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여자대학교 청정융합에너지공학과 김서현

성신여자대학교 청정융합에너지공학과 김서현
성신여대 청정융합에너지공학과 김서현

[환경일보] 2019년, EU는 일회용 플라스틱이 해양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한 Single Use Plastics Directive(이하 SUP 지침)를 발표했다. SUP 지침에서는 일회용 플라스틱을 품목 별로 구분해 해양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 후 품목별 관리 전략을 제시한다. 지침에 따르면 해양 환경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품목은 ‘음료 용기 및 뚜껑’인데,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은 다음과 같다.

2024년 7월부터 용량이 3L 이하인 모든 페트병 제품에 대해 뚜껑이 개봉된 후에도 제품의 몸통에 부착돼 있도록 하는 포장재를 의무화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병뚜껑을 페트병 몸통에 묶어서 해양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겠다는 것인데, 이러한 지침에 대해 대중은 의문을 품는다. 작은 음료수 뚜껑이 해양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면 얼마나 클 것이며, 단순히 뚜껑을 용기에 붙이는 것이 환경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말이다.

SUP 지침에 의하면, 대부분의 플라스틱 해양쓰레기는 육상으로부터 기인한다. 즉, 육상에서 발생한 플라스틱 쓰레기는 하수구 통로 등을 통해 해안가로 흘러 들어가는데, 이것이 해양쓰레기의 대부분을 이루는 것이다. EU는 해양에 존재하는 수많은 육상 기인 플라스틱 폐기물 중 특히 음료의 ‘뚜껑’에 집중했는데,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플라스틱 뚜껑은 부피가 작고 유실되기 쉬운 구조로 설계돼 이동성 폐기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침에서는 음료 용기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뚜껑이 실제로 해변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일회용 플라스틱 항목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뚜껑의 재질인 PP·PE는 부유성이 있어 바닷가에 떠 있게 되면 해안가에 서식하는 조류 및 해양생물들이 병뚜껑을 먹이로 오인하기 쉽기 때문에 직접적인 생태계 위해를 발생시킨다.

뚜껑 일체형 페트병 © Christoph Vetterli
뚜껑 일체형 페트병 © Christoph Vetterli

우리나라 또한 해양쓰레기 중 대부분이 육상에서부터 비롯되며, 음료수 병과 뚜껑이 해안가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쓰레기라는 점을 보면 유럽의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EU와 우리나라의 해양쓰레기 대응 전략은 완전히 반대의 성격을 띤다. EU는 육상으로부터 해안가로 흘러오는 쓰레기의 예방에 초점을 맞추며, 플라스틱의 근본적 발생 원인 기업에 그 책임을 부과한다. 반면 국내의 환경 정책은 바다에 이미 유입된 폐기물을 수거하는 방향에 치중해 육상에서 유입되는 플라스틱 폐기물에 대한 예방에는 미흡하고, 뚜껑 폐기물에 대한 관리 정책이 검토된 사례가 아직 단 한 건도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사실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기보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을 치워 내기에만 급급한 국내 환경 정책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다.

플라스틱 뚜껑은 국내의 기존 음료 제조기업에도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기업에 있어 환경 문제는 더 이상 단순히 도덕적 책임감에 의한 사회공헌 차원의 것이 아니다. 즉, 시장의 관점에서 환경 문제를 바라봐야 하는 시대가 도달했으며, 이는 ESG경영이라는 개념으로 알려져 기업이 환경 경영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경영적인 측면에서 설명한다. 그러나 국내의 음료 및 주류 제조기업은 제품 용기의 친환경적 변화에 대해 지나치게 신중한 태도를 취해 왔다.

사실, 이미 시장점유율이 높은 음료 기업의 입장에서 제품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소비자에게 익숙한 ‘변함없는 맛’이기 때문에 제품 용기의 친환경성에 큰 관심이 없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음료 제품의 맛을 향상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기업의 현명한 ‘윤리적 가치’ 제시가 소비자의 제품 충성도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기업 또한 EU 환경규제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그 내용에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EU의 환경규제는 기업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타당하면서 환경문제의 본질적인 예방에 초점을 둬 대응전략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새 사체에서 나온 플라스틱 /사진출처=그린피스
새 사체에서 나온 플라스틱 /사진출처=그린피스

병뚜껑을 음료 몸통에 묶는다는 아이디어는 사소하지만 강력하다. 작은 변화로 환경문제를 근본적으로 예방하면서도 정부, 기업, 개인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환경문제에 대한 대응책은 더 이상 ‘애써서 하는 일’로 받아들여져선 안 된다. 윤리적 행동에 불편함이 따르면 시간이 흐를수록 그만둘 변명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빠른 속도로 환경이 파괴되는 현 상황에서 사회구성원의 의식적인 노력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 환경 개선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녹색 미래로 향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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