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사이클 공예로 탄소중립 실천··· “무력감·불안감 잊고 작은 실천 계속 이어 나가길”

왕영실 산책공방 대표는 업사이클 공예를 통해 탄소중립을 실천하고 있다. /사진=이채빈 기자
왕영실 산책공방 대표는 업사이클 공예를 통해 탄소중립을 실천하고 있다. /사진=이채빈 기자

[환경일보] 이채빈 기자 = 우리나라에서 한 해 버려지는 쓰레기는 2억톤 가까이 된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연간 쓰레기 배출량은 약 1억9740만톤으로, 15톤 덤프트럭 1316만대를 가득 채우는 양이다. 쓰레기를 줄이는 게 우선이지만, 재활용도 중요하다. 버려지는 물건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는 ‘업사이클’(Upcycle)이 주목받고 있다. 

경기도 김포시에 자리한 자그마한 공방. 왕영실 대표는 쓰레기를 줄이고 탄소중립을 실천하고자 버려지는 것들로 작품을 만든다. 바다에서 주워온 유리와 조개껍데기, 커피박(커피찌꺼기), 양말목 등 생활 쓰레기가 그의 작업실에서는 더없이 훌륭한 공예 재료가 된다. 말간 얼굴에 미소가 매력적인 왕영실 대표를 최근 산책공방에서 만났다. 공방 곳곳에서 그의 솜씨와 자원순환의 가치를 엿볼 수 있었다.

커피찌꺼기가 커피클레이 공예가 되고
바다쓰레기 바다유리가 작품이 되는 공간
산  책  공  방

어떻게 공방을 시작했나요?

캔들(왼쪽)과 마크라메 공예 /사진=이채빈 기자
캔들(왼쪽)과 마크라메 공예 /사진=이채빈 기자

대한항공 승무원 출신인 저는 결혼 후 육아로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다 우연히 캔들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일상의 반복 속에서 우연히 만난 캔들을 통해 촛불이 주는 편안함과 향기가 주는 힐링을 선물 받았습니다.

저와 같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제가 느낀 힐링을 전달해 주고 싶어 본격적으로 캔들을 배우기 시작했고, 주위 친구들에게 나누게 된 게 산책공방의 시작입니다. 캔들을 시작으로 다른 도구 없이 매듭짓는 마크라메 공예도 다루고 있습니다.

업사이클 공예에 관심을 둔 배경은 무엇인가요?

커피찌꺼기로 만든 탈취제와 화분 /사진=이채빈 기자
커피찌꺼기로 만든 탈취제와 화분 /사진=이채빈 기자

활동 범위가 넓어지면서 중학교에서 공예 강사로 수업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수업 초반에는 작품의 디자인과 퀄리티를 많이 고려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수업이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겠다’라는 의문이 생겼어요.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와 쓰레기 문제로 아이들의 환경에 관한 관심도 무척 크더라고요.

보다 의미 있는 것들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이때 업사이클 공예를 알게 됐고, 커피찌꺼기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커피찌꺼기를 일반 종량제 봉투에 버리면 소각되는데, 커피찌꺼기 1톤을 소각할 때 338kg의 탄소가 발생합니다. 자동차 1만1000대가 내뿜는 매연의 양과 비슷하죠.

커피찌꺼기를 활용한 수업이 인기가 많은데, 커피박 화분과 커피클레이 등 다양한 공예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산책공방은 커피찌꺼기를 재활용한 커피클레이 공예를 중심으로, 해양쓰레기인 바다 유리를 사용한 공예, 양말목 공예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산책공방만의 차별화된 점은 무엇인가요?

한복 모양의 커피클레이 공예 /사진=산책공방
한복 모양의 커피클레이 공예 /사진=산책공방

업사이클을 통해 쓸모없는 것을 쓸모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디자인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커피찌꺼기를 사용한 커피클레이 공예를 예로 들면, 만드는 대상에 따라 디자인을 다르게 구성합니다.

아이들은 취미나 메시지, 어르신 대상으로 수업을 준비할 때는 한복 모양의 커피클레이를 만들어 조리개를 달아 한국의 미를 표현했습니다. 양말목을 재료로 안마봉을 만들 때도 예쁘고 튼튼하게 만들 수 있도록 수업 준비를 합니다.

