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게와 해파리까지 먹는 독특한 식성의 소유자, 그 사생활을 들여다보자

‘환경부와 에코맘코리아는 생물자원 보전 인식제고를 위한 홍보를 실시함으로써 ‘생물다양성 및 생물자원 보전’에 대한 대국민 인지도를 향상시키고 정책 추진의 효율성을 위해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을 운영하고 있다. 고등학생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 선발된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이 직접 기사를 작성해 매월 선정된 기사를 게재한다. <편집자 주>

쥐치.
쥐치.

[녹색기자단=환경일보] 문기훈 학생기자 = 지난 8월의 찜통 같은 날씨는 사람들을 지치고 피로하게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여름철 쇠약해진 기력을 보충하는 몸보신 문화가 자리한 것은 어찌 보면 숙명이다.

그런데 여름철에 기력을 보충하는 일은 꼭 사람만의 일은 아니다. 우리 바다로 눈을 돌려보면 물고기 중에도 여름철 산란기를 지낸 뒤 다시 기력을 보충해야 하는 녀석들이 있다. 바로 쥐치이다.

쥐포나 횟감으로 익숙한 쥐치는 여름이 산란기이며 특히 ‘말쥐치’는 5~7월의 금어기가 설정되어 있다. 가을로 접어들며 이들이 다시 몸을 살찌우고 금어기도 풀리는 이맘때가 쥐치 어획과 제철이 시작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쥐치는 세계의 열대~온대 바다에 서식하며 약 102종이 ‘쥐치과’를 구성한다. 우리 바다에는 11종 이상이 산다. 본 기사는 그중 주로 잡히는 ‘쥐치’와 ‘말쥐치’ 2종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입은 작아도 먹성 좋은 물고기, 특기는 물총 쏘기

쥐치의 입과 물 뱉기. /사진=문기훈 학생기자
쥐치의 입과 물 뱉기. /사진=문기훈 학생기자

쥐치는 길게 튀어나온 주둥이에 비해 입이 조그마하다. 그 작은 입에도 위턱과 아래턱에 예리한 앞니를 가지고 있다. 쥐치는 해조류, 플랑크톤, 바닥과 암초 표면에 살아가는 ‘저서동물’을 다양하게 먹는 잡식성이다.

쥐치는 저서동물 중 고둥, 갯지렁이, 작은 갑각류, 따개비류, 조개, 멍게, 성게를 비롯해 일반적인 어류는 선호하지 않는 산호와 해면이나 히드라 같은 것도 먹는 특이한 식성의 보유자다. 먹잇감을 쪼아 먹는데, 《우해이어보》에서는 ‘미끼를 잘 먹으나 입이 작아 삼키지는 못하고 옆에서 쥐처럼 씹어 먹기 때문에 낚기가 매우 어렵다’고 했다. 작은 입과 먹는 행동이 쥐 같아 쥐치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쥐치는 입으로 물을 뱉는 재주가 있다. 작은 입에서 곧은 물줄기가 나가는 모습은 흡사 물총을 쏘는 것 같다. 물총을 쏴서 모랫바닥을 뒤집어 숨어있는 조개나 갯지렁이 등을 잡아먹거나 성게를 뒤집어 가시가 적은 배를 톡톡 쪼아 먹기도 한다.

납작한데 조금씩 서로 다른 체형

쥐치(상), 말쥐치(하) /사진=문기훈 학생기자
쥐치(상), 말쥐치(하) /사진=문기훈 학생기자

쥐치는 ‘체고’(배에서 등까지)가 높은 데 비해 옆으로는 납작한 체형이다. 옆 방향에서만 바라보면 몸집에 대해 오인하기 쉽다. 이러한 체형 탓인지 몸이 약간 기울어진 채로 떠 있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쥐치’는 체고의 비율이 더 커 계란형 혹은 마름모 같다면 ‘말쥐치’는 비교적 체고가 낮은 타원형이다.

말쥐치의 암수 구분도 가능하다. 암컷은 체고가 높고 비대하며 주둥이 윗부분이 직선이거나 약간 오목하지만, 수컷 말쥐치는 체형이 날씬하고 주둥이 윗부분이 미미하게 밖으로 볼록하다. 다만, 쥐치류는 배지느러미가 퇴화한 복부의 피부가 신축성 있어서 늘어뜨리거나 수축시킬 수 있다. 따라서 뒷지느러미의 시작점을 기준으로 체고를 잰다.

