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 원인은 모른체하고, 만만한 게임만 폭력의 원인으로 지목

[환경일보] 흉기난동, 묻지마 범죄 등이 연달아 벌어지면서 사회 분위기 전체가 흉흉해지고 있다.

얼마전 서울 지하철 2호선에서는 한 남자가 다른 승객들을 밀치면서 이동했는데, 이를 흉기 난동으로 오해한 승객들이 밀치며 도망가는 과정에서 수십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만큼 사람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처럼 분위기가 흉흉해지면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게임 원인론‘이다. 한 언론은 “칼로 베는 살인 게임에 빠진 청소년들”이라는 충격적인 제목의 기사를 통해 게임을 폭력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기자가 게임방에서 관찰한 바에 따르면 FPS 게임을 하는 청소년들이 적들을 살해하고 환호하는 모습이 바로 증거다. 

일단 사실부터 짚고 넘어가자면, FPS 게임은 First Person Shooter의 약자로, 칼로 사람을 베는 게임이 아니다. 칼로 사람을 베는 게임도 있지만, FPS 게임은 1인칭 총싸움을 하는 게임이다.

따라서 FPS 게임을 보고 청소년들에게 미칠 악영향을 걱정했다면 ‘칼로 베는 살인게임’이 아니라 ‘총을 쏘는 살인게임’으로 기술해야 옳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총기 소지를 허용하지 않는 국가이고, 각종 사고에 사용된 흉기들도 총이 아닌 칼이기 때문에 ‘칼로 베는 살인게임’이라고 단어는 다분히 억지스럽다.

아울러 FPS 게임이라는 엄연한 용어를 두고 ‘총칼게임’이라고 부른 것 또한 혐오감을 심어주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그 기자는 영웅본색이나 첩혈쌍웅 같은 영화도 ‘느와르 영화’라는 장르명 대신 ‘총싸움 살인 영화’라고 부를까? 아니면 ‘대부’ 역시 ‘조폭영화’라고 부르려나? 스타워즈는 ‘SF 총칼 살인영화‘인가?

기사에 따르면 누군지 모를 게임업계 관계자는 “요즘 그래픽 기술이 발달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사실적으로 생생해졌다“며, “본인이 직접 칼을 휘두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라고 말했다고 한다.

현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사실성이라면 PC방 게임 따위가 아니라 VR이 훨씬 낫지 않나? VR로 어그로를 끌기에는 대중화가 부족해서일까?

어쟀든 기사는 결론에서 “칼을 이용한 살인 게임과 실제 범죄 간의 연관성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며 ‘게임=폭력’이라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그런데 학문적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게임과 폭력이 관련이 없다는 연구결과가 지천으로 깔렸다. 최신 논문일수록 더 그런 경향이 짙으며, 게임과 폭력간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연구결과를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다.

THIS IS GAME 반박 자료만 해도 당장 올해 5월 스탠포드 대학에서 82개 의학논문을 검토한 후 게임과 폭력성의 인과관계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게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이 게임과 살인을 억지로 연결하려 기사를 통해 무리수를 연발했지만, 상관 없다. 게임을 원인으로 지목하면 ‘젊은 것들이 쯧쯧’이라는 결론을 손쉽게 내릴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복잡한 사회구조적 원인 따위는 분석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럼 무언가를 고칠 필요도, 나아질 필요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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