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한국 동물원, 가두는 낡은 구조 탈피해야

[환경일보] 얼룩말 세로가 최근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탈출해 도심 한복판을 활주했다. 세로는 동물원 인근 광진구 구의동 일대 도로와 주택가를 활보했고, 첫 외출 3시간30분 만에 마취총을 맞고 동물원으로 돌아갔다.

푸른 초원을 달려야 하는 얼룩말이 어쩌다 서울 시내 차도를 달리며 골목길을 헤매게 됐을까. 새끼 얼룩말의 탈출 뒤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다. 세 살인 세로는 태어난 지 2년 만에 부모님을 차례로 잃고 방황기를 겪었다.

얼룩말이나 초식 동물들은 무리 생활을 한다. 하지만 세로는 부모의 죽음으로 홀로 지내면서 급격히 외로움을 타기 시작했다. 옆집 캥거루와도 싸움이 잦았고, 밥도 잘 먹지 않았다고 한다.

문제는 50년이나 된 동물원에서 얼룩말이 부술 정도의 울타리를 방치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세로의 이상 행동과 탈출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며 동물원의 시설관리 문제를 꼬집었다. 대공원 측은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니터링 강화, 울타리 보강, 암컷 얼룩말 입양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단편적인 대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전문가들은 대공원 측이 내놓은 대안 자체가 동물권을 고려하지 않은 방안이라고 지적한다. 우선 얼룩말의 사회적 구성은 암수 한 쌍으로 이뤄지지 않을뿐더러, 암컷을 데려오는 일이 실패했을 때는 사이가 좋지 않은 얼룩말 두 마리만 남겨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특히 세로가 탈출 전 캥거루와 마찰을 빚고 울타리를 부수는 등의 과정을 두고 ‘싸웠다’, ‘삐졌다’라고 얘기하는 건 잘못된 의인화의 전형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동물이 무서워서 일상적인 행동을 못 하는 상황을 두고 ‘삐졌다’라는 표현을 하면 주체인 동물을 탓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동물이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을 보고 귀여워하는 건 세로의 입장에서는 소름이 끼치고 억울한 일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얼룩말 세로를 패러디한 각종 사진과 영상이 돌고 있다. 도심을 내달리는 세로를 형상화한 폭주족 등 세로의 탈출을 그저 재미로 소비하고 있다.

동물원은 동물권 개념이 없던 시대의 잔재다. 과거보다 동물권 인식이 높아진 지금, 국내외에선 IT 기술을 접목한 동물원이 생기고 있다.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 물고기 없는 아쿠아리움이 2017년 문을 열었고, 애틀랜타에는 사파리를 스크린으로 재현한 일루미나리움 익스페리언스가 있다.

드넓은 초원을 달려야 할 어린 얼룩말은 마취총 하나에 다시 좁은 동물원에 갇히게 됐다. 동물을 본래 습성에 맞지 않는 공간에 가두는 건 엄연히 학대이다. 세로의 탈출 소동이 동물을 구경거리로 소비하기 위해 가두는 동물원의 낡은 구조 자체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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