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 마리 넘는 토끼가 호주 생태계 초토화

[환경일보] 18세기 호주에 이민을 온 이들은 태즈매니아에 살았는데, 많은 이들이 식량을 목적으로 토끼를 들여왔다.

그나마 태즈매니아 섬은 추운 겨울에 먹잇감이 부족하고 천적인 늑대도 있어 개체 수가 일정하게 유지됐다. 섬에서 탈출해 호주로 간 토끼들도 있었지만, 식용 토끼였기 때문에 매우 약했고 개체 수가 갑작스럽게 불어나는 일도 없었다. 

문제는 1859년 영국인 토마스 오스틴이 본토에서 유럽 토끼라 불리는 사냥용 토끼 24마리를 호주로 반입하면서부터다.

이 가운데 몇 마리가 야생으로 도망갔고 태즈매니아 섬에서 도망친 토끼와 교미에 성공하면서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이 토끼들은 1년에 4회 이상 새끼를 낳을 수 있으며 태어난 지 6개월이면 모두 자라 번식이 가능했다. 1번에 2~5마리의 새끼를 낳고, 굴을 팔 흙과 풀만 있으면 생존이 가능한, 그야말로 생존에 최적화된 슈퍼토끼였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토끼들은 엄청난 양의 풀을 먹어치웠고, 토끼들이 지나간 초원은 토지가 말라버릴 정도였다. 경이로운 속도로 퍼지는 토끼를 놓고 토끼 역병(Rabbit plague)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토끼들은 인간들의 거주지까지 침입해 농산물까지 먹어치웠고 심지어 땅을 파고 나무뿌리까지 먹어 대지를 초토화했다.

식물만 피해를 본 것이 아니다. 토끼들이 풀을 다 뜯어 먹어버리자, 다른 초식동물들은 굶어야 했고, 결국 개체 수가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초식동물이 줄자, 이들을 먹이로 삼는 육식동물들도 연쇄적으로 줄었고 호주 생태계가 파괴되는 결과를 낳았다.

심각성을 느낀 호주 정부가 현상금까지 걸고 토끼사냥에 나섰지만, 토끼를 잡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토끼가 새끼를 낳았기 때문에 토끼 증가는 멈추지 않았다.

현재 호주에는 2억 마리의 야생토끼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호주 대륙의 넓이는 우리나라의 77배에 해당한다. 이렇게 넓은 땅에 퍼진 엄청난 수의 토끼를 박멸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잡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호주는 철조망을 세워 토끼 격리에 나섰는데(Rabbit proof fence), 정부가 직접 나서 2000㎞가 초장거리 펜스를 설치했지만 이미 토끼들은 장벽 너머로 빠져나간 후였다.

펜스가 실패하자 토끼에게만 퍼지는 바이러스를 만들어 퍼뜨렸는데, 토끼들이 면역력을 가지면서 또 실패했고, 토끼 출혈성 질병을 옮기는 파리 투입 역시 토끼가 저항력을 갖게 되면서 또 실패했다.

이런저런 방법을 써봤지만 모두 실패한 호주는 오늘날에도 토끼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결국 바이러스 외에는 답이 없다고 판단, 더욱 강력한 토끼용 바이러스를 개발 중이라고 한다.

호주 생태계를 망가뜨린 토끼 역병은, 참새 잡기 운동 결과 메뚜기의 대량 번식으로 이어져 중국 대륙의 식량위기를 불러와 수천만의 아사자를 발생시킨 참극과 함께 생태계에 함부로 간섭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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