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석 자연환경관리기술사회 회장(자연환경해설사)

신용석 자연환경관리기술사회장
신용석 자연환경관리기술사회장

[환경일보] 자연이란 단어에는 두 가지의 상반된 이념이 있다. 하나는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존중하고 돌봐야 한다는 보전이념이고, 다른 하나는 야생적이고 방치된 상태의 자연을 쓸모 있게 이용해야 한다는 개발이념이다. 보전과 개발이 대등한 비중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류의 역사는 다른 생물들을 제압하고 그들의 서식처를 완전히 정복해 온 개발이념의 역사이다. 문화라는 말 자체가 “자연을 경작해서 유용하게 한다”는 뜻이고, 문명이라는 말은 “자연을 극복해서 물질적 문화적 발전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오늘날 온전하게 남아있는 ‘순수한 자연’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한 개발이념에 의한 자연훼손과 환경오염의 폐해가 사람의 건강과 안전에 영향을 미치자 인류는 비로소 자연보호지역을 지정하고 환경오염기준을 설정하는 등의 지혜를 발동하고 있지만, 이미 지구의 자연은 더 이상 인류를 부양할 건강성을 상실한 듯하다. 그 결과가 오늘날 기후변화, 코로나 감염병, 미세먼지와 미세플라스틱 같은 환경문제를 초래했다. 과거에 “환경은 나중에!”라 했던 개발이념이 이제는 “우선 환경을!”이라는 보전이념으로 대체되는 시대가 되고 있다.

‘그린’보다 ‘뉴딜’에 치우치는 과오 없길···

현재 인류가 당면한 가장 큰 공통과제는 바로 ‘탄소중립’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문명국가들이 2050년까지 탄소배출량과 흡수량을 균형 있게 맞춘다는 계획을 공표한 바 있지만, 현재도 경제성장률을 따지는 정치와 편리한 생활습관으로 과연 ‘저탄소 사회’가 구현될 수 있을지에 대해 확신하기 어렵다. 앞으로 30년 뒤의 목표에 대해서 현세대가 미래세대를 위해 얼마나 큰 투자와 감내를 할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정부의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책과 국민에 대한 인식 공감대 유도가 필요한데, 그 정책이 바로 ‘한국판 그린뉴딜’이다. 이 정책의 목표는 환경산업분야에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 현재의 환경문제를 해결하면서 경기부양을 도모하는 것인데, 과거의 녹색성장정책처럼, 그린(보전)보다 뉴딜(경기부양)에 치우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최근에 탄소중립 정책의 일환으로 대규모의 산림벌채가 이뤄지고 있다는 이슈를 접하며 “배가 산으로 가지 않을지” 염려가 앞선다.

나무 한 그루 제거가 미치는 토양생태계의 영향 고려

생태복원기술 고도화 등 산림당국의 보다 깊은 연구 필요

탄소를 흡수해서 몸에 축적하는 나무의 생장체계를 감안할 때, 생장을 다한 늙은 나무보다 생장력이 왕성한 청년 나무의 탄소흡수량이 더 크다는 산림당국의 발표는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청년이 될 때까지 묘목과 어린 나무의 탄소흡수량은 많지 않을 것이고, 늙은 나무도 생존을 위한 광합성을 활발하게 해 일정량의 탄소를 흡수할 것이므로 나무를 교체해 탄소흡수량을 늘린다는 발상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우리나라에는 생장의 정점에 이른 극상림 또는 노령림은 많지 않고, 또한 그런 숲은 생태적 안정성과 생물다양성이 높아 절대 보존해야 할 곳이다. 산림당국에서는 2050년에 이르면 50년생 이상의 장령목이 70% 이상이 될 것이므로 그만큼 탄소흡수량이 감소할 것이라 하는데, 수천 종에 이르는 나무마다의 수명과 생장력과 탄소흡수량은 각각 다를 것이므로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나무는 독립적인 개체가 아니라 ‘숲 사회’의 구성원이다. 그래서 산림군락(community)이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나무 한 그루를 제거하는 것은 그 나무와 함께 하는 토양생태계와 수많은 미생물과 동식물, 그들이 만들어낸 풍경과 그늘과 바람과 냄새를 함께 제거하는 것이다. 숲에서 식물이 제거되면 곧 토양유실이 돼 수백년 축적해 온 토양양분과 식물씨앗이 씻겨내려 간다. 어린 나무를 심는다 해도 본래의 숲생태계로 회복돼 탄소중립 효과가 나올 때까지는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탄소중립을 이유로 나무를 교체하더라도 그 대상은 인공조림지 또는 자연림으로 수종갱신을 해야 하는 단순림에 국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탄소흡수량 증가는 나무교체 아닌 나무심기로

산림당국이 담당해야 하는 탄소흡수량 증가는 나무교체가 아니라 나무심기로 시도됐으면 한다. 도시의 내외부, 지역 곳곳에는 아직도 녹지 한 평 보기 어려운 거리와 주거지, 유휴지, 폐경지, 생태축이 단절된 곳들이 많다. 차제에 그린뉴딜의 과제로 도시마다 녹지율이나 생태면적율을 증가시키는 전략목표와 예산을 제공한다면 나무심기 대상지는 크게 늘어날 것이다. 도시에 빼곡한 건물들의 옥상과 벽면을 녹화하는 것만으로도 탄소흡수량을 크게 늘리고 도시기후를 완화시키며 사람들의 기분을 상쾌하게 할 것이다. 국립공원과 습지 등의 새로운 보호지역을 계속 지정해 탄소흡수 용량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고, 생태복원기술을 고도화해 생태계의 탄소흡수량을 증가시키는 것에 기술투자가 집중돼야 할 것이다.

과거의 헐벗은 민둥산을 오늘의 녹색숲으로 일궈낸 산림당국의 노력과 성과에 찬사를 보내는 만큼, 그런 녹색숲을 벌채해 뻘건 황무지로 드러내는 것을 국가정책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국민정서이다. 이 시대에서 가장 최상위 국가정책인 그린뉴딜의 ‘그린’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자연해설 교재에서 나무의 소중함에 대한 가장 흔한 표현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람과 생물들에게 무한한 혜택과 사랑을 주는 나무에게 함부로 톱을 대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더구나 전 인류가 자연의 소중함을 이제야 깨닫게 되는 기후변화 시대와 코로나 시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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