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규제 혁파 이전 국민 의견 청취가 먼저

[환경일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월4일 경제정책 방향에 관한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킬러규제’를 처음 언급했다. 킬러규제 용어에 대한 특별한 설명 없이 팍팍 걷어낼 것을 지시했다. 이후 윤 대통령이 명명한 킬러규제는 ‘기업에 부담되는 모든 규제는 사라져야 할 것’으로 실체를 드러냈다.

킬러규제에 대한 국민 의견 청취나 국회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통령 지시 하루만인 7월5일 킬러규제 개선 TF(태스크포스)가 국무조정실 주도로 발족했다. 민간과 협력해 구성했다고 했지만 정부 협력 대상 민간은 시민이 아닌 경제단체였다.

7월14일 국무조정실은 킬러규제 15개를 선정했다. 화학물질의 등록·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이 우선 혁파 대상이 됐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화학물질 관리 등 환경 킬러규제 혁파로 8조8000억원 이상의 경제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8월24일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경제단체는 산업단지 입지 규제, 화학물질관리법 등을 혁파해 줄 것을 윤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이처럼 환경 규제법을 혁파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지만 법 개정 후 기업과 정부가 시민에게 제시해야 할 안전대책 마련 논의는 없는 상태다.

화평법과 화관법은 경북 구미 불산 누출사고, 가습기 살균제로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하자 재발 방지 차원에서 제정됐다.

킬러규제에는 환경영향평가도 포함됐다. 환경부는 8월24일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환경영향평가 킬러규제 혁신 방안에 하천공사 환경영향평가 면제와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는 지자체에 넘기는 안을 제시했다.

킬러규제 목록에는 업종규제 및 산단 입지규제 혁파도 있다. 이 법은 그동안 주민 거주 지역에 안전사고가 예측된 위험한 공장이나 산단이 들어서는 것을 차단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현재도 이 법이 느슨하게 적용되는 지역에는 주민 건강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90명이 사는 마을에 22명이 암이 걸린 전북 익산 장점마을, 52가구 거주 마을에 165개 공장이 위치한 인천 검단 사월마을 등 공장이나 산단은 대부분 인구밀집 지역을 피해 중소도시 외각에 입주하는 경향을 보인다. 인간과 동물, 작물에 미친 영향은 뒤늦게 알게 돼 대응이 쉽지 않다. 피해 발생한 이후에는 주민들이 오롯이 해당 기업을 대상으로 피해 사실과 원인을 증명해야 하는 과정이 반복됐다.

환경부는 지난 6월21일 ‘순환경제 활성화를 통한 산업 신성장 전략’을 발표했다. 발표 내용에는 시멘트 산업의 대체 자원 사용 확대를 위한 재활용 규제 완화가 담겨있다.

9월19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폐기물 열분해 산업 육성 및 자원 순환업 균형발전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열분해 산업 기업의 애로사항 해소를 위해 관련 규제가 정비돼야 할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지난 3년간 시멘트 소성로 가연성 폐기물 처리량은 연평균 28.1% 증가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회환경노동위, 환경부 차관, 국회부의장, 여당 원내대표가 한자리에 모였음에도 환경기준 및 시멘트 제품 중금속 기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플라스틱 폐기물은 자원이므로 더 많은 순환자원정책에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이야기만 풍성했다.

플라스틱 열분해율은 2020년 기준 0.9%에 불과했다. 정부 국정과제는 열분해율을 2026년까지 10%로 늘리는 목표를 포함한다. 이 과제의 주관 부처는 환경부다.

최근 국립환경과학원 시멘트 제품 분석결과 중금속이 검출된 제품이 있었다. 석회와 산업폐기물을 태워 재를 생성시키는 과정에서 중금속 성분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도 유연탄 가격 상승을 이유로 가연성 폐기물 사용량은 계속 늘고 있다.

규제 혁파 속도전에 반대 의견은 들리지 않는다. 정부는 킬러규제를 올해 안에 개정할 뜻을 이미 정한 듯 하다. 규제는 기업에 제약일 수 있지만 국민에게는 기업을 견제할 유일한 수단이다. 정부와 환경부는 규제를 없애는 것에만 몰두하지 말고 기업과 시민사이에서 중재에 나서야 한다. 안전기준 마련 후 개정논의가 순서다. 한가지, 킬러는 살인을 가리키는 단어다. 올해는 특히 묻지마 살인이 많이 일어난 해다. 국민들이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과 국무위원이 쓸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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