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개성·트렌드 반영 ‘소량 다품종’ 기반 생존 전략 강조
대기업 지배 관성 버린 중소 협력 네트워크 시장 정착돼야

KITECH 서남본부 핵심부품소재센터에서 차현록 박사를 만났다. /사진=최용구 기자 

[환경일보] 최용구 기자 = “우리는 왜 전기차를 구입할까요. 친환경 실천, 기름값 절감 등 여러 이유가 있죠. 전기차 만이 가지는 본연의 퍼포먼스에 집중하면 또 다른 가치가 보여요. 그 독특한 매력을 살리는 것에 전기차 산업의 미래가 있어요.”

차현록 한국생산기술연구원(KITECH) 박사는 트렌드와 취향에 맞는 옷을 고르듯 전기차 시장도 소비자의 개성과 니즈를 반영하는 데서 생존 전략을 찾아야 함을 강조한다. ‘소량 다품종화’를 위한 가변플랫폼 구축에 역량을 쏟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승용차나 SUV, 트럭 등 차량의 레이아웃대로 유연하게 접목되는 제조 플랫폼을 뜻한다. 

본지는 광주에 위치한 KITECH 서남본부 핵심부품소재센터에서 차 박사를 만났다. 이곳 자율주행 양방향 관제센터에선 광주광역시 무인규제자유특구에서 시범 운행 중인 자율주행차량을 원격으로 제어한다. 무인특수목적차량을 위한 공용의 정비 공간도 갖췄다. 

정비시설에 들어서니 폐기물 수거 지점까지 저절로 옮겨다닐 수 있다는 ‘무인폐기물수거차’가 대기 중이었다. 도로정보를 습득해 지도를 입력하는 차량부터 벤치마킹용으로 들여온 다수의 차종도 눈에 띄었다. 각종 장비와 부품을 적용해 차량 프레임을 만들 수 있는 공간도 보였다. 차 박사는 이곳을 ‘플랫폼 아키텍쳐(Platform Architecture)와 부품의 공용화를 위한 공간’으로 소개했다. 그는 “중소 규모의 협력체들간 네트워크를 통해 전기차 활성화에 적합한 생태계가 조성되길 기대한다”며 말을 이었다. 

 핵심부품소재센터 내에는 
핵심부품소재센터 내에는 무인특수목적차량을 위한 정비 공간, 가변플랫폼 기반의 차량 프레임 제작 시설이 마련돼 있다. /사진=최용구 기자 

Q. 전기차 시장에 적합한 생태계가 무엇인가

A. 수평적인 산업생태계다. 그동안 대기업 중심의 대량생산과 소비의 패턴을 과감히 떨쳐야 하는 문제다. 화석연료 기반의 내연차량은 복잡한 부품들로 얽혀있기 때문에 대형 제조사부터 1차 벤더(Vendor), 2차 벤더로 내려오는 수직적 구조에 특화됐다. 하지만 전기차는 다르다. 엔진이 없어 부품도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그만큼 중소·중견기업이 힘을 합치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 또 특수목적 EV(전기차)의 수요가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점도 수평적생태계의 필요성을 부각시킨다. 

Q. 특수목적 EV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A.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니즈는 늘고 있다. 가령, 구동이나 제어과정에 활용되던 유압(油壓) 기반의 장치를 전기모터로 바꾼다거나, 골프장 잔디관리를 위한 전동기반의 자동화 장비를 원하는 경우다. 손님이 없는 늦은 시간이나 아침 일찍 해야 하는 잔디관리를 맡을 인력이 부족해서다. 예전엔 시도하지 않던 일들이 나타나고 있다. EV의 수요가 점차 맞춤형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Q. 맞춤형 EV로 수평생태계를 정착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A. 그렇다. ‘맞춤형 소량 다품종 EV’에 특화된 가변 플랫폼 아키텍쳐에 매진하고 있는 것도 그 이유다. 다양한 니즈에 맞게 구조가 변경되면서 고도의 기능을 살릴 수 있는 대안이다. 

