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탄소중립 실현은 문화예술부문의 과제
기후변화 대응하는 예술정책·시스템 마련 필요

나혜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정책혁신부 책임연구원 /사진=박선영 기자

[환경일보] 박선영 기자 = 나혜영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 이하 예술위) 정책혁신부 책임연구원에 대한 첫 번째 질문은 축제·행사 지원사업 평가항목에 예술위가 탄소배출 저감방안을 포함시킨 것에 대한 것이었다.

첫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인터뷰를 시작하고 30분이 지난 뒤에야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이 답변 순서를 어느 정도 정하고 오는 기자 입장에서 약간 당황스러운 일이지만 예술위가 정책을 추진하기까지의 과정을 듣고 나서야 나 책임연구원의 답변 순서가 이해됐다.

예술위는 지난해 기후위기 시대의 예술정책을 모색하는 워크숍, 기후변화의 위험성과 성찰의 계기를 제시하는 공공예술 프로젝트와 전시공연을 진행했다.

특히 ‘예술지원정책에 대한 미래수요 연구’에서는 예술인들의 기후위기 및 관련 정책에 대한 인식을 조사(국가문화예술지원시스템 등록 예술인, 응답자 5596명)했는데, 설문에서 기후위기가 예술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대답이 66%, 기후위기 대응에서 예술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답변은 73%였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예술정책 개발 필요성(76%), 정책도입 찬성(77%), 정책참여(76%) 인식은 전체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반면 기후위기 예술정책에 참여하지 않겠다는(8%, 447명) 이들의 이유는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의견이 50%, 어떻게 참여하는지 모른다는 의견이 19%였다.

예술지원정책에 대한 인식과 미래수요 연구(기후위기 정책 부문) 설문조사 /자료제공=나혜영 책임연구원, 그래픽=안기성 편집기자
예술지원정책에 대한 인식과 미래수요 연구(기후위기 정책 부문) 설문조사 /자료제공=나혜영 책임연구원, 그래픽=안기성 편집기자

이 설문으로 예술인과 예술단체 관계자에게 기후위기 예술정책에 대한 인지 및 참여 방법 논의가 필요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형 뉴딜 등 기후위기 관련 정책에서 문화예술을 연계하는 방안은 찾아보기는 힘들다.

올해 3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이 시행됐다. 법 제4조(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는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등 모든 부분에 탄소중립기본법의 기본원칙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공공기관과 사업자 및 국민이 온실가스를 효과적으로 감축하고 기후위기 적응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예술위는 정책혁신소위원회 기후-예술 워킹그룹 활동보고서에서 “문화예술지원기관을 포함한 문화예술계의 탄소배출 저감(Greening)을 위해서는 문화예술계에 적용할 수 있는 탄소배출측정 툴, 탄소배출저감 방법에 대한 안내서와 정보, 이를 적용할 수 있는 지원제도의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나혜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책임연구원과의 인터뷰는 예술가의 창작을 지원하고 예술가와 예술가, 예술가와 시민 간 소통을 위해 마련된 종로구 예술가의 집에서 이뤄졌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기후위기와 예술정책 제4차 워크숍  /사진제공=나혜영 책임연구원
온라인으로 진행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기후위기와 예술정책 제4차 워크숍  /사진제공=나혜영 책임연구원

국가단위의 ‘기후위기 대응 예술정책’ 모색 필요

문화예술의 발전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인 예술위는 위원장과 비상임위원, 소위원회, 사무처의 거버넌스 구조로 운영된다. 이 중 소위원회는 예술현장과 소통하며 외부 전문가들과 예술위를 잇는 역할을 맡는다.

예술위 홈페이지 내 기관소개에서는 “예술위는 현장 문화예술인들로 구성된 위원들이 중심이 되는 합의제 의사결정기구로, 민간이 공공영역의 의사결정에 참여한 결과가 정책으로 환류되는 동시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제7기 정책혁신소위원회는 예술지원의 패러다임 변화를 위한 3가지 아젠다를 도출했고, 그중 하나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예술’이다. 정책소위는 기후위기 시대 문화예술 대응을 이슈로 미학, 정치학, 행정학, 예술현장, 환경학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했다. 기후와 예술을 어떻게 연결할지 담론부터 공부해 나간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 예술적 접근과 대안을 마련하는 연속 워크숍을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진행했다. 워크숍 주요 내용은 ▷기후위기 예술정책 동향과 사례 ▷미학의 관점에서 보는 기후위기와 예술정책 ▷기후위기 시대의 예술, 상상이 필요한 때 ▷국가정책으로서 그린뉴딜과 예술뉴딜의 접점 ▷기후위기 시대, 예술정책의 과제들 ▷예술인 집담회, 기후위기 시대에 예술하기 등이다. 이들은 각 분야 전문가 및 예술가와 소통하고 내부 연구를 통해 ‘기후위기 시대, 예술정책’을 제안하고 기후위기 시대 예술지원 방향 제안서를 구성했다.

전 정부는 탄소중립위원회를 설치하고 각 부처별로 추진 방안과 계획들을 시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문화체육관광부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문화정책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그린뉴딜 하부사업에서도 문화예술 정책은 없었다.

