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간 길동·방이동 생물종 조사··· 기후변화를 기록하는 시민과학자
수집 데이터로 논문·도서 발간, 시민 눈높이 맞춘 정책 수립에 활용

박경현 시민생태 코디네이터 /사진=박선영 기자
박경현 시민생태 코디네이터 /사진=박선영 기자

[환경일보] 박선영 기자 = ”맹꽁이는 ‘맹꽁맹꽁’ 울지 않고 ‘웩웩웩웩’ 울어요.“

박경현 방이생태학습관 생태 코디네이터와의 인터뷰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 그가 직접 녹음한 맹꽁이 울음소리를 들었다. 과연 맹꽁이는 ‘웩웩웩웩’ 우는 것이 맞았다. 인터뷰를 마친 지 한참이 지나도 녹취를 풀고 기사를 쓰지 않았던 것은 그가 밝힌 인상적인 이야기들 중 텍스트로 옮기기가 어려운 것들이 많아서다.

박경현씨는 지난 22년간 강동구 길동과 송파구 방이동 생태학습관에서 동물과 곤충, 식물 등의 서식지 변화와 환경, 생태 등을 기록해 왔다. 박씨가 말한 장마철 맹꽁이 우는 소리나 ‘쪽쪽쪽쪽’ 두꺼비가 우는 소리를 그대로 기사에 전달하기 어려워 그가 경험한 기후변화 현장을 전달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다양한 물고기, 식물, 곤충과 새가 서식하고 있는 방이동 생태경관 보전지역에서 생물종 조사를 하고 있는 박경현 생태 코디네이터 /사진=박선영 기자
다양한 물고기, 식물, 곤충과 새가 서식하고 있는 방이동 생태경관 보전지역에서 생물종 조사를 하고 있는 박경현 생태 코디네이터 /사진=박선영 기자

기후변화 생물지표종 모니터링

박경현 생태 코디네이터 안내로 방이생태학습관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어른 엄지손가락 절반만 한 사마귀를 자주 만났다. 남쪽 지역에서 서식하던 넓적배사마귀로 기후변화로 송파구 방이동 생태경관 보전지역(방이습지)에서 최근 발견돼 개체 수를 늘려가고 있다는 것이 박씨의 설명이다. 방이생태학습관을 중심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생물종 조사와 생태학습 프로그램 안내를 위해 방이동 생태경관 보전지역을 살피는 박씨에게는 익숙한 곤충이다.

환경부는 아열대 기후에서 서식하던 넓적배사마귀를 사마귀목(目) 중에서 유일하게 기후변화 생물지표종으로 지정했다. 생태학습관을 찾는 시민들에게 기후변화를 설명하기에 적합한 생물이다.

박씨가 취재를 안내한 곳은 평소 생태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논병아리 은신처였다. 지난해 논병아리가 번식을 시작한 곳으로 제초제를 뿌리지 않아 먹이가 되는 물고기가 있고, 수초도 충분했다. 박씨는 ”환경오염이 심한 서울에서 이렇게 논병아리가 서식할 수 있는 생육환경을 고루 갖춘 곳은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처럼 방이습지에서는 다양한 생물들이 관찰된다. 물속에는 물자라, 6~7종의 물고기도 살고 있다. 식물은 약 300여 종, 곤충은 점박이염소하늘소, 나비잠자리 등 약 400여 종, 물속에는 물자라와 양서 파충류도 많다. 새들도 80여 종이 관찰됐다. 전에 보이지 않던 연분홍실잠자리도 발견됐다.

또, 울릉도에서 처음 발견된 곤충인 울도하늘소는 3년 전 생태학습관 인근에서 나타나 점차 개체 수를 늘려가고 있다.

송파구 방이동 방이생태학습관 /사진=박선영 기자
송파구 방이동 방이생태학습관 /사진=박선영 기자

”수집 데이터가 생물다양성 연구와 시민 위해 더 잘 쓰여지길“

이렇게 지난 10년간 방이습지에는 기후변화와 사람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이유로 생물이 점차 많아졌다. 현재 이곳에서 관찰된 생물은 누적 409과 1775종에 이른다.

이 지역 생물종 조사를 연구기관에서 1년에 약 5번씩 실시한다면 박씨는 매일 최소 3회씩 시행한다.

