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율촌 ESG 연구소장 이민호

이민호 ESG 연구소장 / minholee@yulchon.com
이민호 ESG 연구소장 / minholee@yulchon.com

[환경일보] 지난달 블랙록에 이어 세계 2위 규모 자산운용사인 뱅가드가 넷제로 어셋 매니저스 이니셔티브(NZAM, net zero asset managers initiative)를 탈퇴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NZAM은 탄소중립을 지지하는 290여 자산운용사들이 가입한 이니셔티브로 우리나라 미래에셋, 신한자산운용도 가입하고 있으며, 참여사들의 총자산운용액은 무려 66조 달러에 이른다. 뱅가드의 탈퇴 발표가 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일부 ESG 비판자들은 저탄소 기업에 대한 투자의 후퇴, 나아가 ESG의 퇴조를 주장하기도 했다.

작년 러-우 전쟁으로 세계 에너지 수급 위기가 촉발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진입하면서 주요국의 유동성 축소로 인한 경기 침체 등 ESG 확산에 불리한 환경이 조성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당초 ESG 투자와 경영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던 근본적 원인은 제대로 해소된 것이 없다.

필자는 ESG 도래의 핵심 원인을 첫째 기후변화의 심화, 둘째 현대 자본주의 작동 방식의 부작용, 셋째 글로벌 규모의 시민 연대를 가능케 한 인터넷, SNS 등 기술 발전의 복합 기제라고 본다. 이 세 가지 원인이 완화되거나 부작용이 해소된다는 조짐은 발견하기 어렵다. 그런 측면에서 ESG의 퇴조를 거론하는 것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할까 우려스럽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위해서는 초기에 엄청난 에너지와 가속이 필요하듯 지난 2년간 ESG의 도입과 확산에 많은 관심과 에너지가 투입되었다. 이제 막 이륙한 ESG호(號)의 안정적인 운항을 위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모양새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앞으로도 ESG가 견고하게 지속될까? 필자는 그 답을 2050 탄소중립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약에서 찾고 싶다. 대표적 ESG 평가기관인 MSCI도 금년도 전망 보고서의 제목을 ‘2023 ESG와 기후 트렌드’로 선정하고 기업의 기후 관련 의사결정 구조, 재생에너지 확대, 순환 경제, 산림벌채 축소 등 탄소중립과 관련한 내용을 핵심 포인트로 다루고 있다. (물론 가짜 ESG 펀드 규제, 공급망 혁신 등 여타의 내용도 포함된다.) 뉴스에 부각되지 않았지만 작년 11월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개최된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는 지구온도 상승 제한 목표를 1.5℃로 둔다는 과거 당사국 총회의 결의를 재추인하는 과정이 있었다.

당연한 사안을 왜 반복했나 싶지만 여러 개도국들이 이 목표 수치를 삭제하고자 목소리를 높였던 점을 감안하면 아주 단순한 스토리는 아니다. 현재 보편화된 각국의 넷제로 공약은 원래 1.5℃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결정된 것이다. 따라서 이 온도 목표가 완화되었다면 ‘항해의 북극성’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목표점이 재확인됨으로써 세계는 다시 한번 흔들림 없이 탄소중립의 항해를 하게 되었다.

그간 각국의 공약과는 별도로 개별 기업, 금융기관, 지자체, 대학 등 다양한 주체가 넷제로를 선언하였다. 유엔이 집계한 그 수는 1만1300여 개에 이르며,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 세력이 강하고 단단해질수록 탄소중립은 더 빨리 실현될 것이다. 뱅가드가 투자 운용의 유연성을 언급하며 넷제로 대열에서 이탈했을 때 세계 1위인 블랙록은 굳건한 잔류의지를 보여주었다.

ESG는 이 주체들, 특히 기업과 금융기관이 스스로 약속한 넷제로를 달성하는 핵심 전략이자 경로이다. 정부 차원의 규제와 장려, 그리고 기업과 금융기관의 자발적 의지가 존속하고 있으므로 ESG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가 지난 연말 관계부처 합동으로 ‘ESG 인프라 고도화 방안’을 발표한 것이나 EU의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CSRD) 확정, 그리고 금년 상반기로 예상되는 미국의 상장기업에 대한 기후공시 의무화 등은 2023년 ESG를 견인하는 또 하나의 시그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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