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으로 무방비 상태에서 역대급 물폭탄 덮쳐

[환경일보] 최근 북아프리카의 리비아에 물폭탄이 떨어지면서 2만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연간 강수량이 250㎜에 불과한 리비아 북서쪽의 항구도시 데르나에 하루 만에 400㎜의 비가 내린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양의 비가 내렸지만, 상류에 있는 2개의 댐이 이를 막아내지 못하고 터져버리면서 피해를 키웠다. 댐이 물을 막은 것이 아니라, 모아뒀다가 한꺼번에 터뜨리는 역할을 한 것이다.

흙과 암석으로 만든 댐은 건설한 지 50년이 지난 낡은 시설이었다. 댐 붕괴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진작부터 나왔지만, 보강은 꿈도 못 꿨다. 시리아가 내전에 몰두한 사이 무정부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데르나시의 사망 및 실종자는 2만명으로 추정되며 이는 도시 인구의 1/6에 해당한다. 특히 하류 저지대가 집중적인 피해를 입으면서 참사를 키웠다.

세계 각지에서 구호의 손길을 보내고 있지만, 실종자 수색은 물론, 복구도 쉽지 않다. 모두 내전 때문이다.

이번에 리비아를 덮친 메디케인(medicane)은 지중해에서 발생하는 열대성 저기압을 말한다. 지난 2008년 사이클론 나르기스 이후 가장 치명적인 열대성 사이클론으로 알려졌다. 본래는 그리 큰 규모가 아니었지만 올여름 지중해 바다가 28.7℃로 역대급으로 더워지면서 더 많은 수증기가 발생했고 메디케인의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다.

게다가 이렇게 커진 메디케인이 덮쳤음에도 리비아는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다. 사전에 큰 규모의 태풍이 온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대피라도 갔을 텐데 리비아 국민들은 이를 전혀 몰랐다. 엄청난 양의 물폭탄이 도시를 덮치면서 2217개의 건물이 파괴되고 5개의 다리가 부서졌다. 

거듭되는 이야기지만 이것도 내전이 원인이다. 내전으로 기상예보를 할 기상청 없었기 때문이다. 리비아는 안보를 이유로 기상예보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상태였다.

일각에서는 당국이 대피령 대신 통행금지령을 내렸기 때문에 홍수 피해가 커졌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또한 주민들 일부는 경고가 있었음에도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해 대피를 가지 않았다는 증언도 있다. 

페테리 탈라스 세계기상기구(WMO) 사무총장은 “국가 단위의 경보를 발령할 수 있는 기상당국이 제 기능을 했다면 홍수로 인한 인명피해 대부분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리비아의 내전은 2011년 아랍의 봄으로 촉발됐다. 민주화 시위로 독재자 카다피를 몰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후 제대로 된 정부를 수립하지 못하고 내전을 거듭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리비아는 산유국이다. 아프리카에서 석유매장량과 가스매장량이 가장 많은 국가이며 글로벌로 순위를 매겨도 9위의 자원대국이다.

내전을 벌이는 양측 세력은 모두 민생은 아랑곳없이 유전 확보에 혈안이 됐고, 기름 냄새를 맡은 러시아와 프랑스를 비롯한 열강들과 아랍국가인 튀르키예까지 가세하면서 내전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내전과 기후변화, 모두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비극이지만 둘 모두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