Q.  수평생태계 조성에 어떻게 다가갈 수 있나

A. 우선 소량 다품종의 부품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기업 기반의 수직적 구조가 아니면 부품 자체를 구하는 게 어렵다. 따라서 KITECH에선 국비를 지원받아 부품을 개발하는 업체들을 지원한다. 그리고 맞춤형 EV 제작을 원하는 회사들과 이들 부품업체를 연결해 준다. 부품업체들은 EV 제작사 쪽에 저렴한 가격으로 납품할 수 있는데, 부품 제조에 소요되는 시설투자 등의 비용이 지원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부품업체를 위해 더 많은 수요처도 알선해 주고 있다. 

특수목적형 EV에 달린 미래 가치

 

대량생산형 수직구조와는 맞지 않아

 

중소협력 생태계 극대화 ‘가변플랫폼’

 

수직에서 수평으로···패러다임 전환 문제  

Q. 산업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이다. 한계가 있진 않을까

A. 대량생산이 아닌 소량이기 때문에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문제에 직면한다. 따라서 제도권의 관심과 협조가 필요하다. 수평적 생태계 기반의 전기차 시장은 단순히 수지타산 만을 따질 일이 아니다. 이는 전통적인 수직 구조를 탈피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사회적 가치의 큰 틀로 여기고 정부가 물을 부어줘야 한다. 중소기업들이 협력해 만든 전기차를 우선 검토하는 등의 보조가 필요하다.  

Q. 기존에도 중소기업을 위한 정부나 대기업의 상생협력은 있다

A. 수평적생태계는 상생협력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현재의 상생협력은 대기업이 불쌍한 중소기업을 도와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소위 말해 지배구조의 상위에서 먹이를 던져주는 것이다. 과거 대기업 일원으로 일하면서 이같은 착취와 비착취의 구조적 실상을 또렷이 목격했다. 중소기업들이 자기들만의 독특한 역량을 뭉쳐 네트워크를 만들고 ‘너희는 이 부품, 우리는 이 부품’식으로 자연스런 구조를 형성토록 하는 게 관건이다. 소량 다품종이 가능한 전기차 시장에선 충분히 도전할 수 있다.

차 박사는 특수목적 EV 시장에서  대한 수평적인 전기차 산업생태계를 줄곧 강조했다 
차 박사는 특수목적 EV 시장에 내재된 '소량 다품종'의 가치에 주목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리고 수직계열화되지 않은 수평생태계로의 전환에 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차 박사가 특수목적 EV의 종류를 취재진에 설명하고 있다. /사진=최용구 기자  

Q.  ‘특수목적’, ‘맞춤형’ 등 EV 시장의 가치를 대기업도 충분히 알 텐데    

A. 목적기반자동차(PBV, Purpose Built Vehicle)라는 표현으로 중요성을 강조는 하고 있다. 앞으로 필요나 목적 중심의 차량들이 다양한 형태로 쓰일거라는 의식은 업계 전반에 공유된 셈이다. 다만 시장의 주도권을 본인들이 쥐려고 한다는 게 문제다. 

Q. 수평생태계 구현이 불투명할 수도 있다 

A. ‘수직’, ‘수평’이란 표현이 우리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는 크다. 근래 구직 중이던 한 연구원이 탄탄한 매출 기반의 기업체로부터 요청을 받고도 취직을 꺼리는 모습을 봤다. 의아해서 묻자 ‘을이 되기 싫어서’라고 생각하더라. 마치 직업의 카스트제도와 같은 수직적인 산업생태계의 단면이다. 언급했듯 수평생태계는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다. 자동차 산업도 변하고 있다. 소량 다품종이 강조되는 전기차 시대는 대량생산 중심의 수직생태계와는 맞지 않다. 여러 업체들이 수평적으로 만들어야 분산과 해체도 쉽다. 꼭 대기업 중심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        

Q. 향후 활동 계획은

A. 소량 다품종화를 위한 가변플랫폼을 통해 맺은 결실을 알릴 것이다. 조만간 크게 3가지(농업용, 방역용, 소방용) 특수목적 EV 시작차량을 선봬 상용화 가능성을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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