박씨는 이처럼 오랫동안 모은 데이터로 논문을 쓰고 책도 만들었다. 2003년부터 2009년까지 길동생태공원에서 조사한 ‘비번식기 때까치의 먹이꽂이 행동에 대한 연구’는 한국조류학회지에 등재됐다. 때까치는 먹이를 나무에 꽂았다가 먹는 습관이 있고, 먹이꽂이 212개를 조사한 결과 때까치의 비번식기 서식을 위해서 먹이원이 되는 곤충과 양서류 등 종 다양성을 높게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또한, 일정한 거리 내에 습지와 개방된 초지, 산림이 어우러진 수직적 자연경관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생태학습관을 찾는 시민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하기 위해 관찰하고 조사한 기록은 ‘방이습지 친구들 새이야기’, ‘살아있는 생태박물관 시리즈’ 등의 책으로 만들어졌다.

박경현 씨는 ”이렇게 모아진 데이터가 생물다양성 연구와 시민을 위해 잘 쓰였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또, ”신분이 공무원이나 연구원은 아니지만 지속적인 모니터링으로 데이터를 만들어 가고 있는 시민생태 코디네이터가 더 많아져야 한다“며 ”이를 위해 지금보다 금액적으로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이생태학습관 내에서 박경현 시민생태 코디네이터가 관찰 중인 논병아리 /사진=박선영 기자
방이생태학습관 내에서 박경현 시민생태 코디네이터가 관찰 중인 논병아리 /사진=박선영 기자

”생물종 조사 모니터링, 정책적으로 더 인정받아야“

박씨의 학사 전공은 경영 회계다. 길동생태공원에 자녀와 생태체험해설을 들으러 갔다 자원봉사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지금의 일을 시작하게 됐다. 박씨 업무가 코디네이터로 불리는 것은 프로그램 기획부터 조사·운영까지 주도적으로 할 수 있어서이다.

이렇게 박씨가 만든 데이터는 연구기관에서 활용되거나 서울시에서 생태적인 관리에 대한 조언으로 쓰이기도 한다. 방이습지 관리소장이나 송파구청 등에 생물이 살고 있는 생태경관을 보전하기 위해 풀을 벨 때 조심해야 할 곳, 맹꽁이가 알을 낳는 지역에 물을 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같은 조언이다.

박씨는 7월5일 산림청에서 주최한 ‘시민과학 플랫폼 구축을 위한 국민디자인단 워크숍’에 시민생태 코디네이터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워크숍은 정부기관이나 전문가가 모으기 어려운 데이터를 디지털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시민들이 직접 생산해 의사결정을 지원하거나 중요한 문제를 찾는 것이 가능해져 이를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책 수립이나 모니터링을 활용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박씨는 ”자기지역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시민이 직접 수집하는 사례가 많아진다면 차후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좀 더 빨리 해결책을 찾고 예방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박씨 경우처럼 시민이 생태조사를 지속적으로 이어 가면서 자료를 낼 수 있는 곳은 월드컵공원, 길동생태공원, 방이동 생태경관 보전지역뿐이다.

분당구 탄천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박경현 시민생태 코디네이터 /사진=박경현 생태 코디네이터
분당구 탄천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박경현 시민생태 코디네이터 /사진=박경현 생태 코디네이터

숲해설가가 본인의 역량 강화를 위해 생물종 조사 모니터링을 함께 수행하는 형태로 대부분 생물종 조사에 대한 비용은 지급되지 않는다. 박씨는 방이습지, 탄천, 성내천 생태경관 보전지역의 생물종 조사를 계속해 오고 있지만 함께 조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점차 줄어 힘에 부칠 때가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기후위기 시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생물이 얼마나 다양하게 존재하는지를 파악하는 일은 사는 곳을 더 좋게 만드는 일”이라며 “숲해설 못지않게 중요한 생물종 조사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생태 코디네이터가 정책적으로 더 인정받고 시민 모니터링단도 만들어져 활발히 자료가 모아졌으면 한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7월5일 산림청 주최 ‘시민과학 플랫폼 구축을 위한 국민디자인단 워크숍’에서 발언하는 박경현 시민생태 코디네이터  /사진=박선영 기자
7월5일 산림청 주최 ‘시민과학 플랫폼 구축을 위한 국민디자인단 워크숍’에서 발언하는 박경현 시민생태 코디네이터  /사진=박선영 기자

[박경현 생태 코디네이터가 전하는 ‘기후위기 시대’ 지구를 살리는 한마디]

우리 동네 작은 녹지(뒷산과 공원)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생물에게 관심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 작은 생물들의 변화를 살피는 것이 우리 삶을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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