커피클레이 수업을 하고 있는 왕영실 대표 
커피클레이 수업을 하고 있는 왕영실 대표 

비치코밍 활동을 통해 공예 재료도 직접 구해옵니다. 비치코밍은 ‘해변(beach)’과 ‘빗질(combing)’의 합성어로 조개껍데기, 유리 조각 따위의 표류물이나 쓰레기를 주워 모으는 행동을 말합니다.

아이들과 바닷가를 찾아 비치코밍 활동을 하며 쓰레기도 치우고 공예 재료도 주워오는 과정이 참 즐겁고 의미 있는 거 같아요. 함께 주워온 바다 유리와 조개껍데기 등을 재료로 모빌과 메모꽂이, 액자 등을 만들 때면 무척 뿌듯합니다.

공방을 운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비치코밍 활동으로 주워온 유리 공예 재료. 환경보호와 자원순환의 가치를 함께 실현할 수 있다. /사진=이채빈 기자
비치코밍 활동으로 주워온 유리 공예 재료. 환경보호와 자원순환의 가치를 함께 실현할 수 있다. /사진=이채빈 기자

요즘 ‘기후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지구가 점점 더워지고 있다는 사실에, 생태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다는 사실에 우울감에 빠져드는 거죠. 미국 심리학협회 연구결과에 따르면 16~25세 사이 1만명 청년 중 84%가 기후변화에 대해 걱정하고 있으며, 특히 60%는 극도로 걱정하고 있다고 해요.  

문제는 기후 불안과 우울을 겪으면서 텀블러를 갖고 다니고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다가도, 옆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버리는 모습을 보면 그 우울감이 더욱 심해진다고 합니다. 

비치코밍은 ‘해변(beach)’과 ‘빗질(combing)’의 합성어로 조개껍데기, 유리 조각 따위의 표류물이나 쓰레기를 주워 모으는 행동을 말한다. /사진제공=산책공방
비치코밍은 ‘해변(beach)’과 ‘빗질(combing)’의 합성어로 조개껍데기, 유리 조각 따위의 표류물이나 쓰레기를 주워 모으는 행동을 말한다. /사진제공=산책공방

하지만 무력감과 불안감을 잠시 잊고, 작은 실천을 계속 이어 나가라고 응원하고 싶어요. 비치코밍 활동을 할 때 저와 아이들이 해변을 보며 쓰레기를 주우니, 주변에 계신 분들도 하나둘씩 함께 쓰레기를 줍기 시작하더라고요.

환경보호를 위한 작은 행동이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한 거 같아요. 오늘 지구를 위한 나의 실천과 행동이 비록 작더라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 변화가 모이면 커질 거라고 말이죠.

커피찌꺼기로 만든 화분과 메모꽂이(위)와 바다유리 공예(아래) /사진=이채빈 기자
커피찌꺼기로 만든 화분과 메모꽂이(위)와 바다유리 공예(아래) /사진=이채빈 기자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산책공방은 현재 업사이클 전문 공방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학교, 기관에서 업사이클 공예 수업 요청이 많이 들어오고, 외부출강도 많아졌어요. 지역이 멀어 제가 갈 수 없는 곳에는 업사이클 키트를 보내드립니다.

업사이클 키트는 현장에서 수업하고 피드백 받은 내용을 반영해 제작하므로, 자부심도 있습니다. 앞으로 다양한 공예 키트를 만들고, 자원순환의 가치를 나누고자 노력하겠습니다. 산책공방은 공예를 통해 탄소중립을 실천하고, 쓸모있는 가치를 함께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공방 곳곳에는 왕영실 대표의 솜씨와 자원순환의 가치를 엿볼 수 있었다. 사진은 커피찌꺼기로 만든 연필꽂이와 연필, 양말목으로 만든 방석 /사진=이채빈 기자
공방 곳곳에는 왕영실 대표의 솜씨와 자원순환의 가치를 엿볼 수 있었다. 사진은 커피찌꺼기로 만든 연필꽂이와 연필, 양말목으로 만든 방석 /사진=이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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