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재 붕괴되며 자체 발화···다 탈 때까지 사실상 속수무책
사용후 배터리 증가세, 재사용 안전성 공식 평가기준 없어

서울소방재난본부 관계자들이 전기차 화재에 관한 모의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출처=서울소방재난본부
서울소방재난본부 관계자들이 전기차 화재에 관한 모의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출처=서울소방재난본부

[전경련회관=환경일보] 최용구 기자 = 자동차에 대한 열관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전기차(EV), 하이브리드차(HE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EV) 등에 적용되는 발전기, 인버터, 구동용 모터 등은 모두 발열원이다. 자동차 ECU(Electronic Control Unit, 전자제어장치) 및 엔진부품 등의 전장화로 열관리 대상 부품이 늘면서 ‘방열’은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됐다. 

배터리가 대표적이다. 아무리 견고히 만든 배터리라 해도 부딪치면 찌그러지고 손상된다. 자동차 사고로 큰 충격이 가해질 경우 화재의 위험성에 그대로 노출된다. 문제는 “다 탈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배터리로 인한 화재를 쉽게 제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배터리의 경우 90도에서 120도 사이의 열이 가해지면 내부의 SEI(Solid Electrolyte Interphase) 층이 붕괴되기 시작한다고 알려져 있다. 성능과 수명을 결정하는 층이 망가지는 것이다.

120도 이상에선 카본(carbon) 성분이 전해액과 반응을 일으켜 부풀어 오르게 된다. 여기서 계속 상승하면 전해액이 기체상태로 휘발되고 결국 걷잡을 수 없는 ‘열폭주(Thermal runaway)’ 상태에 이른다.  

열폭주는 양극재 자체가 붕괴되는 것을 말한다. 배터리의 용량과 출력을 결정하는 양극제는 원료 가격에 따라 배터리 생산원가의 50% 이상을 차지할 만큼 핵심 소재다.

양극제가 분해되는 과정에선 산소가 계속 발생하게 되는 데 이는 외부에서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도 자체 발화를 일으킬 수 있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하윤철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열폭주는 배터리 안의 모든 물질이 다 탈 때까지 막을 수 없는 상황과 마찬가지”라면서 “열폭주를 어떻게 감지하고 관리하느냐가 배터리 안전의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열폭주 감지돼야 안전 확보  

학계는 열폭주에 관한 뚜렷한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은 모습이다. 지난 8월26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전기차 배터리 안전성 확보 주제의 세미나에서도 관련된 여러 질문이 던져졌지만 해결책은 나오질 않았다. 참석자들은 화재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은 어렵다는 한계를 재확인한 채 돌아갔다.  

이날 항만 분야 배터리 쪽 관계자는 “배터리 화재가 발생하면 물을 뿌리거나 주변에 이산화탄소를 퍼트려서 산소 공급을 막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면서도 “배터리 내부의 발화로 인해 안에서 산소가 계속 발생할 경우를 감안하면 그리 효과가 없는 방법을 쓰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SK E&S 연구진은 “열폭주 상황을 막기 위해 무엇을 진단하고 조치해야 하냐”고 질문했다. 그는 “발화된 시점에서 얼마 안에 소화를 시켜야 더 큰 확산을 방지할 수 있냐”며 시간적 개념을 묻기도 했다. 

하윤철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별로 규정화된 게 없다. 배터리 화재 사고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기 때문에 예측이 어렵다”고 답했다. 

지난 8월26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선 '전기차 배터리 안전성 확보' 주제의 세미나가 열렸다. /사진=최용구 기자 
지난 8월26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선 '전기차 배터리 안전성 확보' 주제의 세미나가 열렸다. /사진=최용구 기자 

이 같은 난해한 국면 속 ‘사용후 배터리 안전기준’ 또한 관심거리다. 전기차 보급 확대에 따라 발생되는 폐배터리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에너지전문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국내 폐배터리 발생은 2030년 8GWh(기가와트시)에서 2040년엔 72GWh 규모까지 확대된다. 

화학물로 구성된 배터리는 그대로 버려질 경우 유해폐기물과 마찬가지다. 위해성 저감과 자원순환, 에너지 안보 및 효율 등을 이유로 재사용 또는 재활용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학계는 폐배터리가 초기 용량 대비 출력 저하가 불가피한 것을 감안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상대적으로 낮은 출력을 요하는 곳에 최대한 재사용하고 안 되면 재활용하는 방안을 시도하고 있다. 

다만 성능 및 선별검사 등 안전과 직결된 공식적인 기준이 아직 없다. 폐배터리 재사용과 재활용의 활성화는 현재로선 이상적 목표에 가깝다.   

엄영식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세미나에서 “새 배터리는 공장에서 출고되면 제품에 대해서 대표성이 유지되지만 사용 후의 경우 어느 정도 운영됐다 보니 사용환경, 설계 방식, 냉각시스템 등 다양한 인자에 따라 특징이 제각각”이라며 “그만큼 일관성있는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수검사 도입···현실성 도마 위 

그는 “일관성을 찾으려 연구를 진행하고는 있지만 아직 못 찾았다. 사용후 배터리는 어쩔 수 없이 일일이 전수조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국가기술표준원에 따르면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개정안이 최근 발의됐다. 개정안은 사용후 배터리에 대해 모델별 표본검사가 아닌 전수검사를 도입하는 내용이다. 품질상태가 상이한 사용후 배터리는 사고 발생의 우려가 커서 모든 제품에 대한 검사가 필요하다고 당국은 보고 있다. 

다만 개정안 발의와는 별개로 학계 사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지속됐다. 세미나에 참석한 전자통신연구 쪽 관계자는 “주행거리, 사용이력 등 여러 생활 환경에 따라 각기 다른 사용후 배터리를 시험으로 검증하고 제어하는 게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엄영식 책임연구원은 “폐배터리가 배출되고는 있다고 하지만 우리 연구원에서 활용할 수 있는 숫자가 적어서 통계적인 모수가 적다”며 “사용후 배터리에 대한 기준이나 성능평가 기술개발은 데이터 싸움이기 때문에 여러 기관이 협업을 통해서 진행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폐배터리 순환경제의 진입을 위해선 성능 평가 기준 표준화가 전제돼야 한다. /사진출처=제주테크노파크
폐배터리 순환경제의 진입을 위해선 성능 평가 기준 표준화가 전제돼야 한다. /사진출처=제주테크노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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