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각 위기 이월상품 ‘기부’ 등으로 선순환 필요

[환경일보] 패션 시장은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해 시즌마다 신상품을 출시한다. 고가의 명품 브랜드는 매장 문을 열기도 전부터 대기줄이 이어지는 ‘오픈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아무리 인기 브랜드 상품이라 해도 아이템에 따라 생산한 제품이 모두 판매되지 않고 재고로 남는데, 재고는 어떻게 처리될까. 그간 많은 기업이 자사의 브랜드 가치를 위해 재고를 모두 폐기해왔다.

프랑스는 올해 1월1일부터 패션 재고의 소각처리를 법으로 금지했다. 유명 브랜드의 재고 소각은 럭셔리 제품의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려는 마케팅 기법의 하나다. 영국 명품 의류 업체 ‘버버리’는 2017년 향수‧의류 등 2860만파운드(약 420억원) 규모의 재고를 태웠다는 사실이 밝혀져 비판받았다.

일반 브랜드에서도 재고 관리 비용 대비 소각 비용이 더 저렴하다는 이유로 관행적으로 매립이나 소각을 선택한다. 업계에 따르면 재활용되지 않고 소각 및 매립되는 의류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적으로 연간 120억 톤에 이른다.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0%에 달하는 양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패선 업계에서 공공연하게 진행하고 있는 재고 처리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 생산된 자원을 낭비하는 것은 비환경적이며 시대 흐름에도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소각 대신 기부나 중고 시장에서의 유통을 고려하거나 다른 업사이클링 방법에 대한 고민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버버리는 자사 재고 소각이 드러난 후 곧바로 ‘재고 상품을 기부하겠다’고 밝히며 현재 구직 여성에게 무료로 면접 복장을 빌려주는 사회적 기업에 재고 의류를 기부하고 있다. 또 명품 브랜드 알렉산더 맥퀸은 남은 원단을 패션 전공 학생들에게 기부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전 세계적으로 ESG(환경·사회·투명경영)가 중요해지면서 국내 패션업계도 ‘친환경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최근 성수동에서 3번째 팝업스토어를 연 애프터어스는 30여 개의 브랜드의 샘플, 리퍼브, 애프터시즌 의류를 최소 50~90% 할인‧판매하는 친환경 플랫폼이다. 판매금액의 일정 부분은 환경 단체에 기부된다.

현대백화점그룹 한섬은 재고를 친환경 방식으로 폐기처리 ‘탄소제로 프로젝트’ 시작을 운영 중이다. 폐기될 재고 의류를 폐의류 재활용업체에서 고온과 고압으로 성형해 친환경 인테리어 마감재(섬유 패널)로 만든다. 또 매주 생산 회의를 통해 시즌 중 리오더를 결정한다. 소진율, 트렌드, 기상 예측 등을 고려해 재생산에 들어간 제품은 빠르면 2주 안에 매장에 전달된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상품 기획 단계부터 판매까지 전 과정에 걸쳐 데이터를 수집·분석하는 AI ‘아이피츠’를 개발했다. 상품기획자의 감각에 의존해 결정되던 생산량을 빅데이터를 토대로 제안하고, 상품이 부족하거나 남지 않도록 생산 주기와 생산 수량을 결정해 준다. 삼성물산 패션 부문 온라인몰인 SSF샵은 AI로 소비자 구매 패턴을 분석하고 맞춤 정보를 제공한다.

코오롱FnC는 2012년 업사이클링 브랜드 래코드(RE;CODE)를 론칭했다. 소각 예정인 재고 상품을 해체해 그 원단으로 다시 옷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재고를 값싸게 처분하거나 기부하는 대신 다시 의미 있는 상품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래코드는 올해도 남성복 브랜드 재고를 해체해 여성복으로 새롭게 디자인하고 단추나 지퍼 등 재고 부자재를 티셔츠 등에 적용, 업사이클링한 제품을 내놓았다.

아예 재고가 없는 지속 가능한 의류를 콘셉트로 한 브랜드도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지난해 2월 론칭한 ‘텐먼스’다. 1년 중 10개월간 입을 수 있는 옷을 제작해 판매하는 콘셉트로 운영되는 텐먼스는 팔리지 않은 옷은 재고로 두지 않고 온라인을 통해 지속해서 판매한다.

해외 유명 패션 브랜드의 재고 처리 방법 변화와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MZ세대의 소비력 증대 속에서 ‘재고의 처리’가 패션업계의 문제가 아닌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자리 잡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이 요구되는 때다.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