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감만으로 버티기엔 열악한 환경, 의료체계 붕괴 경고

[환경일보] 저출산 고령화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0.78로, 인류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치다. 절망적인 출산율이 계속된다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소멸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온다.

갈수록 인구가 줄면서 아이들과 관련된 직업군들이 무너지고 있다. 학생 수가 줄면서 초중고등학교를 비롯해 대학까지 폐업하고 있다.

의료분야도 심각하다. 아이를 낳지 않으면서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가 줄고 있다.

출산율 부족으로 아이들이 줄고, 소아청소년과 특성상 진료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소아청소년과로의 신규 인력 유입이 어려워지고, 그에 따리 기존 인력들의 부담만 커지고 있다.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대학병원의 소아청소년과 교수들은 당직은 기본이고 주말에도 진료를 계속해야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진료에 애초 가지고 있던 자긍심은 사라지고, 몸도 마음도 지친 나머지 수십 년간 쌓은 경험을 뒤로하고 대학병원을 나와 개원을 하게 된다.

개원을 한다 해도 고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개인사업자가 됐기에 다른 병원과 경쟁을 해야 하는데, 환자 유치를 위해 10여년 전부터 야간진료, 휴일 진료를 하는 소아청소년과가 늘고 있다. 1인 의사로 개원한 병원들은 야간진료, 휴일진료가 어렵기에 경쟁에 뒤떨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소아청소년과 환자들은 성인 환자에 비해 진료 난이도가 높다. 아직 어린아이들은 정확한 의사표시를 하기 힘들기 때문에 보호자와의 깊은 대화가 필요하고, 하다못해 주사를 놓을 때도 잡아주는 사람 1인과 주사를 놓은 사람 1인이 따로 필요하다.

아이가 겁에 질려 몸부림치거나 구토를 하는 경우가 많아 진료 난이도가 상승하고 시간도 훨씬 길어진다. 따라서 간호사들이나 간호조무사들도 3D업종으로 생각하고 기피한다.

따라서 간호사나 간호조무사를 뽑을 때는 더 좋은 대우를 해주지만, 그마저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매우 잦다.

여기에 극성스러운 부모들도 진료 난이도를 더욱 높인다. 최근에는 한 소아청소년과가 혼자서 병원을 찾은 9살 먹은 아이들 돌려보냈다가 보호자의 항의성 민원을 견디다 못해 폐원한 사례도 있다.

일은 힘들고, 인건비는 비싸고, 보호자들의 민원이 잦고, 민원과 소송 제기로 정신적으로도 피곤하다. 그런 상황에 의료수가가 낮아 수입마저 다른 과에 비해 적다. 결국 의사들은 소아청소년과를 포기하고 다른 과로 변경해서 휴일에 편히 일하는 직업을 선택한다.

현업에 있는 의사들이 이렇게 힘든 모습을 보면서 레지던트들은 소아청소년과를 기피하게 되고 그 결과 지원자가 감소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줄면 일반적인 소아청소년과 환자는 어찌어찌 치료한다 해도 긴급환자나 중환자는 제때 치료받지 못할 확률이 높아진다. 의료계는 앞으로 5년 정도가 지나면 소아청소년과 자체가 붕괴할 위험이 대단히 크다고 내다보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폐업은 저출산 과정의 일부분일 뿐이다. 근본적인 저출산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사회시스템 붕괴는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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