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자체 보조금 받으면서 독립된 역할 어려워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자체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현장 중심 활동들은 시민단체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고 맡기는 경우가 많다. 환경분야도 마찬가지다.

작년 말 기준 행정안전부에 등록된 시민단체수는 모두 1만5000여개에 달한다. 이 중 약 10%, 즉 1500개 단체에 보조금이 지급되고 있다.

그런데 보조금만 받고 점검을 거의 받지 않다 보니 활동자체가 부실하거나 심지어 보조금을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한 환경전문가는 10여년 전 A시가 관리하는 시민단체 중 30개 단체에 대한 현장 실사를 의뢰받아 한 달간 방문 조사를 맡은 경험을 토로했다.

30개 중 제대로 사업을 실시하고 자료를 갖춘 곳은 5개도 되지 않았고, 대부분 영수증이나 집행 내역도 없었고, 심지어 연락이 두절되고 사무실 문이 잠긴 곳도 있었다.

설상가상 시민단체들을 관리하는 부서에서 미리 추대한 담당위원회의 위원장은 해당 시 고위직 출신으로 조사위원들을 무마하기까지 했다. 관례적인 일이니까 그냥 넘어가자는 것이었다.

이를 반대하던 전문가는 이후 다시는 위원회로부터 연락을 받지 못했고, 자신이 현장을 조사하고 제출한 보고서의 결과도 알 수 없었다.

지금은 시민단체가 받는 보조금과 기부금 지출내역 등을 국세청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되어 있지만, 이 역시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민단체가 보조금을 받지 않는 것이 마땅하지만, 공익목적의 사업 특성상 보조금을 받아야 한다면 외부 회계기관의 감사를 받는 것이 맞다.

대한민국에서 1980년대 초부터 공해추방을 목표로 환경운동이 본격적으로 조직화 되기 시작했다. 당시 환경언론이 자리 잡기 전이라 시민 환경운동단체들은 언론의 몫까지 겸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수십년 간 환경오염 현장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환경개선을 위해 투쟁했고, 그 과정에서 환경도 많이 개선됐다. 그런데 어느 때인가부터 일선에서의 환경개선 실천운동이 잘 보이질 않는다.

환경오염이 많이 줄어든 이유인지 아니면 더 이상 활동을 하지 않아서인지는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기후위기라는 더 큰 이슈를 파고들다 보니 예전의 활동들을 내려놓아서일까.

미국에는 회원이 수천 명이 넘는 시민단체, 환경단체들이 많다. 그런데 한결같이 재정적으로 자립해 운영되고 있다.

전일제로 근무하는 1~2명에게 지급하는 급여를 포함해 모든 경비를 회비로 충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활동내용도 회원들 스스로 학습하고, 생활습관을 바꾸고, 거리를 정화하는 등 실천 활동이 주를 이루고 때로 공공건물 앞에서 평화적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특정 기관이나 조직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활동은 매우 독립적이다.

기후위기시대에는 시민·환경단체들의 역할이 더더욱 중요하다. 특히 기후변화적응을 위해 각 지역별로 지역을 잘 알고 애정을 갖는 시민들이 연합해 지역민들을 보호하고, 정부에 적절하고 신속한 조치를 촉구해야 한다.

보조금에 자꾸 눈이 쏠리다 보면 정상적인 활동에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공익 목적의 바른 시민활동은 재정독립으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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