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선 한국탄소금융협회 부회장

김효선 한국탄소금융협회 부회장
김효선 한국탄소금융협회 부회장

[환경일보] 얼마 전 피노키오라는 영화를 보았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동화와 다른 결말이다. 영화에서 피노키오는 진짜 아이가 되지 않는다. 할아버지를 위기에서 구출한 뒤 할아버지에게 빛을 향해 가자고 미래를 제시한다. 영화에서 할아버지는 조직원, 피노키오는 리더로 표현된다. 위기와 혼란에서 긍정적 사고로 조직원을 독려하고 진취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미래지향적 리더 말이다. 그리고 엔딩 장면에서 피노키오는 정직하고, 용감하고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표현한다. 바로 ESG경영이 추구하는 리더십과 일치한다.

과거에는 BP가 단연 최고였다. Sir Brown이 그린 리더십(Green Leadership)의 으뜸이었다. 이제는 아람코, 옥시덴탈 등 다양한 플레이어가 그린 포트폴리오로 미래 먹거리를 찾는다. 아람코는 하이드로젠과 디지털화(Digitalization), 옥시덴탈은 CCUS와 같은 탈탄소 (Decarbonization). 두 회사 다 에너지전환에 있어서 화석연료의 한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탄소발자국과 관련한 기후행동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게다가 삼성전자가 RE100을 선언했다. 내가 생산하는 품목 외에 전과정에 걸친 밸류체인까지 확대하는 SCOPE3의 의무공시와 탄소국경조정에 미리 대응하는 것이다.

이번 11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는 넷제로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불과 2개월도 남지 않았다. 협약에서 명시한 고통분담(burden sharing)은 이제 EU가 제시한 노력분담(effort sharing)으로 진화하고 있다. 즉 당장 행동(Act Now)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대응이다.

우리 에너지기업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전과 가스공사는 미수금 문제로 부채비율이 400%에 달하는데 최악 시나리오의 경우 연말에 500%를 넘을 수도 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가스의 단기 물량 확보는 전쟁터가 따로 없다. 이런 마당에 무슨 넷제로이며 ESG경영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과 강달러는 수입에 의존하는 에너지기업에 커다란 위기다. 공급물량이 부족한 것만이 위기가 아니다. 계약물량을 확보했다고 해서 안심하지도 못한다. 단기물량이기 때문이다. 트레이더의 경제논리에 희생될 수 있다. 이것 또한 그럭저럭 넘어갔다 치자. 부채상환이 기다리고 있다. 악순환의 고리가 끊이지 않는다.

에너지 공기업, 자발적·미래지향적 개혁 추진해야

그린 포트폴리오·ESG경영에 공격적인 투자 절실

그동안 우리 에너지기업들은 공급이 수요를 낳는 구조에서 정부의 지원 속, 즉 온실 안의 화초처럼 성장했다. 글로벌 트렌드를 알 필요도 없었다. 이와 비교되는 예로 KT의 발자취를 보자. KT의 민영화 전신은 한국전기통신공사다. 1981년 출범해 2002년에 민영화한 뒤 40년이 흘렀다. 글로벌 트렌드를 읽지 않았다면 지금도 전국망에 의존하여 전선을 정리하고 다닐 것이다. 정보화시대에 맞게 변화했고 이제 새로운 20년을 글로벌 테크컴퍼니로 구상하고 애플, 구글 등과 경쟁하겠다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 에너지공기업은 어떤가? 혹자는 얘기한다. 진정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개혁은 자발적이어야 하고,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에너지 위기를 맞아 우리 에너지기업들의 경쟁력에 대해 솔직히 고민해 보자. 아람코만큼 디지털혁명에 대비하고 있는가? 옥시덴탈만큼 자원개발의 그린 자원순환, 즉 Green Circular에 대해 밸류체인을 확보하고 있는가? 핀셋정책에 길들여져 왔듯이 핀셋으로 먹잇감을 찾고 있는 건 아닌가? 한번 돌아보길 바란다.

지난 세계지식포럼은 두 가지 메시지를 전했다. 하나는 지속가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넷제로를 향한 에너지전환이다. 이 둘은 우리 에너지공기업이 에너지 위기를 극복할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특히 천연가스는 원전과 함께 그린텍사노미에서 친환경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 경영하면 KT가 전선줄만 정리하는 꼴이 된다. 지속가능성과 그린 에너지전환에 필요한 것이 바로 그린 포트폴리오와 ESG경영이다.

BP가 제시한 Outlook에 따르면 2030을 정점으로 화석연료의 성장은 변곡점을 맞는다. 즉 불과 10년 이내 우리 성장은 미래 먹거리가 없을 경우 고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미래의 에너지 수요 잠재력은 모빌리티에 있다. 즉 육상, 해상, 항공 에너지원이 무엇이냐에 따라 넷제로 실현은 요원할 수도, 다가갈 수도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수소공동체(hydrogen group)이다. 수소, 암모니아, 그리고 메탄올. 이들 삼형제에 대한 투자와 파트너십이 그린 포트폴리오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아람코, 옥시덴탈의 빅픽쳐와 그린 리더십을 따라가야 한다.

뉴욕 유엔개발국 본사에 있을 때 금융권 친구들과 파생상품 스터디그룹을 한 적이 있다. 그때 한 선배가 이런 얘기를 했다. 돈을 벌고 싶어도 천연가스 선물(先物)을 하고, 돈을 잃고 싶어도 천연가스 선물에 손을 대라고. 그만큼 어려운 것이 천연가스 선물이다. 왜냐면 가장 지정학적 리스크에 민감하고, 계절 편차가 크며, 바이어와 셀러의 입장이 극명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위기 극복을 위해 전문가의 그린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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