSCI의 국제적 동향(위)과 ESG를 통한 투자 성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자료(아래)를 통해 자본시장의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자료출처=Deutsche Asset Management and the University of Hamburg investigate

Q. ESG에 관한 정부의 명확한 지침이 필요해 보인다

A. ESG는 그린뉴딜을 추구하는 정부가 기업에 요구하는 녹색투자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업이 그린사업인지 또 그린기업은 어디인지 애매하다면, 정부가 기준을 정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펀드만 봐도 무늬만 ESG를 띄고 있는 것이 시장엔 적지 않다. 독립성을 갖춘 권위있는 기관이 펀드를 인증해주는 절차를 도입해야 한다. 채권의 경우 역시 기업이 ESG명목으로 발행해 자본조달을 해놓고 정작 엉뚱한 곳에 쓰지 않도록 감시해야 한다. 자금 집행 후에는 사후보고서를 제출토록 하고 독립된 기관이 평가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Q. ESG는 단기적인 성과를 보이긴 힘들다고 했다. 한국 사회가 장기적 안목으로 투자해 갈 수 있을까 

A. 관건은 국민연금이 모범이 될 수 있느냐다. ESG는 기본적으로 단기간 차익에 촉각을 세우는 이들의 관심거리가 아니다. 장기투자를 할 수 있느냐의 관점에서 따져볼 때 공적 연기금인 국민연금이 조건에 제일 부합한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준칙에는 수익성, 안정성, 공공성, 지속가능성 등이 있다. 애초에 단기적 수익에 얽매여선 안되는 조직이다. 자금의 운용 목적에 부합하도록 변화가 필요하다. 

Q. 그 얘기는 그동안 단기 수익 창출에 얽매여 왔었단 소린가

A.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국민연금의 연간 수익률이 조금이라도 저하되면 언론과 국회부터 민감히 반응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실제 운용을 담당하는 입장에선 부담이 상당하다. 장기적 안목을 가지기 힘든 환경인 것이다. 조직 내부에서도 이런 불만 섞인 목소리가 감지된다. 캐나다 연기금인 CPPIB의 사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기금의 이해관계자들에게 장기투자를 허락해 달라는 지속적인 공감대를 형성해왔다. 우리에게도 결국 이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ESG의 구현은 자금의 오너와 맡아서 운용하는 매니저, 그리고 우리 같은 서비스 제공자들 간 삼각공존이 이뤄져야 가능하다. 그 변화의 열쇠는 공적연기금에 있다.  

Q. ESG는 정부의 탄소중립 방향성과 직결된다. 정부가 나서 시장을 유인할 수도 있지 않겠나. 예를 들어 ‘인증제’가 있다

A. 인증제는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ESG는 투자자들이 만든 평가적 프레임의 개념이다. 철학을 가진 기업이 투자자들의 좋은 평가를 받고 자금을 유치하면 그 자체가 보상이 된다. 인증을 하도록 한다는 건 그것 만을 위한 업체를 시장에 양산시킬 수 있는 요인이다. 기업에게도 결국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현 상황에서 정책당국이 해야할 일은 하루 속히 기업의 ESG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다. 투자자들이 ESG를 평가·분석하려면 믿을 수 있는 정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금융위원회가 오는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공시한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너무 늦다. 더 앞당겨야 한다.

Q.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A. ‘Making Money by Doing Good’. 이 짧은 한 줄에 ESG의 모든 것이 함축돼 있다. 투자자와 기업 모두가 친환경적이고 친사회적 투자로 수익을 내는 세상의 구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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