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케이블카, 개발의 빗장을 열다

[환경일보] 지난 정부에서 여러 이유로 불허됐던 개발사업에 대해 줄줄이 허가를 내주면서 환경부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4대강 사업 시절에나 나오던 환경부장관 사퇴 주장까지 나온 상황이다.

최근 환경부는 ‘조건부 협의’ 결정으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허가했다. 국립공원 개발의 신호탄이 터졌고, 전국의 지자체들은 앞다퉈 상품 개발에 나설 것이다. 

당장 지리산만 해도 함양군, 산청군 등 인접한 지자체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 모두 관광산업 활성화를 명분으로 케이블카를 다시 추진할 태세다. 서울과 경기도에 걸쳐 있는 북한산은 케이블카만 설치하면 노다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박그림 공동대표는 “자연을 이렇게 함부로 하는 정권은 없었다. 설악산 케이블카를 승인하는 것은 개발의 빗장을 여는 것과 같다. 지리산, 속리산, 무등산 등 줄줄이 이어지는 케이블카의 광란을 누가 막을 수 있나?”고 질타했다.

국토의 4%에 불과한 보호구역마저 개발사업에서 지키지 못한다면 10년, 20년 후 대한민국에 자연이 남아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정권이 바뀌자마자 설악산 케이블카, 흑산도 공항, 제주 제2공항 사업 등 굵직굵직한 사업들이 연달아 허가가 난 것이다. 10년이 넘게 허가가 나지 않은 사업이 1년도 안 되는 시간에 속전속결로 통과된 것이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만 해도 환경부 산하 전문기관 5곳 모두 부정적 의견을 냈음에도 환경부는 허가를 내줬다. 정부가 바뀐다고 해서 설악산이 옮겨가는 것도 아니고, 주변을 둘러싼 환경이 변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사람이 바뀌었을 뿐이다.

설악산은 국립공원, 천연보호구역, 백두대간보호지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다. 국내외 제도 5겹으로 꼼꼼하게 보호받고 있다.

환경부도 자연생태계의 질을 보전, 관리하는 것이 우선돼야 할 지역이라고 밝히며 2019년 설악산오색케이블카 사업 ‘부동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2023년에는 전문검토기관의 의견을 반영하겠다고만 반복적으로 입장을 밝힌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KEI를 비롯한 5개 기관의 명백한 부정적 의견에도 ‘조건부 협의’라는 결정을 내렸다.

또한 지난 1월31일에는 흑산공항 사업부지만을 국립공원에서 해제시키는 초유의 결정이 내려졌다. 국립공원이 위치한 지자체 곳곳에서 ‘설악산도 흑산도도 되는데 왜 우리는 안 되냐?’는 원성이 일고 있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결정은 국립공원 파괴의 신호탄이 되고 있다.

지리산 케이블카는 기우가 아니다. 지리산 케이블카 역시 세 번의 신청이 모두 반려 당한 바 있다. 그런데 설악산 사례가 생겼으니 ‘국립공원이라 허가를 내줄 수 없다’는 핑계가 통하지 않게 됐다.

환경부는 그들 스스로 ‘정부 내부의 브레이크’라고 말해왔다. 개발이 미덕인 사회에서, 개발이 성과인 부처들에 맞서 환경을 보전하는 것이 그들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책사업이나 대통령 공약 앞에서 환경부는 항상 ‘○○부 이중대’ 소리를 들어야 했다. 환경부의 강력한 의지를 통해 다른 부처가 ‘환경부 이중대’ 소리를 듣게 만들 수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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