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환 작가 ‘내가 북극이다’展··· 업사이클링 작품 전시
기후위기 최전선에서 일어난 비극··· 자연과 공존 꿈꾸다

전창환 작가 ‘내가 북극이다’展 /사진=이채빈 기자
전창환 작가 ‘내가 북극이다’展 /사진=이채빈 기자

[금보성아트센터=환경일보] 이채빈 기자 = 수많은 지구 생명체가 사라지거나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녹은 빙하 위로 배고픔에 허덕이는 북극곰과 쓰레기에 감긴 해양생물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생물이 빠르게 멸종하는 데는 인간의 책임이 크다. 화석연료 중심의 문명은 무분별한 개발을 부추겨 서식지를 파괴했으며,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와 쓰레기를 배출해 기후변화를 가속했다.

조각가 전창환은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의 모습을 폐스티로폼으로 표현해 이들이 어떤 위협에 처해있는지 알려준다. 그는 인간에 의해 파괴된 생태환경의 현실과 처연하면서도 기이한 동식물들의 초상을 통해 기후위기의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모든 작품은 인류 문명의 산물이자 산업 폐기물인 스티로폼을 업사이클링(새활용)해 만든 것이다. 이 실험적 설치작품은 인류 문명과 자연의 연대를 드러내는데, 여기에는 예측 불가한 기후위기 상황에서 지속가능한 내일을 간절히 바라는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도 담겨있다.

내가 북극이다

‘내가 북극이다’ 전창환 作
‘내가 북극이다’ 전창환 作

전창환 작가는 최근 금보성아트센터에서 홍익조각회 창작지원선정 수상작가전 ‘내가 북극이다’를 통해 폐스티로폼을 활용한 대형 작품을 선뵀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전시 제목이기도 한 ‘내가 북극이다’라는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인간이 파괴한 북극의 현실을 표현한 작품이다.

북극은 현재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절반 이상 녹아 초원화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굶주린 수컷은 암컷과 새끼를 잡아먹은 후 뼈만 남은 채로 죽어간다.

작가는 ‘뼈만 남은 북극곰’의 모습에서 모티브를 얻어, 포장 용기로 쓰인 스티로폼을 연결해 형상을 만들었다.

내가 곧 북극이라 말할 정도로 자연과 나를 동일시하고 있지만, 결국은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파국적 비극의 표상이다.

전 작가는 “최고 포식자임에도 극한의 삶을 사는 북극곰이 곧 ‘나’라고 한다면, 결국 그 비극의 끝에는 ‘인간’도 함께할 것”이라고 암시했다.

나는 여전히 배고프다

‘나는 여전히 배고프다’ 전창환 作 /사진=이채빈 기자
‘나는 여전히 배고프다’ 전창환 作 /사진=이채빈 기자

기후위기로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동족포식도 서슴지 않는 상어를 포착한 작품이다. 작품을 정면에서 봤을 때 상어의 얼굴은 평소와 똑같지만, 옆을 보면 내장이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어가 낚싯줄에 걸려 있다. 결국 인간에 의해 죽어가는 상어는 옆을 배회하던 다른 상어에게 잡아먹힌다.

이 작품 역시 오늘날 기후위기로 죽어가는 인간 세태가 반영돼 있다. 전 작가는 “금방이라도 뭔가를 잡아먹을 거처럼 포악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사실을 죽어가고 있는 인간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기울어진 바다(생성과 소멸)

‘기울어진 바다’ 전창환 作 /사진=이채빈 기자
‘기울어진 바다’ 전창환 作 /사진=이채빈 기자

해수면 상승과 산성화, 해양쓰레기 등 바다의 위기를 표현한 작품이다. 특히 플라스틱 문제로 많은 해양생물이 고통받고 있다. 플라스틱 파편을 삼키거나 플라스틱 쓰레기에 얽혀 죽거나 다친다.

플라스틱 오염은 인간의 건강도 위협한다. 플라스틱은 바닷속에서 잘게 부서지며 미세플라스틱을 만든다. 이를 물고기가 섭취하고, 그 물고기를 인간이 다시 먹으면서 인체에 축적된다.

‘기울어진 바다(생성과 소멸)’는 바닷속 소라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부제목을 반영하듯 앞면의 형상은 일반 소라와 다름없어 보이지만, 뒷면은 휭하니 비어있다. 그리고 소라 몸속에는 폐플라스틱이 가득하다.

전 작가는 “생성과 소멸은 자연현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류가 자연의 섭리를 무시했고, 그 결과 지구 생태계를 파괴해 종국에는 인간도 소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회색시대

‘회색시대’ 전창환 作 /사진=이채빈 기자
‘회색시대’ 전창환 作 /사진=이채빈 기자

기후위기는 비단 동식물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인류는 이미 기후변화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빈번해진 전염병과 일상이 된 미세먼지, 이상기후로 인한 농작물 피해 등 직간접적으로 우리의 삶을 무너뜨리고 있다.

작품 ‘회색시대’는 인간이 부른 참사로 인해 방독면을 써야만 하는 환경공해 시대를 표현했다. 자연현상을 거스르는 인류에게 전쟁보다 통제와 예측이 불가능한 기후위기를 엄중하게 경고한다.

특히 빨간색의 인간 형상은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화석연료에 불붙은 인간을 표현한 작품으로, 지구 환경 오염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머지않아 멸망을 앞둔 인류의 모습이겠다. 가까이서 보면 코로나바이러스로 뒤덮인 모습 같기도 하다.

전 작가는 “화석연료 문명에서 벗어나 탄소중립을 실현하고 나아가 자연과 공존하는 ‘녹색시대’가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어의 꿈

‘문어의 꿈’ 전창환 作
‘문어의 꿈’ 전창환 作

코앞에 닥친 기후위기와 암울한 현실에도 작가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문어의 꿈’은 지속가능한 내일을 향한 작가의 바람이 깊숙이 스며든 작품이다.

초통령(초등학생들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가수 안예은의 노래 ‘문어의 꿈’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회색빛 세상에서 오색찬란한 무지개를 꿈꾸는 문어를 형상화했다.

작가는 폐업한 보육시설에서 버려질 뻔했던 스티로폼 공을 받아 무지개알로 만들었다. 그 위에는 회색빛 세상에서 먹물을 머금은 문어가 무지개알을 희망으로 품은 채 무지개를 꿈꾼다.

이 꿈은 아이들의 몫이다. 전시회에서 나눠준 무지개 스티커를 아이들이 직접 문어의 몸에 붙여 희망을 불어넣고 있었다.

이날 만난 아이들은 문어를 회색빛에서 무지갯빛으로 물들여주면서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로 위험에 처한 문어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며 “앞으로 문어가 깨끗한 바다에서 살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어의 꿈은 아이들의 꿈이다. 태어날 때부터 미세먼지와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쓴 아이들을 보면서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선명해졌다. 아이들이 누려야 할 좋은 미래를 박탈당하지 않도록 우리는 이 세상을 무지갯빛으로 바꿔야 할 의무가 있다.

관람객들은 회색빛 문어의 몸에 스티커를 붙여 무지갯빛으로 물들여줬다. /사진=이채빈 기자
관람객들은 회색빛 문어의 몸에 스티커를 붙여 무지갯빛으로 물들여줬다. /사진=이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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