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연구개발 예산 16.6% 삭감··· 혁신 성장 동력 어디서 찾나

[환경일보] 내년도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안이 대폭 삭감됐다. 1991년 이후 33년 만에 무려 16.6%(5조2000억원) 감축했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속에서도 우리 경제는 기술에 투자하면서 성장해왔는데,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가 연구개발 예산의 감축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대통령은 지난 6월 각 부처에 연구비를 나눠 먹고 갈라 먹는 ‘약탈적 이권 카르텔’과 싸워달라고 요구했다. 주요 부처·기관·중개인 유착이 만들어낸 카르텔 때문에 국가 R&D 예산이 줄줄 새고 있다는 지적이다.

과기정통부는 대통령의 지시 이후 두 달만에 졸속으로 예산안을 발표했다. 대통령이 지적한 유사·중복, 관행적·나눠주기, 기업 연구개발 보조금을 모두 감축했는데도 고작 5700억뿐이다.

문제는 불똥이 엄한 곳에 튀었다. 과학기술계는 졸지에 ‘나눠주기’ 논란 등 모든 오명을 뒤집어썼다. 역사상 이토록 급하게 예산안을 정한 적은 없다. 그것도 16.6%라는 삭감은 단지 예산을 줄이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연구현장 황폐화로 이어질 수 있다.

졸속적인 연구비 삭감에 이어 무리한 경상비 삭감으로 연구현장은 패닉에 빠져 있다. 출연연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진행 중인 연구과제가 중단되거나 예정된 연구원 채용을 보류하는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연구원 사기 저하 논란이 일자, 과기정통부는 삭감은 아니고 연구개발 예산 분배의 효율과 혁신을 위한 재검토라며 국제협력 공동연구 확대 차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정부의 변명이 궁색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정체가 불분명한 국제협력에 2조8000억원을 더 쏟아 붓겠다는 의도가 궁금하다. 과학자가 국제협력을 통해 ‘세계 최고 기술을 만드는 선진 연구개발 현장을 체화해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은 과거에나 어울린다.

지금은 선진형 과학기술에 꼭 필요한 풀뿌리 연구와 국가 주도의 기술개발 강화에 힘써야 하는 시대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이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을 주도하면서 기업의 혁신을 지원하는 이유는 치열한 과학기술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다.

정부는 또 ‘약탈적 이권 카르텔’과 관련 없어 보이는 기초 연구비를 6.2%나 삭감했다. 안 그래도 국내 연구개발 정책은 기초보다 응용 연구를 지원하는 구조인데, 앞으로 기초 분야 연구가 더욱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려스러운 건 기초 과학과 원천 연구의 혁신 없이는 기업이 성장할 수 없고, 결국 국가 경제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간 연구자와 관료들의 노력으로 올려놓은 예산조차 미국과 일본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20세기가 주로 새로운 산업적 생산 방식의 혁신이었다면, 21세기는 새로운 과학적 발견에 근거한 혁신이다. 과학 경제를 외치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카르텔과의 싸움’이라는 미명 아래 미래 성장을 위한 연구를 외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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