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토양정화도, 자료 공개도 없이 졸속 개방

[환경일보] 지난 5월4일부터 임시로 개방 중인 용산미군기지는 인체에 유해한 물질인 석유계총탄화수소(TPH), 비소, 납 등이 토양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의 토양오염 우려 기준 1지역(공원·학교용지·어린이놀이시설 등 부지)을 초과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별도의 정화 없이 ‘어린이정원’이라는 이름으로 개방되고 있다. 오염된 토양에 어린이들이 무방비로 노출돼도 상관없다는 의미를 담은 것일까?

용산미군기지에서 검출된 바 있는 납, 수은, 비소, 다이옥신, 유독 폐기물 등은 성장기 어린이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고위험군에 속하는 어린이의 경우 아주 작은 노출과 변화로도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기에 15㎝ 흙이나 콘크리트로 오염부지를 덮어버린 조치로 오염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그런데도 국토교통부는 용산공원 부지에 대한 ‘토양안전성분석 및 예방조치 방안 수립 용역’을 공개하지 않았다. 어떠한 결과가 나왔는지는 몰라도, 개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면 마땅히 이를 공개하고 시민들을 안심시켜야 한다. 그럼에도 미공개로 남은 것은 정부가 무언가 감추는 것이 있다는 의심이 들게 한다.

용산 부지에 대한 환경오염은 이미 수십년 전부터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오염토 정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 역시 널리 알려졌다. 그럼에도 오염 토양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괴담’이라고 무시하려면 투명한 자료 공개가 선행돼야 한다.

더군다나 용산 부지는 미군이 오염시킨 땅이기 때문에 환경오염자 부담 원칙에 따라 미군이 토양정화 책임을 진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미군에게 반환부지 원상복구 의무를 요구하고, 토양정화 과정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아울러 용산 미군기지 환경오염 문제는 기지 내 오염뿐만 아니라, 기지에서 배출된 오염원에 의해 기지 밖 지하수와 토양 및 하천 퇴적물까지 광범위하게 오염이 확산했을 것으로 가능성이 매우 크다.

미군기지라는 특성 때문에 우리 정부가 오염원 조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오염원 이력에 대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정확한 실태 파악조차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오염물질들의 종류별 독성과 인체 유해성에 대한 정밀 조사를 통해 오염원 이력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애초 용산 어린이정원이 ‘임시’, ‘시범 개방’이라는 명목하에 개방된 것은 오염도가 토양환경 기준치를 초과했기 때문이다. 오염된 용산미군기지를 정화작업 없이 개방한 조처는 헌법이 보장한 환경권과 안전권 그리고 유엔아동권리협약(국제인권법)이 보장하는 어린이 건강권을 침해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특히 용산미군기지는 수십년째 반환미군기지 토양오염의 면죄부로 작용하고 있는 한미 소파(SOFA) 협정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소파 협정은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Known Imminent Substantial Endanger)’을 갖는 경우에만 환경오염사고를 통보하거나 치유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KISE’ 규정이 사실상 미군의 환경오염 책임을 면책하고 있어 토양환경보전법 개정과 더불어 SOFA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용산반환미군기지가 오염자부담원칙에 따라 적절하게 정화된 후 시민에게 개방될 때, 국민의 환경권과 안전권이 보장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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