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의 역사라도 역사의 일반성과 그 나라 고유의 특수성이 틀림없이 나타난다. 한국사의 기록과 조명에서도 이 원리는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특히 사실성과 특수성, 지향성을 모두 염두에 두고 역사에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성종실록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이 부모의 초상화를 그릴 때 털오라기 하나라도 닮지 않으면 부모가 아니다’ 이 말이 역사를 기록하는 데도 그대로 적용된다. 역사는 ‘모든 것’을 기록해야만 한다. 어떤 일의 결과만이 역사가 아니다. 과정도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역사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실대로 기록하여 남기는 일은 ‘사실성’을 추구하는 역사의 기본자세로서 저변을 지탱하는 원칙이 되는 것이다. 구형왕(본가야 마지막 임금. 532년 신라에 항복)과 왕비의 초상화를 보면 우리 민족이 추구하던 이상형이 어떤 사람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임금의 모습은 도화색을 띤 인자한 모습이며 왕비의 모습은 정숙함이 은은히 깃들어 있다.
그리고, 이 그림을 보면서 링컨의 모습과 다르고 나폴레옹의 초상화와 다르면서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함에 정감을 느끼게 된다. 즉, 우리 고유의 ‘특수성‘을 알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 그림에는 남과 다른 특수성만 담겨있는 게 아니다. 지도자와 선조의 모습을 아름답고 어질게 그리고자 했던 ‘지향성’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수성과 지향성 또한 역사를 기록하는 데 빼놓아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 사실성


우리의 고려자기는 분명 빼어난 조형미에다 신비로운 색채가 뛰어나서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개태사의 가마솥, 에밀레종(성덕대왕(?-737. 신라 33대임금) 신종. 봉덕사종) 등도 걸출한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다. 이 가마솥은 1천여 명이 먹을 수 있는 초대형 밥솥으로써 규모도 놀랍지만, 천년이 넘도록 금간 흔적도 없고 전혀 녹이 슬지 않았다. 에밀레종은 여러 번의 실패끝에 완성된 원래의 음을 지닌 종이다. 한번 치면 소리의 여운이 3분 동안이나 가는 우리 나라 최대의 아름다운 종이다. 특히, 구리 12만근(72t)을 들여 만든 데다, 쇳물로 하면서도 거품없이 종을 만든 제작기술과 작은 크기에도 이 종을 달고 버티고 있는 고리 쇠막대는 과학의 정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역사는 이러한 사실과 유산을 자랑스러워 한다.
그러나, 제작기법이 전수되지 않아 지금 아무도 그 아름다움을 재현해내지 못하고 있다. 연금술, 제작공정과 조립 등 제작에 쓰여졌던 비결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의 사관(史觀)에 있어 한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바로, 결과만이 아닌 과정도 소중히 기록하고 남겨야 한다는 점이다. 고려의 도공이 평생을 고려자기를 만드는 일에 바친다고 하자. 그는 자신의 기술과 정성을 다해 최고의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애썼을 것이다. 아름다운 비취빛의 고려자기를 만들어 내기까지, 그는 숱한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난관을 넘어서서 드디어 그는 아름다운 자기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그는 훌륭한 예술품을 만들기는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커다란 실수를 범했다. 그러한 결실을 맺기까지의 과정을 남겨 놓지 않음으로써 후손들이 계승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놓지 못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가 남긴 것은 결과 뿐이었다. 그는 아무에게도 고려자기란 결실을 얻기까지 경험했던 과정을 전수하지 않았다. 자신이 겪었던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와 과실의 흔적을 전혀 남겨두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의 후예들은, 그가 기록으로 남겨 놓았더라면 겪지 않아도 될 과정을 다시 밟아야 한다. 그가 원점에서 시작했듯이 그의 후손도 원점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이래서는 역사에 발전이란 없다.
역사는 삶이어서 일단, 그 자체를 모두 남기고 기록해야 한다는 진리가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지난 날, 우리 역사의 많은 부분이 불태워진 적이 있었다. 이는 그냥 애석하다는 정도로 넘어갈 만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역사가 없어진 것을 우리의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같은 아픔으로 느껴야 한다. 특히, 결과로 남아있는 사실은 기록 자체로써 상상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 결과를 낳았던 비결(Know-how)이나 수백 년도 걸리는 과학기술 및 문화 토양을 새롭게 밝혀내야만 하기에 더욱 그렇다.
이제부터는 역사적인 사실과 근거라면 모두 남겨 두어야 한다. 과정과 결과의 역사를 맥사(脈史)로써 모두 남겨 두어야 한다. 아울러, 그러한 노력을 더욱 치밀하게 진행함으로써 이러한 사실과 기록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하고, 역사적 자료로 소중히 수용되도록 하는 한편, 오늘은 물론 미래에까지 소용되도록 안배하고 힘써야 한다. 그러는 중에 노래로 불려지기도 하고, 구수한 이야깃거리로 회자되기도 하고, 그림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소설로 쓰여지기도 하면서 우리 것을 풍요롭게 해나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사실이 모두 기록되어 후대에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숱한 사람과 긴 세월의 손을 거치면서 어떤 것은 남고, 어떤 것은 잊혀진다.


