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편의와 환경부하 사이 어정쩡한 입장의 환경부

[환경일보] 최근 주방용 오물분쇄기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되면서 관련 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업계 종사자들의 밥그릇이 달린 이상 격렬한 반대는 당연한 수순이다.

주방용 오물분쇄기란 모터로 칼날을 회전시켜 음식물 찌꺼기를 잘게 부수고 하수구로 흘려보내는 음식물 처리 기계를 말한다.

싱크대에 물과 함께 음식물쓰레기를 넣으면 갈아서 하수구로 배출하기 때문에 매우 편리하다. 그러나 반대 급부로 오염물질 증가로 인한 하수관로 막힘, 자원이 낭비된다는 측면에서 도입 초기부터 반대가 거셌다.

1993년 주방용 오물분쇄기 판매‧사용의 금지‧제한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고, 환경부는 1995년 하수도 영향을 고려해 판매‧사용을 고시로 금지한 바 있으나, 2012년 인증제품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2012년부터 음식물쓰레기의 고형물 중 20%만 배출하고 80%는 회수 가능한 환경부 인증제품에 한해 허용됐고, 이에 따른 제품의 인증, 사후관리 등 제도운영은 환경부 고시로 운영되고 있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10월부터 2017년까지 전국에 판매된 디스포저는 4만7198개이며, 2019년 3월 기준 인증된 제품은 42개 업체의 83개 제품이다.

2018년부터 주방용 오물분쇄기 판매량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불법제품이 만연하면서 심각한 수질 악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0%만 배출하는 것이 아니라 물과 함께 모든 음식물쓰레기를 하수구로 버리는 불법제품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전국 공동주택의 음식물쓰레기가 하수도로 배출되는 경우 오염부하가 약 27% 증가하고, 하수처리장 증설 등에 약 12.2조원의 비용 소요가 예상된다.

또한 관로 막힘‧악취 등 민원이 증가하고 있으며, 주방용 오물분쇄기 사용자는 하수의 수질 악화에 더 큰 영향을 미치지만 추가적 요금 부담이 없어 공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분류식 하수관로 지역 중 주방용 오물분쇄기를 사용할 수 있는 조건에 충족되는 지역은 전국의 10%에 불과하며 나머지 지역은 기기를 사용할 경우 하수구 막힘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주방용 오물분쇄기는 물 사용량을 증가시켜 정부의 절수정책과 상충되며, 음식물쓰레기 자원화 정책에도 역행한다.

주방용 오물분쇄기 도입 초기 ‘그린빅딜(Green Big Deal)’ 방식이 거론됐다. 슬러지를 매립지로 보내고 하수를 책임진 담당자는 주방용 오물분쇄기 사용을 허가해 주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가정과 지자체 모두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는 번거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반면 3조원이 넘게 투입한 음식물쓰레기 자원화 시설이 무용지물로 전락할 수 있어 환경단체와 관련 업계의 반대도 거셌다. 음식물쓰레기 자체가 훌륭한 자원이기 때문에 하수구에 버릴 것이 아니라 재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환경부는 이저저도 아닌 어정쩡한 입장, 즉 20%만 배출하는 기기를 허용하는 정책을 선택했고 그 결과 불법 제품이 판을 치고 있다.

환경부가 주방용 오물분쇄기에 대해 지금처럼 어정쩡한 입장을 고수한다면 불법 제품 유통은 갈수록 증가하고 환경부하만 커질 것이다. 이해관계자와 시민 편의, 환경을 생각한 합리적인 결론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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