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가치 관점에서의 중대시민재해 관리 필요성 제기
방치된 공조설비, 화재경보기 무용론 등 현실은 ‘허접’

홍수나 화재에 취약한 지하철 역사 내 중대재해 발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사진=환경일보DB

[국회=환경일보] 최용구 기자 = 지하철 역사 내 중대시민재해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홍수 및 화재 발생에 취약함에도 사고를 방지하고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이는 각 기관들이 앞다퉈 홍보하는 ESG(Environmental·Social·Governance) 경영에도 진정성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중대시민재해는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확보 의무에 대한 법적인 이슈다. 

장경태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 동대문구을)은 “ESG적인 관점에서 지하철 역사 내 중대재해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지하철 역사는 디자인과 건축적 요소가 복합된 공간으로 자리잡히고 있는 반면, 발생하는 중대재해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다”며 인식의 변화를 촉구했다. 이날 간담회는 장경태 의원실이 주최하고 재정경영연구원, 유니코어드환경연구소, 환경일보가 공동 주관했다.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중대시민재해는 ‘특정 원료나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 상의 결함으로 발생한 재해’로 정의된다. 피해규모나 관련 당사자가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산업재해와 차이를 보인다. 법무부, 환경부, 고용노동부, 공정위 등 소관부처도 다수다. 여러 부서가 관여해 대응하고 사후 대책을 준비할 일이란 것이다. 

산재보다 피해 범위 넓어 

고문현 숭실대학교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 등에게 분명 부담되는 일이지만 ESG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곧 ‘안전은 생명이자 기본’이란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실에선 이 같은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게 공통된 주장이다. 간담회에 나온 전문가들은 지하철 역사의 허술한 관리 실태를 문제 삼았다.  

서정두 건축기계설비기술사(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기술평가위원)는 “국내 지하철 역사에 적용된 대부분의 필터는 습식방식인데 습식은 겨울엔 얼고, 여름에 쓸 때는 곰팡이 등 세균번식을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쌓인 먼지가 떡이져 필터가 막힐 정도로 방치돼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계절요인을 무시한 필터 도입에 세척 관리 문제까지 더해졌단 것이다. 

지하철 역사 내 공기 급기필터의 막힘 실태 /사진제공=서정두 건축기계설비기술사
지하철 역사 내 공기 급기필터의 막힘 실태 /사진제공=서정두 건축기계설비기술사

지하철 필터는 국정감사에서도 도마에 오른 바 있다. 홍기원 국토교통위원회 의원은 지난해 한국철도공사(KORAIL)에 대한 감사에서 “필터 관리가 주먹구구식이다. 체계적인 기준과 점검시스템을 마련하라”고 시정을 촉구했다. 급기필터가 막혀 공기가 통하지 않다 보니 화재 발생시 연기배출도 불가능하다는 게 당시 지적이었다. 

지하철 역사로 들어온 외부 공기는 대게 급기필터, 공조기필터를 통과해 대합실이나 승강장으로 흐른다. 급기필터에서 먼저 거르고 공조기필터가 2차로 필터링하는 식이다.    

서정두 기술사는 “막힌 필터가 공기량 부족을 유발하고 이는 화재시 질식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함승희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전기설비나 각종 내장재로 인한 피해 등 지하철 화재 피해가 대형화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밝혔다. 그는 “화재시 소리가 울려도 어디서 발생한건지 구체적으로 알기 힘든 경우가 빈번하다”며 “상시 점검관리가 가능한 체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현행 도시철도건설규칙 제46조는 ‘역무실에는 화재경보가 감지된 지역을 화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설비를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경계구역을 크게 나눠 보는 현재의 방식이 아니라 세부 지점까지 상시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는 게 황 교수의 주장이다.   

황 교수는 “화재용 방독면이나 공기호흡기를 모아둔 비상구호함을 지하철 플랫폼 쪽 위주로 배치한 것이 유사시 과연 얼마큼의 실효성을 가질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각계가 터놓고 현실적 얘기 나눠야 

지하철 공기업의 경영 행태를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조규상 재정경영연구원장(한국ESG학회 총무이사)은 “하청업자에 대한 갑질, 귀족노조문제 등 도시철도업 관계자의 특수성을 가지고 이익을 집단화시킨 사례는 근절돼야 한다”면서 “기후변화로 인해 지하철 운영환경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 자구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김익수 환경일보 편집대표는 “지하철을 관리·운영하는 주체들도 할 말이 있을 것”이라며 “각계가 터놓고 투명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만약 예산 부족때문에 관리에 한계가 있는 것이라면 시민들에게 최소한 평균 수준의 서비스를 보장하기 위해 우리가 얼마를 더 부담해야 할지를 놓고 모여서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강찬수 중앙일보 기자는 “지하철 실내공기질 관련 데이터가 시민에게 공개되고는 있지만 그걸 종합해서 평가하고 분석하는 작업은 미진하다 보니 대응에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이 가운데 지하철 내 중대시민재해의 책임을 실제로 가리는 과정에선 애매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윤용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법과 시행령이 만들어졌지만 그동안 처벌된 사례가 많지 않다 보니 판례가 적어 법조계에서도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며 “여러 주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누가 어떤 범위에서 책임을 질지, 그 책임의 관계는 어떠한지’를 놓고 부딪치고 있다”고 말했다. 

 6일 국회의원회관에선 '지하철 역사의 중대시민재해'를 주제로 간담회가 열렸다. /사진=최용구 기자  
6일 국회의원회관에선 '지하철 역사의 중대시민재해'를 주제로 간담회가 열렸다. /사진=최용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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