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과 비슷하지만, 사람은 아닌 무언가

[환경일보] 근대적 개념에서 동물원의 시작은 제국주의와 함께였다. 유럽의 침략자들이 세계에 진출해 현지 문명을 파괴하고 거기서 약탈한 각종 보물과 짐승, 새와 원주민들을 잡아 가둔 것이다.

사실 고대부터 시작된 동물원은 부를 과시하는 수단 중 하나였다. 로마에 코끼리를 전시하려면 막대한 인력을 투입해 코끼리를 잡아야 하고, 로마로 옮기는 것, 옮겨온 코끼리를 먹여 살리는 것 등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웬만한 부로는 감당이 되지 않을 수준이었기 때문에 동물원을 소지한다는 것은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럽의 각국이 앞다퉈 식민지를 만들어 약탈하던 시절, 제국들은 경쟁적으로 동물원을 만들어 부를 과시했다.

다른 나라,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동물을, 더 희귀한 동물을 전시하는 경쟁에 몰두했고, 결국 백인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피부색이 다른 원주민까지 전시하기에 이르렀다. 부유한 백인들은 기꺼이 입장료를 지불하고 사람과 비슷하지만, 사람이 아닌 무언가를 구경할 의사가 있었다.

백인과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수많은 인간이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고향과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유럽과 북미 등으로 잡혀 와 구경거리로 전락했다.

제국주의 시절 백인들은 피부색이 다른 황인이나 흑인이 백인에 비해 진화가 덜 된 열등한 인종이라고 믿었고, 그것이 백인이 다른 인종을 지배하고 약탈하는 근거가 되어주었다.

19세기 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코이코이족으로 태어난 사라 바트만은 20살의 나이에 런던에서 구경거리로 전락했다. 백인들은 그녀가 사람이 아닌, 사람과 동물 사이 어디엔가 존재하는 열등한 생물로 취급했다. 백인과 다른 큰 가슴과 엉덩이가 야만의 증거라는 이유에서다. 백인들은 코이코이족을 비하하는 단어인 호텐토트를 붙여 ‘호텐톤트 비너스’라고 불렀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라가 영국으로 오기 3년 전인 1807년, 영국은 노예 매매를 금지했다. 그럼에도 문맹이었던 사라가 주인과 작성한 계약서를 근거로 정당한 계약이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괴물 쇼라는 이름으로 사라 바트만을 전시한 것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유럽 전역으로 번졌다. 아프리카의 평범한 여성은 유럽 각지를 돌며 구경거리가 됐고, 결국 26세의 나이로 요절하게 된다. 게다가 죽은 이후에도 박제로 만들어 1974년까지 파리 인류학 박물관에 전시하기까지 했다. 불행한 삶을 살다간 사라 바트만의 이야기는 이후 블랙 비너스라는 이름의 영화로 제작됐다.

이후에도 1889년 파리 세계 박람회에서 400여명의 원주민을 전시하는 등 인종 전시는 계속됐다. 미국에서 열린 박람회에는 식민지였던 필리핀에서 데려온 1300여명의 원주민이 전시됐다.

동물원에 갇힌 원주민들은 백인 관람객들이 던지는 음식이나 돈을 얻기 위해 춤과 노래를 부르는 등 사실상 구걸을 해야 했다.

인간 동물원은 흑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 열린 박람회에는 조선인 남녀가 전시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인간의 동물원 전시가 금지된 것은 20세기를 절반이나 지나서였다. 1948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유엔 총회에서 세계 인권선언이 채택되면서 비로소 없어지기 시작했다. 20세기 동물원의 최대 히트 상품은 동물이 아닌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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