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떠넘기는 정부, 에너지 안보 대책 세워야

[환경일보] 최근 난방비 고지서를 받고 깜짝 놀랐다. 한 달 새 3배 가까이 뛴 요금에 고지서가 잘못됐나 전화까지 걸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역대급 한파와 도시가스 요금 인상이 만나 ‘난방비 폭탄’을 터뜨렸다.

정부는 민생 안정을 위해 추가 인상 시기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9조원에 달하는 한국가스공사 미수금과 국제 에너지 동향 등을 고려하면 2분기에 추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만약 정부가 2분기에도 요금을 인상하면 한여름 ‘냉방비 폭탄’까지 터질 수 있다.

연료비 부담이 늘면 서민들의 어려움이 특히 가중된다. 통상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는 1분기에 전체 처분가능소득(가처분소득)에서 생계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지는 특징을 보인다. 소득은 다른 분기보다 감소하는데, 난방비 등 필수 지출은 오히려 늘기 때문이다.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더욱 팍팍해지는데, 여야는 대책을 세우긴커녕 ‘네 탓 공방’만 벌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민생에 무능하다며 정권 책임론을 부각하는 반면, 국민의힘은 전 정부에서 가스요금 인상을 억누르고 탈원전 정책을 펼친 탓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난방에 사용되는 연료는 액화천연가스(LNG)로 거의 전량 수입한다. 문제는 국제 정세와 에너지 시장 정황을 고려할 때 향후 5년까지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러-우 전쟁이 끝나더라도 국제 LNG 가격 상승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같은 글로벌 수요 증가가 국제 유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수년 전부터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고 에너지 위기가 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 어떤 정부도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 이유는 지금 정치권의 행태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민생과 직결된 난방비 문제까지 정략의 대상으로 삼는 모습에 많은 국민이 실망감을 토로하고 있다.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내놓는 ‘땜질식 처방’도 멈춰야 한다. 정부는 겨울철 한시적으로 에너지바우처 지원을 늘리고 할인 폭을 확대하겠다는 정책을 내놨다. 그러나 가스요금 인상으로 인한 민생 부담은 단발성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가스공사의 미수금을 정리할 때까지 인상 가능성은 남아있다.

여기에 난방비 외에도 각종 공공요금 인상이 줄을 잇고 있다. 1kWh당 13.1원 오른 전기료를 시작으로 서울의 중형택시 기본요금이 2월1일부터 4800원으로 오르는 등 서민경제가 한층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정치권은 서로 탓하는 데 힘을 쏟을 게 아니라, 민생을 고려한 중장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정치적 이념에서 벗어나 전문성을 반영하면 된다. 대통령실은 난방비 폭등 사태의 근본 대책으로 원자력 비중 확대를 제시했다. 정부가 얼마나 국제 흐름과 에너지 시장에 무지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탄소중립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이 과정에서 원전은 좌초자산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난방비 폭탄을 빌미로 원전을 더 짓겠다는 건 눈덩이처럼 불어난 좌초자산을 국민의 품에 떠넘기겠다는 소리다. 난방비 폭탄 고지서와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과 미국, 일본 등 강대국이 에너지 안보 정책을 강화하는 가운데 정부는 더 이상 원전과 같은 논란으로 혹세무민하지 말고, 에너지 위기를 사전에 분산·예방할 근본적인 해결책을 세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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