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에 12만장, 대선에도 10만장의 현수막 사용

[환경일보] 최근 제주도 전역에는 "제주 4.3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해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우리공화당과 자유당 등 정당과 보수단체가 80개의 현수막을 제주 곳곳에 게시한 것이다.

정부가 발간한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도 “남로당 중앙당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다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 현행 법령으로는 막을 방법이 없다. 개정된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한 현수막은 제한 없이 게시할 수 있다. 정당이 내건 현수막이라는 이유로 내용이 엉터리여도, 사자의 명예를 훼손해도, 경관을 훼손해도 막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설치 장소나 수량에도 제한이 없어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이면 아무 곳에서 마구잡이로 설치해 눈을 어지럽힌다. 시야를 가리고 강풍에 찢어져 사고 위험도 있다.

또한 춘천에서는 불법 현수막을 떼던 공무원이 고소를 당하는 일도 있었다. 2021년 8월 춘천시 불법 현수막 제거반은 신고 없이 게시된 불법 현수막을 제거했다.

그런데 현수막을 내건 주인이 해당 공무원을 재물손괴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이 약식기소했고 법원은 혐의를 인정해 벌금 5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했음에도 검찰이 불법을 저질렀다며 고발하고 법원은 벌금형을 선고한 것이다.

이에 공무원들은 정식재판을 청구했지만, 공무원은 복무규정에 따르면 검사가 기소만 해도 징계위원회에 회부된다. 현장의 공무원들이 법률을 따져가며 현수막을 제거했음에도 검찰이 기소했다는 이유만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국회가 있는 여의도 주변에는 항시적으로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특히 선거기간에는 온 나라가 현수막으로 몸살을 앓는다.

폐현수막 발생량은 2021년 기준 서울시에서만 34만장에 달하고 지방선거가 있던 2022년 사용된 현수막은 12만8천장에 달한다. 또한 19대 대선에서는 5만장이 사용됐지만 20대 대선에서는 10만장이 넘게 사용되는 등 줄기는커녕 2배 증가했다. 게다가 앞으로는 수량의 제한이 없다보니 연간 100만장의 현수막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내걸린 현수막은 선거기간이 끝나면 쓸모가 없어져 쓰레기가 된다. 현수막을 내걸었던 정당이 수거해야 하지만,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결국 지자체가 수거에 나선다.

재활용도 여의치 않다. 에코백, 마대자루 등으로 재활용되기도 하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사회적기업 등에 재활용을 맡긴다지만 업체 입장에서는 수지가 맞지 않고, 재활용 방법도 한계가 있고 다시 사용할 수도 없다. 친환경 소재로 만드는 방안도 있지만 제작비가 너무 비싸 엄두를 못 낸다.

남은 폐현수막은 매립이나 소각을 해야 하는데, 대부분 합성섬유 소재여서 환경오염을 유발한다.

일본을 보며 아날로그에 갇혔다며 손가락질할 때가 아니다. 홍보 효과도 거의 없는 현수막을 연간 수십만장씩 내걸리고 버려지는 우리 역시 구닥다리 아날로그 폐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민에게는 일회용 빨대 하나, 컵 하나 사용하는 걸 막으면서 정작 정치권은 쓸모도 없는 현수막을 수십만장씩 찍어내고 있다.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