거친 가죽옷을 입은 뿔 달린 물고기

말쥐치가 가시 세우는 모습. /사진=문기훈 학생기자
말쥐치가 가시 세우는 모습. /사진=문기훈 학생기자

지느러미에도 쥐치만의 개성이 있다. 특히 쥐치는 지느러미 때문에 뿔 달린 물고기처럼 생겼다. 눈 위쪽에 뾰족한 것이 후방으로 솟아있다. 사실 이는 제1등지느러미(앞쪽 등지느러미)가 가시처럼 변한 것이다. 쥐치는 기분에 따라 이 지느러미가시를 세웠다 눕혔다 할 수 있다. 작은 가슴지느러미를 파닥이고, 제2등지느러미와 뒷지느러미는 파동처럼 움직임으로써 천천히 헤엄친다.

굼뜨지만 이런 헤엄 방식으로 전진 후진 둘 다 가능해서 위협을 느낄 때 암초의 틈으로 후퇴할 수 있다. 어떤 쥐치류는 등가시와 복부의 신축성 부위를 함께 세워 포식자가 자신을 은신처에서 빼내기 더 어렵게 만든다. 쥐치는 말쥐치와는 또 다른 성별 구분법이 있다. 어느 정도 자란 수컷 쥐치는 제2등지느러미의 앞쪽 마디에 실처럼 길게 뻗은 줄기가 있다.

수컷 쥐치의 특징인 길게 뻗은 줄기. /사진=문기훈 학생기자
수컷 쥐치의 특징인 길게 뻗은 줄기. /사진=문기훈 학생기자

쥐치의 피부는 다른 물고기와 사뭇 다르다. 비늘이 없어 보여도, 사실은 질긴 피부에 가시처럼 변형된 아주 작은 비늘들이 무수히 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감촉이 까칠까칠하다. 이런 특징 때문에 조선 후기 ≪난호어목지≫에서 기록하기를 ‘피부에는 모래가 있어 대나무를 갈 수 있고 가죽만 벗겨서 대나무 화살을 간다’라고 했다. 영어권에서도 거칠고 질긴 피부 때문에 쥐치류를 가리키는 단어로 ‘leatherjacket’과 'filefish'가 있다. 전자는 가죽 재킷을 의미하고 후자의 'file'은 물체를 갈 때 쓰는 공구를 의미한다.

쥐치와 말쥐치는 피부색과 무늬가 다르다. 쥐치는 연한 갈색 바탕에 진한 갈색 줄무늬가 보이며, 지느러미는 대체로 노란색이다. 말쥐치는 몸 색깔은 회갈색 바탕에 흑갈색 무늬가 불규칙적으로 나타나며, 지느러미는 푸른색을 띤다. 보통은 이러하지만 서식 환경, 흥분상태, 서열에 따라 체색의 짙고 옅음이 달라지기도 한다.

위의 여러 특성은 복어와 생물학적 연관성이 깊다. 쥐치나 복어나 모두 분류상 복어목에 속하는 친척뻘 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질긴 피부와 가시 형태로 변화된 비늘, 작은 지느러미와 아가미구멍, 퇴화된 배지느러미, 예리한 앞니형의 이빨과 식성, 따뜻한 물에서 산다는 점 모두 두 집단이 공유하는 특성이다. 독성을 가진 ‘날개쥐치’ 같은 종도 있다.

해조와 수중 암초는 삶의 터전

우리나라 연안, 일본, 동중국해 등지에 분포하는 쥐치와 말쥐치는 아열대성으로, 일 년 중 고수온기이고 해가 길어지는 여름이 산란철이다. 제주와 남해 같은 저위도 해역일수록 수온이 높아 상대적으로 고위도인 동해에서보다 산란기가 빠르고 길다.

산란기 동안 얕은 연안의 모랫바닥이나 암초 지역으로 올라와 물에 가라앉는 끈끈한 알을 여러 번 산란한다. 어린 쥐치, 말쥐치는 얕은 연안에 우거진 해조류 사이 또는 표류하는 해조류 그늘에 숨어 생활한다. 어려서부터 작은 무척추동물과 해조류 등을 먹는 잡식성이다. 커가면서 보다 깊은 서식지로 내려가 주로 수심 20~100m의 수중 암초 지대에서 무리 지어 살아간다.

해조류와 수중 암초는 쥐치를 포함해 다양한 생명을 품는 곳이다. 부유 해조류 그늘은 꽁치 같은 다른 어류에게도 산란장이자 치어들의 은신처가 된다. 암초는 많은 주름과 틈이 있어 해류를 타고 온 플랑크톤이나 찌꺼기가 표면에 쌓인다. 이를 양분과 먹이로 삼는 다양한 생산자, 소비자 생물들이 모여들어 다양성을 품은 생태공간이 형성된다.

성게는 물론 독성 해파리도 먹어

해파리를 먹는 쥐치. /사진제공=유튜버 ‘끝판 다이버’
해파리를 먹는 쥐치. /사진제공=유튜버 ‘끝판 다이버’

쥐치의 식성은 생태계 다양성 회복 측면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연안 바다의 암반 지역에선 미역, 감태, 대황 등 ‘대형해조류’가 사라진 곳을 석회질 조류가 잠식해 암반 지역이 하얗게 변하는 ‘갯녹음’이 일어나고 있다. 복합적인 원인이 있지만, 성게도 그중 하나이다. 성게는 해조류를 먹어 치우지만 석회조류는 먹지 않는다.

