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형 관리 유도하고 동물존엄 인정토록 법 개정 필요

최근 올가을 들어 처음으로 산란계 농장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했다고 방역당국이 밝혔다. 충북 청주시 육계농장과 육용 오리농장, 전북 순창 산란계농장 등 가금 농장 세 곳이다.

지난 10월에는 경북 예천의 종오리농장과 종계농장, 충북 진천 육용오리농장 등에서 AI 확진이 보고됐다. 이번 확진으로 인해 또다시 수십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살처분·매립됐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농장에서 AI가 발생하고 살처분이 이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런데 거의 해마다 반복되는 이 끔찍한 상황에 정부와 국민 대부분은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가축의 살처분은 질병관리나 생태계 관리 등 일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동물의 생명을 박탈해 소각·매립 등으로 처분하는 행위다.

우리나라에서 예방적 살처분은 질병 감염여부와 상관없이 피해 발생 우려가 있는 경우 무조건 없애고 있다. 살처분의 법적 근거는 가축전염병예방법 20조다.

문제는 2000년대 들어 AI와 구제역이 지속적으로 발병하고 상시·토착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잣대로 진행하고 있는 대규모의 획일·일방적 살처분은 해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현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내린 결정에 따라 지자체가 살처분을 집행하는 모순도 있다. 현장을 제대로 알고 명확한 맞춤형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예방적 차원에서 비위생적이고 생명 경시형으로 운영 중인 공장식 축사를 폐지하고 동물들이 건강하게 생장할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과 쾌적한 환경을 확보케 해야 한다.

발병 이후 처리방식도 개선해야 한다. 가축을 일시에 대량 살처분할 때 대부분은 매몰이나 저장방식으로 처리하고 있다. 그런데 매몰은 부지 확보, 겨울철 작업장애 등 어려움이 있고 원형저장조(FRP)를 미리 확보하기도 어렵다.

불량 PE통 사용으로 인한 파손 문제도 있다. 분리해체 및 이동이 가능한 대형소각로 설치와 고온 소각, 레이저 빔 소각 등 방법도 적극 모색해야 한다.

매몰지의 바른 사후관리도 중요하다. 대상 가축 대부분은 비정상적 매몰방식으로 처리되다 보니 3년 매몰 기간 많은 침출수가 발생하면서 인근 지하수 및 하천을 오염시킬 수 있다.

사후관리기간이 종료된 매몰지 중 상당 면적은 토양이 오염돼 정상적 사용이 어렵다. 기간만 지났다고 무조건 사용을 허가할 것이 아니라 전문기관의 평가를 받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인정하고 동물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바탕으로 동물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규범화하려는 노력을 볼 수 있다.

스위스 연방헌법 제120조 제2항에서는 입법 과정에서 인간, 동물 및 환경의 안전뿐만 아니라 ‘생명체의 존엄성’을 고려하고 동물과 식물 종의 유전적 다양성을 보호하도록 책무를 부과하고 있다.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는 공장식 사육과 대규모 살처분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생명 주체로서 동물의 존엄성을 인정해야 한다.

제1종가축전염병 전부가 과연 예방적 살처분을 해야 할 정도로 위험한 것인가 재조사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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