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구조 속 여러 ‘기후변화들’ 존재, 본질은 탄소 농도 아니야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 때문에 지구가 뜨거워지는 것은 과학적인 사실이다. 대기 중에 축적된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를 만들었고 허락된 대기 중 탄소량을 넘기면 인류는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다. 세계는 탄소의 순배출을 2050년까지 제로로 만드는 2050 탄소중립을 방어 수단으로 강조한다. 

다만 기후변화를 느끼는 정도는 처해진 상황마다 다르다. 직업, 인종, 학력, 계급, 국가, 지역 등에 따라 인식은 달라진다. 열성적으로 나서서 기후변화 대응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무관심한 사람도 있다. 그 중간지점에서 기후변화를 걱정하는 부류도 있다. 기후변화라는 과학적인 현상은 사회구조 속에서 여러 ‘기후변화들’로 재생산된다. 

개개인은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틀에서 기후변화를 다르게 경험한다. 대기오염에 따른 미세먼지, 계절 변화로 인한 농작물 피해, 공해로 인한 전기차 시장 확대 등 사람마다 떠올리는 것은 다르다. 기후변화 대응은 인간과 사회적 관계의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는 논리와 연결된다. 

탄소중립은 탄소를 줄이는 기술적인 방법에 초점을 두고 있는 개념이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부터 순환경제 실현 등에 이르기까지 기술 혁신이 필수로 여겨진다. 과학연구를 통한 신기술이 기후·생태위기 해결에 기여할 것이란 믿음의 산물이다. 

하지만 이 같은 과학적 담론은 대중의 관심사와 가치관, 철학 등을 충분히 고려할 수 없다. 과학기술 위주의 획일적 접근으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기란 역부족이다. 물론 기후변화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선 에너지, 이동수단, 먹거리, 디자인 등 전 영역의 기술시스템도 전환돼야 한다. 다만 사회와 제도 그리고 행동의 변화가 우선이다. 

저탄소를 실천하려면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는 스스로의 생활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하지만 탄소가 배출돼야 돌아가는 시스템 안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이를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기후변화 문제의 본질은 탄소의 농도가 아닌, 자연을 불평등하게 이용한 데 따른 사회·정치적 갈등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갈등을 해소하려면 비전과 방향성을 서로 공유하고 공감해야 한다. ‘탄소는 왜 계속 배출되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공감대가 모아져야 한다. 탄소 배출을 수치적으로 줄이기만 하면 된다는 프레임은 기후변화 가속을 늦출 수 없다. 이는 어떻게 배출됐든 결과만 통제하면 된다는 발상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기후변화 갈등은 사회적 행위와 기술의 전환으로 함께 풀어야 한다. 환경친화적인 방향성을 공유하기 위한 네트워크가 만들어져야 하며 여기엔 사회와 기술의 다양한 행위자가 속해야 한다. 이들이 함께 학습하고 공유할 수 있는 실험 공간을 마련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정부의 정책 활동이 실험을 주저하면 안 된다. 

환경친화적인 변화는 특정 전문가의 지식과 정보의 제공만으로 생겨날 수 없다. 대중이 꼭 기후변화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거나 정보가 없어서 또는 비윤리적이어서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게 아니다. 이 사회에는 과학기술로 안 되는 ‘기후변화들’이 존재함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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