●●● 특수성·지향성


여기에서 특수성과 지향성이 새겨지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이 나온다. 특히, ‘민족성을 살리자’는 대원칙과 신념은 너무나 중요하다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의 역사 중에서 어떤 부분을 주된 역사로 파고들어 조명하고 중히 해야 할까? [삼국사기]에서 민족-특히 지식인층-을 열등감에 빠뜨리고, 한때의 적국 고구려의 고토이자 삶의 터전이라 하여 한대륙의 역사를 외면했던 김부식에 대한 이야기를 중요시할 것인가, 아니면 조국의 흙 한줌을 목숨보다 중히 여겨 독도를 지켜낸 안용복(동래 출신의 뱃군. 1693년부터 96년에 걸쳐 일본 정부와 담판으로 독도 영유권 수호)에 대해 비중을 둘 것인가? 달리 대답이 필요치 않으리라. 하나는 거짓이고 하나는 진실이라서 비교를 거론할 가치조차 없다. 설령, 김부식이 말한 역사의 일부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우리에 이로운 것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활기차고 우리에게 소용되는 시절’이 조명되어야 하는 것 이다.
그렇다고 어둡고 부끄러운 시대라 하여 축소·왜곡하자는 말은 아니다. 이마저도 바로 밝히고, 근거로 삼아야 함은 역사를 대함에 있어 바꿀 수 없는 기본자세이다. 다만, 패전의 역사와 치욕의 날들을 우리의 대표적인 모습인 양 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그저 기록하면 될 뿐이지, 일부러 알리거나 가르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료가 많은 과거라 하여, 굳이 그것만을 들추어 밝힐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후손이 배움의 길에서 필요하다면 그때, 그 사실을 조용히 참고하면 된다.
한·일 관계사를 기록할 때 35년간의 일제 강점기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수백 년에 걸친 백제의 일본통치사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하고, 또 이 시대의 치적이 우리에게 더 익숙해지도록 해야 한다. 백제사에서는 뛰어난 전략과 치세, 효과적인 외교방법 등을 배울 수 있지만, 일제 강점기에서는 그런 면모가 거의 없고, 그저 답답하고 분통이 터지는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실체(기록)들은 높은 가치가 있고, 또 오늘날까지 실용 가능한 실례(實例)다. 그 시대에만 유용한 것이 아니라, 후대에까지 길이 가르침을 주고 선례와 경험으로 전해진다. 우리에게 소용되는 이러한 선례와 경험을 분석해 국제정치의 변모, 공세적인 적(敵)에 대한 효과적인 국가전략 수립, 외교활동 등 소용되는 여러 면에서 재해석하고 응용할 때 기득권과 선점권을 인정받고, 엄청난 외교역량의 기반이자 실력으로써 매우 값지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와 사료의 가치는 연륜과 함께 생명력이 강해지기 마련이다. 사실을 밝히고 참 역사를 찾으려는 열정에 찬 사학자들이 한국사 바로잡기를 시도하여 또 하나의 연륜을 더할 때, 우리 역사는 더욱 발전하고 가치있게 될 것이다.
한겨레의 실체, 한국의 미래와 영광은 이러한 노력에 힘입고서야 건설되리라.

He is... 현경병 님은 1962년 경북 영천에서 출생했고, 성균관대 행정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정책학과를 졸업, 파리정치대학원(ECOLE DES HAUTES ETUDES POLITIQUES) 정치학전문학위를 취득했다. 제29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했으며, 1986년부터 7년간 해양수산부에서 근무했다. ‘국가전략(Vision and Policy)’이 그의 전문분야이며, 「한국인은 위대한 한국을 원한다」(1992년) 등 저서와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주)도움과나눔 초대 CEO를 맡아 사회복지 기부 전문사이트 도움넷(doumnet.net)을 운영해왔으며, 현재 (재)한국지식문화재단 이사장, CGO 회장, (주)환경일보 전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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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power.net (도메인 현경병) 을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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