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도덕적 해이··· 안전관리 시스템 혁신 필요

[환경일보] 철근이 빠진 이른바 ‘순살’ 아파트가 무더기로 확인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하주차장에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LH 아파트 91곳을 전수 조사한 결과, 15개 단지에서 필수 철근이 빠져있었다고 발표했다.

앞서 지난 4월 LH가 시행을 맡고 GS건설이 시공한 인천 검단신도시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무너졌다. 붕괴한 지하주차장 상부는 어린이 놀이터가 조성되고 있었다. 만약 입주 후에 무너졌다면 끔찍한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붕괴 원인은 철근 빼먹기와 콘크리트 물타기로 밝혀졌다. 사고 주차장은 보 없이 기둥으로 천장을 떠받치는 ‘무량판 구조’다. 기둥과 상부를 연결해주는 철근부품(전단보강근)이 32개 기둥 가운데 절반이 누락됐다. 124억원에 감리를 맡은 업체는 설계 도면을 확인·승인하는 과정에서 이런 중요한 사실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알고서도 눈을 감은 건지 놓친 건지 모를 일이지만, 더욱 기가 막힌 건 시공 과정에서 철근이 추가로 빠졌다. 발주처인 LH가 설계서에서 넣으라고 한 철근마저 반 정도 빼놨는데, 시공사인 GS건설이 공사 과정에서 또 반을 빼먹었다.

콘크리트 강도도 설계 기준보다 30% 낮은 데다, 지하주차장 상부에 조경을 위한 흙을 설계보다 두 배 높게 쌓았다. 사고 주차장은 부실에 부실이 거듭되며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 LH와 GS건설이 책임을 떠넘기며 핑퐁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GS건설은 아파트 전체를 재시공하기로 했지만, 언제부터 시작될지 안갯속이다. 국토부 검증 결과도 기다려야 한다. 설계 오류가 없다며 시공사와 감리사 책임을 주장한 LH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철근을 빠뜨린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고, 이런 도면을 시공사에 넘겨줬다는 건 제대로 확인조차 안 했다는 의미다.

게다가 LH가 시공사에 넘겨주는 설계서 상당수가 엉터리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LH 업무 시스템에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LH 퇴직자를 기용해 부실하게 점검한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행사인 LH에 전반적인 관리 감독 소홀의 책임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번 붕괴는 엉터리 설계부터 있으나마나 한 감리, 제멋대로 시공으로 얼룩진 후진국형 사고였다. 광주에서 화정 아이파크 아파트 건설현장 붕괴 사고가 발생한 게 불과 1년 전 일이다. 해마다 비슷한 대형 사고가 되풀이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안전 불감증을 확인할 수 있다.

건설 원자재 급등으로 경비 절감을 위해 안전까지 포기하는 도덕적 해이도 근절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건물 철거에 앞서 현장을 철저히 점검하고, 설계·감리·시공 부문별 원인을 규명해 모든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부실시공 근절을 위한 안전관리 시스템과 법·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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