다른 생물도 이를 먹지 못한다. 따라서 성게의 왕성한 활동으로 석회조류만 남으면 수중 암초 생태계가 황폐해진다. 주요 먹이는 아니지만, 앞서 언급했듯 쥐치는 성게를 먹으므로 쥐치는 성게의 천적으로서 가치가 있다.

쥐치는 해파리도 먹는다. 우리 바다 쥐치와 말쥐치는 연안에서 가장 흔히 보이는 보름달물해파리에서부터 노무라입깃해파리 같은 맹독성 해파리의 촉수와 몸통도 가리지 않고 쪼아 먹는다.

특히 ≪전 생활사 단계의 보름달물해파리에 대한 쥐치의 포식과 먹이 선호도 실험(2015)≫에 따르면 쥐치 치어는 다른 먹이가 있어도 해파리의 유생인 ‘폴립’을 활발하고 지속해서 포식했다고 한다. 폴립 하나는 수천 마리의 해파리를 만든다. 쥐치 치어는 1시간에 폴립 12마리 이상을 먹을 수 있었다. 해파리의 조절자로서 쥐치의 가치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 많던 쥐치는 어디로 갔나

이처럼 의미 있는 생물자원인 쥐치는 과거에 비하면 우리 바다에서 자취를 감춘 수준이다. 쥐포는 원래 넘쳐나는 쥐치를 감당하기 위해 보존식품으로 개발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쥐치과 어류 어획량은 1990년 이전에 연간 약 20만톤 수준이던 것이 1994년 5000톤 이하로 급감한 이후 현재까지 약 2천 톤 내외의 어획량을 보인다. 일각에선 갯녹음과 해파리 대량 증식 등의 문제가 쥐치류 개체 수 감소와 관련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감소 원인에 대한 의견은 분분한데, 먼저 쥐치를 남획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있다. ≪동해 중부해역에 출현하는 말쥐치 암컷의 성숙과 산란(2018)≫에서는 자원량이 풍부했던 과거보다 현재 말쥐치의 성숙체장이 약 3cm 작아졌는데, 이러한 결과는 높은 강도의 어획이 장기간 이루어져 지속적인 자원감소가 이루어졌다는 징후라고 해석했다.

다른 한편에선 남획이 아니라 기후 변화 때문에 주서식지가 남쪽으로 이동한 결과라는 주장이 있다. 우리나라는 난류와 한류가 부딪히는 경계수역에 위치한다. 따라서 한 어종 서식지가 조금만 내려가거나 올라가도 우리나라 바다에서는 씨가 말라 버린 것 같지만, 남·동중국해에서는 많이 잡히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1988~1989년 북태평양 전체의 광범위한 기후변동에서 동해 북한 연안 저층 수온은 올라갔으나 동해 남쪽에서는 오히려 저층 수온이 내려가 1989년 이후 아열대어종인 말쥐치 서식처가 동중국해 쪽으로 수축했다.

서로 다른 시각이라도 결국 기후와 생태계에 대한 인간의 광범위한 교란 행위가 쥐치를 둘러싼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는 점은 공통의 견해로 보인다. ‘금치’가 되어버린 쥐치가 바다와 기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 지구적인 변화에 관심을 가져달라 말을 걸어오고 있다.

자원 증대 노력과 유용성 연구

우리 바다에서 쥐치의 자리가 비었을 때보다는 그들이 있을 때 사람도 생물다양성 위에서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쥐치 수산자원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국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유이다.

한국수산자원공단은 수년 전부터 쥐치와 말쥐치 치어 방류를 추진해오며 올해 6월에도 제주에서 말쥐치 71만 마리를 방류했다. 올해 7월 말에는 부산광역시 수영구와 어촌계가 자체적으로 쥐치 약 3만 마리를 광안리 앞바다에 방류했다. 2년 후에는 번식 가능한 성어로 성장해 어족자원 증대에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쥐치와 말쥐치는 양식이 가능하다는 점이 희망적이다. 다른 양식어종에 비해 규모는 미미하지만, 고급 어종으로서 부가가치가 큰 강점이 있다. 성게도 해파리도 겁내지 않는 이들은 관용표현으로 ‘간 큰’ 녀석인데 실제로 큰 간을 가지고 있다. 1.2kg 크기의 쥐치의 간은 300g 정도에 이른다. 따라서 내장을 활용한 내장유 또는 농축단백질을 이용한 연구가 진행 중으로, 쥐치 간은 건강식품이나 화장품 원료 등 기능성 소재로의 활용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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