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전파자라는 오명에도 나는 생태계를 지킨다

‘환경부와 에코맘코리아는 생물자원 보전 인식제고를 위한 홍보를 실시함으로써 ‘생물다양성 및 생물자원 보전’에 대한 대국민 인지도를 향상시키고 정책 추진의 효율성을 위해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을 운영하고 있다. 고등학생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 선발된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이 직접 기사를 작성해 매월 선정된 기사를 게재한다. <편집자 주>

흡혈박쥐의 모습 /사진=이주창 학생기자
흡혈박쥐의 모습 /사진=이주창 학생기자

[녹색기자단=환경일보] 이주창 학생기자 = 바이러스와 공생하는 박쥐는 생태계의 수호자다. 건강한 지구생태계를 위해 종간 장벽의 거리두기와 박쥐 보호가 함께 필요하다.

90년대 팀 버튼의 배트맨 시리즈부터 다크나이트 3부작, 올해 3월 개봉한 ‘더 배트맨’까지. 박쥐를 모티브로 한 영웅 배트맨은 오랜 시간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캐릭터다. 박쥐다운 영웅 배트맨의 멋보다도 영웅다운 종 박쥐의 매력에 빠져보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팃 포 탯’

사람들은 자신을 희생해 남을 돕는 사람을 영웅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동물 중에서도 영웅적인 행동을 하는 종이 있을까? 이타적 행동을 하는 동물의 대표가 바로 다양한 박쥐 종 중 흡혈박쥐다. 생존을 위해 매일 자기 몸무게의 반이 넘는 피를 먹어야 하는 흡혈박쥐는 일과의 대부분을 사냥에 매진한다. 하루 이틀만 굶어도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흡혈박쥐는 자신이 굶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무리의 굶주린 새끼나 임신한 암컷에게 자신이 사냥한 피를 전부 토해서 먹인다.

행동학자들은 흡혈박쥐의 이러한 행동을 ‘팃 포 탯 (Tit-for-Tat)’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팃 포 탯은 기본적으로 같은 종 안의 관계에서 협력으로 시작해 상대가 협력한다면 자신도 협력하고 상대가 배신한다면 자신도 배신해 점차 무리 전체가 이득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이다. 선량한 시민들을 위해서는 협력하고 악당들에게는 폭력으로 응징하는 배트맨은 흡혈박쥐의 생존전략과도 같은 모습이다.

생태계를 지키는 흑기사, 박쥐

배트맨을 부르는 가장 유명한 별명으로 ‘다크나이트’가 있다. 영화 속에는 누명을 쓰고 악역을 자처하더라도 정의를 지키는 다크나이트, 배트맨이 있다면 지구생태계에는 박쥐가 있다. 박쥐는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주요 숙주로 원망받기도 한다. 2017년 ‘네이처’에 따르면 박쥐류가 156종의 인수공통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 박쥐는 바이러스와 공생하여 바이러스는 박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동시에 박쥐는 바이러스의 운반자 역할을 한다. 박쥐와 공생하는 이러한 바이러스들은 일반적으로는 인류에게 전파되지 않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전파 과정에서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사람에게도 감염되는 ‘인수공통 바이러스’가 된다.

생물학자들은 박쥐가 신종 코로나를 비롯한 치명적인 인수공통 바이러스의 숙주임에도 영장류, 벌, 균류, 플랑크톤과 함께 지구에서 절대 사라지면 안 될 동식물 다섯 분류군 중 하나로 평가하고 있다.

박쥐는 곤충의 개체 조절과 식물 수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립공원연구원에서는 “박쥐류는 하루에 모기를 1000~3000마리까지 잡아먹어 해충박멸에 매우 효과적인 포식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뛰어난 포식 능력으로 지구 동물계의 70%를 차지하는 곤충의 개체 수를 조절하고 야간에는 벌을 대신해 식물의 수분을 담당한다. 북미에서는 박쥐가 꽃가루 매개로 농업에 이바지하는 가치가 연간 229억 달러(한화 25조원)에 이른다.

위기에 처한 영웅

붉은박쥐의 모습 /사진=이주창 학생기자
붉은박쥐의 모습 /사진=이주창 학생기자

박쥐는 생태계 유지에 필수적임에도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전 세계 박쥐 종 중 20%가 멸종 위기에 처한 상태이다.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인공조명으로 인한 광공해 현상, 풍력발전기로 인한 사고 등이 박쥐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한반도의 박쥐 역시 50년 전과 비교했을 때 개체수가 90% 이상 감소한 상태로 보호가 필수적인 상황이다. 국내에 자생하는 박쥐 23종 중 3종이 멸종위기종으로 작은관코박쥐와 붉은박쥐가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 토끼박쥐가 2급으로 지정돼 있다. 환경부에서 발표한 ‘2018~2027 멸종위기 야생생물 보전 종합계획’에서는 세 종의 박쥐 모두 서식지 내 보전 우선 대상종으로 선정돼 있으나, 멸종위기종의 증식 및 복원을 위한 1, 2차 종합계획에는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작은관코박쥐와 토끼박쥐의 경우 생태학적 자료가 불충분하여 기초조사가 먼저 필요한 상황이다.

국내에 자생하는 박쥐들의 공통적인 위험 요소가 산림 개간 및 벌채, 산악도로 건설 등으로 인한 서식지 파괴로 파악되면서 전문가들은 본격적인 생태환경 조사와 보호 안내판 등의 설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종 사이에도 필요한 ‘거리두기’

런던 동물학회에서는 “인간이 주변 경관을 바꾸고, 야생과의 거리를 좁히기 때문에 인류가 새로운 바이러스와 접촉하는 것”이라 밝혔다. 전문가들은 박쥐가 바이러스의 저장소 역할을 하고 있지만, 야생 상태 그대로의 박쥐는 인류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거의 없고 오히려 생태계 유지에 필수적이라 말한다. 원래 박쥐는 바이러스와 생태적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서식지 파괴로 인해 인간의 생활권에 들어오면서 그 균형이 깨진 것이다. 야생 서식지에 대한 인간의 침해가 증가하면서 사스, 에볼라, 코로나 등과 같은 바이러스가 종간 장벽을 넘은 것이다.

멸종위기종인 박쥐들을 보호하는 동시에 바이러스가 종간 장벽을 넘지 않도록 서식지 보호와 같은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 견해이다. 우리는 박쥐를 비롯한 야생동물을 바이러스의 원인으로 보고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파악하고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우리도 한 번쯤은 영웅적인 종 박쥐와 같이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생태계 평화를 위해 협력하는 영웅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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