나 책임연구원은 “이미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예술적 접근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가단위에서 관련 정책에 관심과 의지를 가져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예술위는 축제가 비교적 탄소배출이 높다는 점에 착안해 축제 지원사업 평가항목에 친환경 방안 제시를 포함시켰다. 이를 통해 축제 기획자와 예술가들은 탄소배출 저감방안을 모색하고, 축제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는 환경적 지속가능성에 대한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나 책임연구원은 “축제 부문에 환경항목을 넣은 것은 규제적인 성격이라기보다 인식 제고라는 면이 강하다”며 “탄소배출저감은 예술활동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야 하는 것으로 무엇보다 적용하고자 하는 이들의 동의와 자발성이 중요하기에, 예술활동에서의 환경적 지속가능성이 왜 중요하고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인식확산의 측면에서 가이드북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예술위는 영어로 된 자료들에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해외 툴킷과 가이드북을 번역해 오픈소스로 게시할 예정이다.

”기후위기 연계 문화예술 사업의 전담 조직 필요“

나 책임연구원이 전한 기후위기 관련 사업의 전담 조직은 반드시 공공기관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해외 사례를 보면, 스코틀랜드의 크리에이티브 카본 스코틀랜드(Creative Carbon Scotland)는 예술인과 과학자들의 미팅을 주선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아이디어를 서로 나누고 영감을 받을 수 있도록 돕거나, 예술인이 작품 제작 전 탄소배출량에 관한 문의, 탄소발자국을 만드는 예술인의 이동 공유, 장비 재활용 등의 컨설팅을 지원하는 민간조직(비영리단체)으로, 기후·예술 관련 광범위한 활동을 지원한다.

영국예술위원회는 2013년 문화예술 영역의 환경에 대한 이해 및 탄소배출 저감을 위해 기금 지원의 조건으로 환경계획의 수립과 성과보고를 도입했다. 한국이 단체나 예술가들을 지원한다면 영국은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극장 등 기관에 큰 규모로 예산을 지원한다. 단 영국 예술위원회는 기관들이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해서는 엄격한 기준을 제시한다. 여기에 환경 부분이 포함된다. 이렇게 예산을 지원받는 곳은 환경계획을 수립해야 하고 이를 달성했는지 성과보고를 해야 한다.

줄리스 바이시클(Julie’s bicycle)은 영국 예술위원회의 파트너다. 국제적으로 2000개 이상의 조직과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는 이 단체는 2025년까지 런던의 극장들과 탄소 60% 감축 방안을 시행하고 있다.

영국예술위원회가 환경부문을 지원의 조건으로 추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줄리스 바이시클(Julie’s bicycle)과 같은 전문조직이 있었기 때문이다. 줄리스 바이시클은 문화예술에 특화된 탄소배출측정 툴 개발, 각종 툴킷과 가이드북 제작, 예술과 환경적 지속가능성 연계할 수 있는 컨설팅 등을 전문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들 민간조직은 공공부문과 협력하여 기후문제를 문화예술분야와 연결시키는 역량과 구조를 마련함으로써 예술부문의 탄소중립뿐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에서 예술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다양한 실험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처럼 민간 에이전시가 탄소중립 컨설팅을 하고 툴을 만들어 보급할 수 있는 것은 탄소배출 감축이 필요하다는 예술가와 시민들의 인식 기반이 있어서이다.

이에 예술위는 예술활동에 있어 탄소배출을 줄이는 실행 방법을 찾고 인식 개선을 위한 활동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기후시민 3.5’ 활동으로 제작된 에코현수막(촬영 이승민) /사진제공=나혜영 책임연구원
‘기후시민 3.5’ 활동으로 제작된 에코현수막(촬영 이승민) /사진제공=나혜영 책임연구원

공공예술 프로젝트 ‘기후시민 3.5’는 예술위가 진행한 대표적인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시민 대상 캠페인이다. 2020년 시작된 기후시민 3.5 프로젝트는 지구 인구의 3.5%를 확보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발상에서 시작됐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이미 활동하고 있는 시민과 단체들을 연결해 온라인상으로 기후위기 문제를 공유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기후위기 3.5 프로젝트는 기후와 예술을 융합한 국내 최대 기후위기 캠페인으로 미술, 건축, 영화, 디자인 분야의 작가 및 이론가, 연구기관(극지연구소, 한국수산자원공단,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등), 국내외 환경·시민 단체가 함께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예술위원회, 환경운동연합, 기후시민 3.5가 공동 주관한 영상제 ‘기후위기, 전선을 드러내다’ 포스터 /사진제공=나혜영 책임연구원
지난해 한국예술위원회, 환경운동연합, 기후시민 3.5가 공동 주관한 영상제 ‘기후위기, 전선을 드러내다’ 포스터 /사진제공=나혜영 책임연구원

기후위기 대응에서 문화예술적 접근이 많아지길

나 책임연구원은 “기후위기 대응에서 예술적 접근이 갖는 의미를 찾고 이를 적용할 수 있는 민간부문의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며 “공공부문의 지원과 협력을 기반으로 기후·예술 관련 민간부문이 활성화됨으로써 기후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높아지고 예술부문의 탄소배출 저감을 응원하고 후원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혜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정책혁신부 책임연구원이 전하는 ‘기후위기 시대’ 지구를 살리는 한마디]

인식과 실천의 괴리에서 예술은 기후위기를 감각하고 반응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 모두의 참여가 필요한 시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문화예술적 접근에 주목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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