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보다 나라 생각하며 뿌린 열정과 철학 이어지길

대한민국에는 왜 존경할 대상이 없을까라는 말이 간혹 들린다. 물론 그럴 리가 없다. 한국사는 제외하고라도 모든 분야에서 존경할 분들이 있었다. 환경 분야는 어떨까.

환경학의 역사가 타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다보니 언뜻 떠오르는 이가 없을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끄덕이는 한 사람이 있다. 고 손동헌 명예교수다.

손 교수는 중앙대학교에서 약학을 전공했는데, 여전히 나라가 어려웠던 시절 1세대 환경원로로 꼽힌다.

35년간 모교에서 후학들을 가르친 손 교수는 약대 출신들이 제약회사 경계를 넘어 환경 분야에서 활동하기를 기대했다.

대기, 식품, 수질, 위생 등 전반에 대해 알아야 약학도 배울 수 있던 시대, 일본 방문이 그에게는 환경을 선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1973년 당시 일본은 수은중독으로 인한 미나마타병, 카드뮴으로 인한 이타이이타이병, 욧카이치 천식 등 환경문제들이 사회 이슈로 부각되면서 떠들썩하던 때였다.

반면, 한국은 먹을 것도 넉넉지 않아 환경문제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손 교수는 일본의 상황이 한국에도 곧 닥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 후 일본 국립공중위생연구원에서 약학 전공을 살려 환경위생학 연구에 적극 나섰다. 손 교수는 특히 대기나 해양 중 수은 연구에 관심을 가졌고, 대기 중 발암물질, 중금속, 황사 등 분야 연구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런 중에 그의 연구가 산업발전에 저해된다는 이유로 당시 정부 관계자들의 저지를 받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1975년 10월엔 전남 담양 고 모씨 가족 수은중독사건이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고려대 차00 교수가 발표한 연구결과에 대해 정부 당국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면서 정부와 학계 공동조사가 진행됐는데 손 교수가 일본에서 최신식 수은측정기계를 도입해 모든 의문을 잠재운 것이었다.

당시 담양 고씨 논에서 최신기계를 이용한 측정결과 보통 토양의 경우보다 무려 17배나 높은 1.7ppm의 수은이 검출됐다.

당시는 벼의 생육을 저해하는 도열병이 흔했는데 수은계 농약을 사용하면 도열병이 한 번에 사라지다 보니 농부들은 용법도 지키지 않고 마구잡이로 뿌렸던 시절이었다.

이후에도 손 교수는 정부 측과의 마찰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무분별한 농약사용으로 인한 농촌 중금속 오염을 막기 위해 과학적 증명에 노력했다.

중앙대학교 약대 1회를 졸업한 손동헌 교수는 2007년 5월 동기들과 함께 약대 건물 앞에 ‘웅비(雄飛)’라는 기념비를 후배이자 제자들에게 선물했다. ‘빼어난 슬기와 기개로 기운차고 용기 있게 활동하라’는 격려였다.

손 교수는 근면하고 투명한 북청 물장수의 후예인 것과 회장을 역임했던 북청군 장학회가 수백 명의 학자 및 교수들 양성에 기여해왔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건강은 미리 챙겨야 하듯 환경문제도 예방이 우선이다.’ 손 교수가 늘 강조하던 말이다. 그의 바르고 곧은 열정과 철학이 많은 환경 후학들에게 이어지길 기대한다.

귀한 별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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