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i Seoul 정준영

ReFi Seoul 정준영
ReFi Seoul 정준영

[환경일보] 블록체인 기술이 기후위기 극복에 기여할 수 있을까.

블록체인과 기후의 관계에서 지금까지 주로 이야기되어 온 것은 사실 비트코인 채굴의 전력소모 문제이다. 케임브리지대는 지난해 비트코인 채굴 사용 전력이 108TWh(테라와트시) 수준이라고 추정하는데, 이는 소규모 국가에 버금가는 전력 사용량이다. 하지만 채굴자들은 유휴 전력이 발생하거나 전력 비용이 저렴한 장소로 계속해서 이동해 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더리움이 지난해 연산 경쟁을 통해 채굴이 이루어지는 작업증명 방식에서 보유한 지분에 따라 검증인을 선정하는 지분증명 방식으로 전환하여 전력 소모를 99% 줄였듯, 에너지 친화적인 검증방식의 체인들이 보다 늘어나고 있음은 다행인 일이다.

전력 소모 이슈 외에도 블록체인 기술 자체가 제공하는 특징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블록체인은 인센티브 구조의 재설계를 가능하게 한다. 분산된 합의 방식을 통한 거래내역의 입증은 특정 기관의 디지털 경제에서의 소유권을 보장할 수 있게 하며 이를 통해 발행된 토큰들은 인센티브 제공에 사용될 수 있다. 또한 블록체인은 정보의 투명성과 불변성 보장에 기여할 수 있다. 블록체인 정보의 불변성은 다수의 분산된 검증인들이 보장하므로 쉽게 변경하거나 삭제할 수 없고, 탄소의 배출 내역 등의 정보를 기록하고 추적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이에 더해 블록체인은 조직 운영과 거버넌스에 기여할 수 있다. 기후위기 대응을 포함해 같은 가치와 목적을 공유하는 구성원들이 블록체인을 매개로 자유롭게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탈중앙화 자율조직(DAO)이 그 사례이다.

잠재력 가진 블록체인 기술, 가능성 넘어 실질적인 현실 적용 고민해야

현재 기후 분야에 있어서는 특히 블록체인을 탄소배출권, 특히 자발적 탄소시장(voluntarily carbon market)과 연계하려는 시도들이 활발하다. 자발적 탄소시장에서는 탄소 크레딧 발행을 위한 확인과 검증을 민간 발행기관들이 수행하며 대표적으로 Verra, Gold Standard 등의 업체들이 있다. 그러나 현행 시스템의 개선점도 존재한다. 탄소 크레딧 거래의 유동성, 소규모 프로젝트들은 탄소 크레딧 발행에 대한 접근성이 어려운 점, 데이터의 신뢰성과 표준화에 대한 문제, 2차거래의 경우 탄소저감의 추가성(additionality)에 기여가 불명확한 점 등이 문제로 꼽힌다.

이에 따라 상당수의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블록체인의 탄소배출권에의 접목으로 탄소시장을 개선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투칸 프로토콜(Toucan Protocol)은 탄소 크레딧 보유자들로부터 크레딧을 수령하여 해당 크레딧을 만료(retire)시키고 이에 대응하는 NFT(대체 불가능 토큰)를 블록체인 네트워크상에서 발행할 수 있게 한다. NFT들은 블록체인 생태계 내에서 디파이 서비스 등 여러 수요처에 사용될 수 있다. 즉 투칸은 탄소 크레딧에 대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결과적으로 자발적 탄소시장 자체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목표로 한다. 이외에도 클리마 다오(Klima DAO), 노리(Nori) 등의 프로젝트들도 탄소 크레딧의 블록체인 토큰화를 추구하는 사례이다. 오픈 포레스트 프로토콜(Open Forest Protocol)과 같이 탄소 크레딧 데이터를 토큰화하고 검증 과정에 여러 검증인들을 참여시켜 데이터 신뢰성을 높이려는 시도도 있다.

그러나 현실에의 실질적 적용은 장밋빛만은 아니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탄소 온체인 시장은 일종의 레몬시장(lemon market)이 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한다. 기후 데이터 기관인 카본플랜(Carbonplan)은 투칸을 통해 토큰화 탄소 크레딧의 상당수는 수요가 없는 이른바 ‘좀비 프로젝트’라고 지적한다. 결국 지난해 5월 최대 탄소 크레딧 인증기관인 Verra가 투칸을 통한 탄소 크레딧을 잠정적으로 비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블록체인 적용이 반드시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 없이 블록체인을 도입하거나, 환경 문제의 해결 과제를 탄소 배출량만으로 환원하는 터널시야(tunnel sight) 역시 흔히 빠지기 쉬운 오류들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새로운 기술을 현실 문제에 적용할 때의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보여준다. 특정인에 의존하지 않는 신뢰의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블록체인은 전에 없던 혁신을 이루었다. 그리고 많은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문제 개선을 위해 지금도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잠재력이 기후위기 극복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기 위해서는, 기술이 가진 고유한 특성을 이해하면서도 적용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어떤 경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할지에 대한 총체적인 고민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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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i Seoul은 블록체인으로 재생가능한 경제시스템을 만드는 ReFi운동을 한국에 알리는 단체다. 블록체인과 ESG를 필두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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